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옆 호텔 숙박기
쿵. 쿵. 쿵.
강한 베이스음에 벽이 춤을 춘다.
현란한 음률과 리듬에 반응하는 도파민이 지르는 환호성.
차라리 일어설까.
맥주 한 병 손에 들고 리듬에 몸을 맡겨 흐느적거려야 할까.
피곤한데. 잠들고 싶은데.
오늘 아침. 나는 람부뜨리 호텔에서 체크아웃했다.
카오산 로드와 가깝고 조용한 거리. 수압이 조금 약하긴 했지만, 특별한 불편함은 없었기에 5박을 머물렀지만, 갑자기 인상된 숙박 요금 때문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차라리 잘됐다.
여기까지 와서 한 곳에서만 머물다 떠날 순 없으니깐.
하지만 호텔 밖으로 나온 지금까지도 다음 숙소를 예약하진 못했다.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서 고민해 봤지만, 카오산 로드를 떠날지 말지, 끝내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침, 점심, 저녁, 밤 그리고 새벽의 카오산 로드를 모두 경험한 나에게 이곳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었다. '경험'이라는 표현 보단 '정찰'이 더 어울리겠다. 깊은 밤. 잠이 안 올 때,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나는 카오산 로드를 한 바퀴, 두 바퀴 걸어 다녔다.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혈액이 오고 가는 심장처럼 언제나 활기가 가득한 그곳은 혼자 여행하는 자의 적적한 마음을 충전하고도 남을 만큼의 에너지로 가득했다. 일종의 초고속 무선 충전소라 할 수 있겠다. 숙면에 필요한 배터리가 부족할 때, 그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가능한 무선 충전소.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문득 찾아오는 적적한 마음만은 어쩔 수가 없다.
내 의식은 마치 일몰과 함께 움직이는 것만 같다. 해가 뜨면 여행자라는 가면을 쓰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해가 지면 그 가면은 벗겨지고 날 것 그대로의 내가 다시 드러난다.
잡념은 달빛을 먹고 자라는 걸까.
사라진 줄 알았던 옛 기억,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의 고민, 귀국 후 한국에서 다시 마주해야 할 불안한 미래가 잡다한 생각이라는 먼지 뭉치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번화가 근처의 숙소를 찾게 된다. 마음이 대낮의 활기에서 밤의 적적함으로 기울 때, 여전히 불 밝힌 세상의 온기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그 인파 속에 섞여 일원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샤부샤부의 쇠고기이고 싶을 뿐, 설렁탕 속 고기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따뜻한 온기는 필요하지만, 그 속에 완전히 녹아들고 싶지는 않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지만 사람들의 숨결이 가끔은 그립고, 인파 속에 묻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혼자 있고 싶은. 이 오묘하고도 이상한 심정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은 설렁탕이지만, 여행은 샤부샤부니까.
새로운 호텔을 결정하기 위해 카오산 로드 골목 입구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전 세계 어디서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의 상징. 스타벅스. 이곳에서 여행 중간 점검 및 숙소 예약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현지의 카페에 비해 비싼 가격이라 그런지 손님의 대부분은 외국인들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이층에 자리를 잡았다.
일층엔 일행과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이층은 혼자 앉아서 일에 열중하는 손님들이 많이 보였다.
창가 옆의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스마트폰 보다 큰 노트북 화면으로 방콕 지도 속의 호텔들을 꼼꼼히 살폈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쇼핑몰 밀집 지역이나 한국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시내 호텔을 경험해 볼까? 아니면 이곳, 카오산 로드에 계속 머물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이곳, 그중에서도 여행자 거리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호텔을 선택했다.
어차피 곧 치앙마이로 떠날 거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올 때는 방콕의 다른 지역에 머물면 되니까.
이왕 카오산 로드에 계속 머물 거면 변두리 말고 가장 중심에 있는 호텔을 제대로 경험해 보자.
내가 예약한 호텔은 수많은 술집들과 클럽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었다.
카오산로드에는 유명한 클럽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실내 클럽, 또 다른 하나는 오픈 클럽이다. 오픈 클럽이라 하면 생소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그 모습을 간단히 비유하자면, 서울 남산타워 계단을 떠올리면 된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3층 건물 높이의 계단이 있고, 계단 양 옆으로 테이블이 있다. 그 꼭대기쯤에 DJ 테이블이 있고, 거기서 DJ는 신나는 음악을 선곡하고 믹싱 하며 청중들의 흥을 돋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은 있지만 정면에 벽이 없는 오픈된 구조물.
그러니까 클럽 내부로 입장하지 않아도 밖에서 함께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간혹 DJ가 유명하고 신나는 음악을 믹싱 하면 클럽 내부의 손님들은 물론, 지나가다가 구경하던 행인들, 그 옆의 술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 모두 함께 춤을 추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독특한 곳이다.
