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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May 12. 2023

멍 때리는 것도 너무 어려워.

시간에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멍 때리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니, 오늘은 아예 작정을 고 왔다.

애초에 이 카페에 온 것도 멍 때리기 위함이다.

멍 때리기엔 풍경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일부러 바닷가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를 검색한 후 찾아왔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 1분 1초도 소중한데, 일부러 시간을 낭비하러 그렇게까지 한다고?'

누군가는 그런 의문을 갖겠지만, 나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숨 쉬는 공기 속엔 수많은 생각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가득했다.

늘 뭔가를 해야 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편했다.

그렇다고 '꼭 뭔가를 했던' 시간들이 모두 유의미하지도 않으면서.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그것은 일종의 벽돌이다.

변기 물통 속에 넣어두면 수면이 올라가서 물절약이 된다는 그 벽돌.

내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그것은 어느샌가 내 일상의 그릇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내 일상 그릇의 수면은 점점 높아졌고, 급기야 흘러 넘쳤다. 

흘러내린 국물은 그릇의 표면에 달라붙어 끈적거렸다. 

피곤했다. 

내 하루하루는 너무 피곤했다. 흘러내린 생각의 국물은 온전한 잠의 시간마저 방해했다. 나는 잠든 순간에도 늘 꿈속에서 뭔가를 했다. 누군가를 만났고, 무언가를 했고, 어딘가를 갔다.

아침에 눈을 뜬 건 스마트폰의 알림이 아니라, 꿈의 상영관 엔딩 크레딧이었다.



휴일 아침.

나는 문득 결심했다.

오늘은 하루의 시간에 빈 공간을 만들어보자.

당장 벽돌을 치울 수 없다면, 애초에 물의 양을 줄여보자.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나는 카페를 검색했고, 아무것도 안 하고 풍경만 바라봐도 좋을만한 카페를 찾았다.

밤낮 구분 없이 울리던 SNS의 알림을 껐고, 깨톡의 주둥이도 잠궜다.

의식도 못한 사이에 이리저리 섞여서 경계를 상실한 내 일상과 타인의 일상을 구분하고 싶었다.


비교적 사람이 없을만한 이른 시간에 검색한 카페에 갔다.

마침 창가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가 하나 남아있어서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풍경은 역시 참 좋았다.

바깥에 외국어만 가득했다면 아마 해외의 어느 항구 도시에 와있는 기분이었을 거 같다.

가끔 오고 가는 배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계획했던 온전한 멍 때리기는 쉽지 않았다.

딱 5분 정도라도 풍경만 보고 싶은데, 내 무의식은 1분도 지나지 않아 자꾸만 손을 움직여 스마트폰 화면을 켜게 하거나 노트북을 꺼내게 만든다.

- 풍경이나 바라보고 있을 시간에 시시콜콜한 커뮤니티 새 글이라도 확인하란 말이야.

- 책은 안 읽니?

- 글은 안 써?

- 어제 올린 글에 댓글 달린 거 같은데, 대댓글 안 달아?

- 업체에서 메일 온건 답장했어?


아니! 아무것도 안 하려고 작정하니,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해야 할 일들이 주루룩 떠오른다.

밀려오는 파도의 물결을 감상하고 싶은데, 잊고 있었던 할 일의 물결만 쏴아아 소리를 내며 머릿속 백사장을 매몰차게 때린다.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내 두 손..

노트북은 전원이 들어와 있고, 스마트폰도, 책도 어느새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내 두 눈은 분명히 창밖을 향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내 몸뚱이는 뭐 각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거야?

'가만히 있어야 하는 순간'이라고 몇 번이나 머리가 명령했는데, 다들 그렇게 바쁜 거지?

씩씩 거리는 그런 독백 속에 내 눈은 어느새 다시 모니터를 향해 있고, 두 손은 키보드를 두들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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