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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Apr 18. 2020

'자식 농사'라는 말

'~로서'. 자격격조사. 지위나 신분, 자격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여 쓴다. 수단이나 도구를 나타내는 도구격조사인 '~로써'와 구별해야 한다. 이를테면 판사'로서' 재판을 하고, 판결'로써' 죄인을 벌한다고 써야 맞는다.  


'~로서'가 '부모' 뒤에 붙으면 '부모로서'가 된다. 자격시험 같은 절차를 거쳐 얻지위가 아니라서, 어떤 자격보다는 의무의 느낌이 하다.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부모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쓰는 것처럼.

모든 동물은 양육의 본능을 가진다. 강추위 속에서 수개월 굶으며 알을 품고, 수십 km를 다니며 먹이를 구해오는 일은 펭귄만이 하는 일이 아니다. 모든 동물은 새끼가 스스로 먹이를 챙겨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정성껏 돌본다. 어미 사자는 아기 사자에게 가젤을 어떻게 사냥하는지 가르치고, 어미 가젤은 아기 가젤에게 사자의 접근을 빨리 눈치채고 피하는 법을 가르친다.


인간 세계의 양육 과정은 그보다 훨씬 길고 복잡하. 제대로 걷는 데만 1년, 말과 글을 배우는데 또 몇 년, 성년이 되기까지 대강 이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문명 세상일수록  시간으로 양육이 끝나지 않는. 그 시간 안에 부모는 자식이 스스로 먹고살 있도록 해놓아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의무를 진다.


사람은 동물처럼 '자, 내가 하는 거 잘 보고 따라 해. 사냥은 이렇게 하는 거야.' 하는 식으로 키울 수 없다. 전통 기술 물려주장인이거나 노포의 주인장, 영화 '어느 가족'의 소매치기 아빠 정도라몰라도, 십여 년 후의 세상이 어떻게 변하여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섣불리 부모 세대의 생존 기술을 가르칠 수 없다.

'자식 농사'라는 말이 있다. 양육을 농사에, 부모를 농부에 비유했다. 농부가 때 맞춰 물 주고 거름 주고 잡초 뽑아내며 가지를 쳐내거나 열매에 봉지 씌워 물을 키우듯, 정성을 다해 자식을 키우면 좋은 수확을 한다는 의미로 쓴다. 성공적 자식 농사의 기준은 동물의 기준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잘 먹고살 수 있는 지위를 갖추도록 하는 것. 요즘은 이른바 명문 대학에 들어가고, 전문직,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같은 안정된 일자리를 얻고, 번듯한 배우자와 가정을 꾸리는 일 같은 것을 말한다. 자식 농사에 온갖 기술이 발달하여 자칭 전문 농부에 아웃 소싱하고 관리하는 방식일반화되었다 해도 그 목표는 다르지 않다.


농사의 성공 기준은 수확하는 농부 세상의 판단에 따른다. 식물이 아무리 잘 자라도 농부가 바라던 바와 다르면 농사를 못 지은 것이다. 그러나, 꽃이 피는 것은 벌과 나비를 불러 수정하기 위함이고, 튼실한 열매를 여는 것은 새와 짐승들이 먹고 씨를 퍼뜨리기 위함이다. 사람이 꽃을 즐기고 열매를 먹으라고 식물이 힘을 다해 그러는 게 아니다. 보잘것없는 꽃을 피우고 사람이 먹지 않는 열매를 맺더라도 자연은, 그의 가치를 식용 열매를 여는 나무의 가치와 비교하지 않는다.

사실, 키우면서도 이게 어떤 식물인지 농부도 잘 모르는 게 자식 농사다. 그래서, 농부로서의 일은 정해져 있다. 그 식물이 하늘 향해 잎을 내고 햇빛 받으며 자연과 어울리고, 추운 겨울을 버티며 그 안에 차곡차곡 나이테를 쌓아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다만 곁에서 바라보며 해야 할 일뿐이다.


자식은 수확의 대상이 아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지만, 그 열매는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양분으로 삼고 번식하며 살아가라고 나오는 것이다. 부모로서의 일은 다만 자식이 타고난 기질과 심성을 세상에 드러내며 자신을 사랑하고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보며 해야 할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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