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의 탈중앙화 여정을 중심으로
여러분들이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알림을 받는 앱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카카오톡이라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라면, 특히 크립토 디젠들이라면 모두 같은 앱을 떠올리실 겁니다. 맞습니다, 바로 텔레그램입니다.
텔레그램은 Web 3 및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트위터와 함께 거의 필수로 여겨질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일상적인 채팅은 물론 구독하는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고 더 나아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봇을 활용하며 우리는 텔레그램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크립토 세상에서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텔레그램의 CEO, 파벨 두로프(Paavel Durov)가 지난 11/30일 비수탁형(non-custodial) 암호화폐 지갑과 탈중앙화 거래소(Decentralized Exchange, 이하 DEX)를 구축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코인데스크 - Telegram CEO Durov Plans to Build Crypto Wallets, Decentralized Exchange
이에 많은 사람들이 텔레그램이 블록체인 생태계에 진출한다는 것에 기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진출은 우리의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준비되어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텔레그램이 왜 갑자기 블록체인 진출을 발표했는지, 어떠한 이유에서 이토록 블록체인에 진심인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근래 텔레그램 채널에서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광고를 일절 내보내지 않기로 유명한 텔레그램에서 직접 보내는 광고인만큼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시고 ‘도대체 TON이 뭐길래 텔레그램에서 광고를 해주지?’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위 메시지의 주인공 TON이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진출의 시발점입니다. 지금부터 그들의 여정을 파해쳐보겠습니다.
TON의 역사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TON은 Telegram Open Network로 텔레그램의 CEO 파벨 두로프와 그의 형제 니콜라이가 개발한 PoS (Proof of Stake) 기반 블록체인 네트워크입니다. 모든 레이어 1이 목표로 하듯, TON의 목표 역시 탈중앙성이라는 블록체인 이념은 계승하되 이더리움의 제한적인 속도와 확장성을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TON은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2018년 1월 백서를 발표하였으며 그들의 네이티브 토큰 Gram에 대한 두 차례에 프라이빗 세일(Private Sale)을 통해 약 $1.7b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자들로부터 조달받았습니다. 여기에 2019년 봄, 테스트넷을 출시하면서 세계 톱 메신저 앱과 블록체인이 발생시킬 시너지 효과에 사람들은 기대를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TON의 행보는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2019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이하 SEC)를 만나며 TON의 행보는 미궁 속으로 빠졌습니다.
2019년 10월, SEC는 Securities Act of 1933을 근거로 들며 TON의 Gram의 판매가 증권성을 띈다는 명목 하에 텔레그램을 고소하였습니다.
Securities Act of 1933는 흔히 ‘증권의 신뢰성'이라고 불리는 조항으로 다음 두 가지 가이드라인의 준수를 관리 감독합니다.
투자자들이 상품에 대한 충분한 중요 정보를 제공받았는지
증권의 판매에 있어서 사기, 기만, 혹은 잘못된 표현이 없는지
즉, SEC는 Gram을 ‘증권’으로 보았고 TON이 Gram을 제공하는 대가로 $1.7b의 투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Gram과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SEC가 특정 자산을 ‘증권'으로 판단하는 조건을 아주 간단히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금전의 투자(Investment of money) : 돈을 투자하는가
2. 공동의 사업(Common enterprise) : 개인이 아닌 단체인가
3. 타인의 노력으로부터 나올 수익에 대한 합리적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profits from efforts of others) : 남의 노력으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가
위 기준으로 미루어봤을 때 SEC가 Gram을 증권으로 간주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투자자들은 Telegram의 활동으로 얻을 잠재적 수익을 기대하고 Gram에 투자하였다.
당시를 기준으로 Gram 자체로 구입할 수 있는 어떠한 상품 혹은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Gram을 통화로 여길 수 없다.
SEC의 이와 같은 결정에 두로프를 비롯한 TON 측은 인정할 수 없었고 SEC와의 긴 싸움을 치루어야만 하였습니다. 해당 법적 공방은 텔레그램 측의 패배로 마무리되었고, 결국 2020년에 들어서며 텔레그램은 TON의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로프는 눈물을 머금고 TON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0년 5월 13일 작성한 그의 글에서 그가 미국 정부의 규제에 얼마나 환멸을 느끼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아래는 그가 직접 작성한 다소 해학적이면서도 많은 뜻이 담겨있는 비유 중 일부 번역하여 가져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익을 위해 금 채굴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 금을 원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금을 팔기 위해 투자한다. 이 이유 때문에 당신이 금을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금지되었다. 만약 해당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렇게 느끼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두로프는 해당 글을 통하여 ‘공식적으로는' TON과 텔레그램관의 관계는 종결되었다고 발표하였으며 앞으로 자신은 TON이라는 이름과 기술을 사용하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관계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2020년 6월 23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텔레그램의 TON 개발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음을 발표하였으며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반환을 약속하였습니다.
텔레그램이 공식적으로 TON 개발에서 손을 뗀 이후 TON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체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TON 블록체인을 사용하지만 텔레그램과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freeTON과 TON의 이름을 이어받아 텔레그램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newTON이 그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TON이라고 일컫는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바로 newTON(이하 TON)입니다.
