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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May 14. 2023

드라마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

서우진 선생! 여기 석션 좀 부탁해요

크으윽 푸우욱 푸쿠쿠쿠큭... 콜록콜록


옆 테이블에서 코를 풀어내는 소리가 그 옛날 증기기관차 소리처럼 크고 우렁차다.

연이어 들리는 기침소리.

얼마나 그 소리가 찰지던지.. 나는 코 푸는 소리에 대한 불편함 보다, 그 분의 코가 더 걱정됐다.


"아라야 엄마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 여기서 뽀로로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어~"


아이에게 당부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이물질의 흔적이 가득했다.

엄마는 화장실로 갔고, 6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영상 속 캐릭터와 대화하듯이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한다. 뽀로로에게 말을 거는 아이의 목소리에도 감기가 묻어 있었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었던 시절엔 감기 환자가 없어서 동네 병원이 울상이라는 뉴스를 여러번 봤었는데,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고 나니 기침과 콧물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옆 테이블의 모녀도 그 '자주'에 속하는 풍경이고.


화장실을 다녀온 엄마는 혼자 얌전히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에게 다정한 말투로 칭찬했다.

그리고 엄마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영상 속 뽀로로 친구들에 대한 대화를 이어간다.

엄마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다정하게 질문하고, 아이는 엄마의 질문에 정말 열심히 대답하는 게 느껴졌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했지만, 시선의 언저리에서 실루엣으로 전해지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라야 잠깐만"


다정한 모습도 잠시.

다시 코푸는 웅장한 소리가 들린다.


아.. 정말 답답하시겠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데, 순간 어디서 김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거기 서우지인 선생. 여기 석션 좀 부탁할게요" (김사부 말투)

"네 김사부님!"


'응? 그러고 보니 정말 석션이라도 해주고 싶네. 그러면 저분의 목과 코가 편해지실 텐데.. '

뜬금없는 김사부의 드라마 대사. 또 거기에 뜬금없이 반응하는 내 내면의 목소리.


아마도 어젯밤에 봤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영향인가보다.

시즌 1때 부터 즐겨보던 드라마여서 시즌3이 시작되길 애타게 기다려 왔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즌 3이 시작되면서 하루하루 아끼는 마음으로 챙겨보고 있는데.. 너무 집중하면서 봐서 그럴까?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김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잠시나마 내가 서우진 선생이 되어 답답해하는 옆 테이블 환자의 기관지 이물질을 석션하는 상상을 해본다. 모두가 숨죽이며 쳐다보는 가운데, 내 두 손은 허공을 가르며 현란하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인다. 곧이어 배경음악은 절정에 이르고, 모두가 힘들 거라고 예상했던 옆 테이블의 석션 작업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김사부는 만족스러운 표정과 온화한 미소로 나를 쳐다본다. '역시 나는 김사부의 애제자 서우진 선생이다!!'



"아라야 이제 우리 교회 가야 할 시간이니까안, 그만 일어나자~"


아이에게 손을 내미는 엄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엄마의 목소리엔 여전히 이물질이 가득하고, 코는 매미가 붙은 듯 맹맹 거린다.

아이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카페 밖으로 걸어간다.


"아니 서우진 선생.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까 석션 성공한 거 아~니였어?!"

밖으로 나가는 엄마의 걸걸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김사부의 호통이 들려온다.




드라마 그만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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