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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03. 2023

헹가래

"헹가래 받아본 적이 있으세요?"

라고 물어보면 의외로 경험해 본 사람이 없다. 적어도 4명 이상이 한 사람의 팔과 다리 쪽을 다 같이 잡아들고 하늘로 힘껏 던졌다가 받는 반복 동작. 운동 경기 우승팀 세리머니에서 가끔 볼 수 있으며 혹시 외래어인가 해서 찾아보면, 밭을 가는 '가래질'에서 유래했다는 순우리말 헹가래.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딱 한번 받아본 적이 있다.


수년 전, 팀장 일을 하다가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되어 송별회식을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아마 술을 꽤 마셨을 팀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팔다리를 잡히고 나서야 나는 이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게 되었는데, 순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들이 나를 던지고 나서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다리가 이미 땅에서 떨어진 내 눈에는 군데군데 깨진 시멘트 바닥이 가깝게 보였다.


그리 생각하든 말든 관계없이 어느새 내 몸은 이미 하늘로 던져지고 있었다. 으여차 으여차 으으여어차... 귓가로 밤공기가 스치는데 누운 채 공중에 올랐다가 떨어지는 묘한 느낌. 무섭다기보다는 잠깐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걱정했던 내동댕이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내려왔다. 이유야 어떻든 이렇게 나를 띄워주는 팀원들이 고마웠다.

작년 연말 부장에서 임원이 되었다. 주변에서 기분이 어떠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구분해서 말하자면 좀 나이차가 있는 이들에게서는 축하를 주로 들었고, 동년배 친구들에게서는 ‘그래도 잘 된 거 맞지?’ 같은 멘트가 많았다. 성과와 책임에 따른 부담, 계약직으로서의 지위 변경이 따르니 마냥 좋을 수만은 없어서 그렇겠다.


헹가래의 기분이 떠올랐다. 올라가며 윗공기를 호흡하는 좋은 기분이지만 언제든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치. 아래에서 받쳐주는 이들이 얼마나 든든하게 잘 받쳐주느냐에 달린, 까딱 잘못하면 낙상할지도 모르는, 그래서 함께 힘을 잘 내야하는, 그런 느낌.


그러니까 항상 올려주고 받쳐주는 이들에게 감사해야겠지. 바닥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봐야겠지. 언젠가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일테니까. 그때면 나도 누군가 힘차게 헹가래 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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