비록 두로프가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TON과의 모든 관계를 끝내고 관계가 없다고 말하였지만 자신이 몇 년 동안 열정을 받친 프로덕트를 깔끔하게 잊는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했을 겁니다. 두로프는 입장 발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TON에 대한 관심을 표했으며 자신의 이념을 이어받아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TON에 기대를 보냈습니다. 마치 상디를 바라티에에서 떠나보내고 그가 자신의 신념을 이어받아 한 명의 멋진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제프처럼, 두로프는 자신이 SEC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만 했던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TON을 지속적으로 팔로잉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2022년에 들어서며 텔레그램은 직접적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 다시 진출하였습니다. 그동안 TON의 행보를 응원해오던 두로프는 8월 23일 TON의 DNS 옥션 플랫폼의 성공에 축하를 보내는 메시지에서 공식적으로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진출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TON이 이 정도의 결과를 얻어냈으면, 7억 명의 사용자를 가진 텔레그램이 직접 나서서 DNS 옥션 플랫폼을 론칭한다면 엄청난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현실이 되었습니다.
Fragment
TON 체인 위에서 디앱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지 약 2달 만인 10월 28일, 두로프는 텔레그램 유저네임 경매 플랫폼인 Fragment를 TON 체인 위에서 출시하였습니다. 아래는 당시 Fragment의 출시를 공표한 두로프의 텔레그램입니다.
유저네임을 오픈된 공간에서 공식적으로 사고팔 수 있는 최초의 마켓플레이스로 Fragment를 통해 구입한 유저네임은 텔레그램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TON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에 저장됩니다. 아직 지원되고 있지 않지만, 두로프는 훗날 사용자가 구매한 유저네임을 통해 내 채널, 내 이모지, 내 스티커 등에 대한 공공연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를 사고팔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하여 사용자가 자신의 창작 활동에 대한 온전한 보상을 누릴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Fragment가 가지는 진정한 의의가 텔레그램의 공식적인 블록체인 첫 진출이라는 점을 넘어 사용자들에게 진정한 소유권을 되돌려주겠다는 탈중앙화 정신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Fragment는 11월 30일 두로프의 발표를 통해 출시된 지 약 한 달만에 약 $50 mil의 판매액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Fragment의 이러한 성공이 TON 체인이라는 매우 빠르고 확장성이 높으며 탈중앙화 된 네트워크 위에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본론 서두에 첨부한 TON 광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비수탁형 지갑과 DEX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지난 11월 30일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비수탁형 암호화폐 지갑과 DEX를 구축할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FTX 사태는 두로프가 탈중앙화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하고 텔레그램의 다음 목표로 비수탁형 지갑과 DEX를 설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이번 사태를 통해 지갑과 DEX를 다음 타겟으로 잡은 것은 너무나도 논리적이고 당연하다고 보입니다. 아직 이와 관련한 텔레그램의 세부적인 계획이 발표된 것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프로덕트 그 자체보다 두로프가 가진 이념과 텔레그램의 큰 그림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텔레그램이 TON이라는 개발을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텔레그램의 유니크한 특성을 보면 텔레그램 자체를 만들 때부터 탈중앙화를 꿈꿔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좋지 않은 사건으로 인하여 대중들에게 유쾌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텔레그램이지만, 텔레그램은 202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5천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두로프에 따르면 현재 약 7억 명의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기존 메신저에서는 유료이거나 혹은 사용 자체가 불가능한 기능인 이모티콘, 스티커, 채널 및 봇 생성이 매우 자유롭습니다. 또한 텔레그램 자체에서 내보는 광고가 없거나 굉장히 미비한 숫자이며 2021년을 기준으로 수익화 모델을 도입했지만 기존 사용자들이 누리던 기능은 유료화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텔레그램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그날까지 유료화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필자는 위와 같은 텔레그램의 서비스가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가는 수많은 디앱과 이념적으로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블록체인 및 Web3.0의 핵심은 사용자가 온전히 자신의 소유권을 보장받으며 그 위에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현 시스템에서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플랫폼이 텔레그램이라 생각하였고 두로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블록체인을 통해 이를 더욱 발전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계획이 번번이 가로막힐 때마다 탈중앙화를 위한 집념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관철해나갔습니다. TON이 SEC에 가로막혔을 때도 그랬고, 개인정보 제공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부에 24시간 동안 운영 제재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마다 오히려 두로프는 탈중앙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며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고 지금의 텔레그램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텔레그램의 블록체인 진출이 단순히 FTX 사태로 인해 탈중앙화 흐름에 편승한 것이 아닌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필자가 바라보기에 두로프는 TON 체인 위에 지갑, DEX, Fragment, 등 다양한 디앱을 출시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텔레그램의 사용자가 어떠한 외부의 압력과 무관하게 온전히 자신의 것을 보장받는 시스템 구축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와 같이 텔레그램이 TON 체인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블록체인 생태계에 완전히 녹아든다면 텔레그램을 통해 결제, 검색, 창작 활동, 부가가치 창출 등 모든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텔레그램의 슈퍼앱화도 마냥 웃어넘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텔레그램의 행보를 응원하며 마지막으로 두로프의 말을 인용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Solution is clear: blockchain-based projects should go back to their roots — decentral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