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마지막 주말에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회가 토요일 오후 2시라서 전시장 입구에 12시 40분쯤 도착했다. 온라인으로 예매한 관람객은 손목 팔찌로 교환해야 입장이 가능했는데, 그 줄이 생각보다 너무 길었다. 겨우 줄 끝을 찾아 서고 보니 똬리를 튼 줄이 한도 끝도 없었다. '우와 이렇게나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았었나?' 문체부 통계로는 성인 57%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던데, 홀을 가득 채운 젊은 열기가 반갑기도 했지만 당장 걱정되는 일은 입장 대기 시간이었다.
걱정한 대로 꼬박 1시간 50분 줄을 서고 나서야 입장 팔찌를 받을 수 있었다. 가려했던 작가의 사인회는 이미 끝나버렸고, 통로를 가득 채운 인파를 헤쳐가며 도서전을 관람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비교적 넓게 자리 잡은 대형 출판사나 자그마한 중소형, 독립출판사 부스를 가리지 않고 제대로 뭔가 보기가 힘들었다. 그냥 뒤편에서 스치듯 구경하며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나왔다.
책을 안 읽는 사람들과 도서 전시회에 넘치는 인파, 그 사이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다. 독서는 어느덧 특정인들만 열광하는 마니아 취미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학교 다니던 시절, 자기소개에는 취미와 특기란이 있었다. 딱히 적어 넣을 것이 없었던 나는 취미란에 '독서’라고 썼다가 무슨 독서가 취미냐는 말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독서는 일상이지 굳이 취미라고 할 일은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은 취미가 책 읽는 거라 답하면 '오~ 그러세요?' 하며 특이점을 인정받는다. 이러다가 앞으로는 스킨스쿠버나 암벽 등반과 같은 정도 취미의 느낌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책을 낼 때 출판사 편집장님과 책 값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요즘 16,800원인 책이 부쩍 늘었다. 그러면 온라인 서점 신간 10% 할인가로 15,120원, 무료배송 기준 15,000원에 딱 걸린다. 내 책은 15,000원으로 정해진다 하니 10% 할인가 13,500원에 배송비 2,500원을 더해 온라인에서 16,000원이 되는 셈이었다. 오히려 16,800원 책 보다 비싸진다. "우리도 그냥 16,800원 갈까요?" 말씀드렸더니, 책이 두꺼운 것도 컬러가 들어간 것도 아니어서 그 정도 가격이 적당하고, 요즘 책 시장은 마니아 시장이라 보통 한번 주문할 때 두어 권 이상을 사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공연장에 가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전주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같이 따라 부르는 떼창도 하고 소리도 지른다. 그런데, 아무리 좋아하는 책이라도 표지만 펼쳐서야 마음이 좀처럼 울렁대지 않는다. 북콘서트에 가서도 떼창처럼 '떼독'이라던가 환호성을 지르는 일은 없다. 독서는 노래나 영상을 보고 듣는 것만큼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도 않고 시간도 많이 든다. 종이에 쓰인 문자를 통해 상황을 상상하고 해석해 가는 일은 힘든 작업이다. 그래도 가끔 책이 원작인 영화를 보면 대부분 느낀다. "책이 훨씬 더 낫네"
도서전이 끝나고 관람객 통계를 보니 작년에 13만 명, 올해는 15만 명이라고 했다. 관람객이 늘기도 했지만, 출판협회와 정부의 갈등으로 지원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전시 공간이 작년에 1층 넓은 곳에 있다가 올해는 3층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긴 대기줄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다만, 어느 지역이건 상권이 좋아지려면 젊은 층들이 꾸준히 찾아야 하는데, 책을 많이 읽는 연령대가 2030이라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년에는 내가 줄을 좀 더 서더라도 더 많은 이가 도서전을 찾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