호텔은 그 클럽의 바로 옆에 있었다.
오픈 클럽 바로 옆의 호텔이라는 바로 그 점에 호기심이 생겼다.
생애 언제 한번 이런 위치의 호텔을 경험해 볼 수 있겠는가. 에어비앤비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숲 속의 커다란 나무 위의 호텔, 아찔한 절벽의 중앙에 걸려있는 호텔처럼 평소엔 경험해 보기 힘든. 굉장히 독특한 위치가 아닐 수 없다. 혼자니까 도전해 볼 수 있지, 생소한 것에 거부감이 있는 동행자가 있다면 분명히 반대했을 위치일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1박 예약버튼을 누르고 결제했다.
적적함의 냉기가 체온을 떨어 뜨릴 때, 그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충전받았던. 그 열기의 중심.
가장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는 '흥의 중심'으로 들어가 보자.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떨지 모르니깐, 일단 하룻밤 묵어보고 괜찮으면 연장할 예정이었다.
둠칫 둠칫 둠짓.
"와아" "캭"
연속되는 강한 베이스음과 손님들의 환호소리.
객실의 창문과 벽도 리듬에 맞춰 드드득 몸을 흔들어 댄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함께 맥주 할래요?"
흔들거리는 벽과 창문에게 다가가 말을 걸면, 옅은 미소와 함께 당장이라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줄 것만 같은 생생한 현장감.
이곳은 호텔인가 클럽인가.
오픈된 클럽이 내뿜는 사운드는 예상보다 강렬했다. 그것은 호텔의 외벽을 뛰어넘어, 여러 객실들을 통과한 후, 내 방의 창문과 벽을 흔들어 댔다.
쿵. 쿵. 쿵.
모두 잠든 시간에 울리는 아파트 위층의 발망치 소리.
응. 응. 응.
모텔 옆방 남녀의 포효는 그저 백색소음에 불과했었음을 나는 침대에 누워 뜬 눈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베개를 뒤집어써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치 거대한 괴물의 심장 옆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람부뜨리에서의 적적함을 채워주던 이곳의 에너지는 이미 과충전 된 지 오래였다.
그 강렬한 에너지는 마치 심장 제세동기 같았다.
"자.. 잠깐만.. 나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잠들려고 눈 감은 거야. 심장 제세동기는 저리 치워줘."
녀석은 내가 침대에서 눈을 감으려 할 때마다 마치 의식을 잃은 환자를 대하듯 사정없이 충격을 줬다.
도저히 잠들 수가 없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방문을 열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호텔 정문이 열리 때마다 음악은 점점 더 크고 선명해졌다. 여행자 거리엔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고, 거리에서 올려다본 오픈 클럽엔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음악을 즐기는 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은 앉아서 술 마시며 리듬을 타고 있었고, 일부는 스테이지 위에 올라가서 전문 댄서 같은 몸놀림을 과시했다.
매일 밤 지나다니던 거리였지만, 지나가던 행인으로서 클럽과 옆 건물 거주인으로서의 클럽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둠칫 둠칫 베이스 음은 더 이상 흥겹지 않았다. 그것은 커다란 스피커에서 밖으로 나와 두더지 게임의 뿅망치처럼 사정없이 나를 내려쳤다.
나만 빼고 흥에 겨운 인파를 헤치며, 더 이상 음악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마사지 가게를 발견했다. 나는 호객행위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발마사지 30분이요."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마사지를 받다 보니 스르륵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마사지사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마사지가 끝났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30분이 지나 있었다.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과자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호텔로 다시 들어갔다.
잠드는 걸 포기한 나는 TV를 켰다.
TV 속에는 한국의 '세상의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똑같은 포맷은 아니지만, 진행자가 스튜디오에 앉아서 기상천외한 영상을 소개했다.
하수구에서 아주 큰 뱀을 꺼내는 구조대, CCTV에 녹화된 오토바이 총기 강도, 집안에서 발견된 벌집 같은 기상천외한 영상들이 이어졌다.
신나는 클럽 음악과 화면의 내용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내게 설명이 필요 없는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이 이 시간에도 방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클럽의 소음은 창 밖의 어둠이 옅어지는 새벽이 되어서야 멈췄다.
TV를 껐다.
영업종료를 아쉬워하며 흩어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잔잔한 자장가처럼 점점 귀에서 멀어져 갔다.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감에 스르륵 눈이 감겼다.
- 클럽 옆 호텔 후기.
멀리서 볼 땐 숙면을 위한 충전소였지만,
가까이에 있으니 불면을 위한 방전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