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도 옆으로 누워서 TV 보나요? | 왓 포 사원

왓 포 사원의 와불상과 밤에 더욱 빛나던 왕궁.

by 하임




울면서 기도하는 여인을 본 이후로 이곳을 대하는 마음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아침에 이곳을 오기로 결정했을 땐, 그저 관광객의 마음이었다.

방콕에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니까 유명한 관광지 정도는 가봐야 하지 않을까 했던 마음.

그 마음은 왕궁 앞에서 500밧의 입장료를 확인했을 때 고스란히 드러났다. 500밧이나 내고 들어갈 가치가 있을까? 차라리 마사지 한번 더 받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프라 우보솟에 들어온 것도 에메랄드 불상이 유명하다니깐 직접 관람하기 위한 목적이 컸었다. 하지만 법당 한쪽에서 울면서 기도하던 여인을 본 이후론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했던 관광객의 마음이 아침 안개 걷히듯 어딘가로 사라졌다. 조금 더 진지한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은 이곳을 대하는 현지인들의 절박함과 신성함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었다.



나는 왓 프라깨오의 다른 건물들을 천천히 살펴본 후 다음 목적지인 왓 포 사원으로 향했다.


왓 포 사원으로 가는 길에 왕궁의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에 담기 힘들 만큼 거대한 왕궁은 유럽풍 건물 위에 태국 전통식 황금빛 지붕이 씌워져 있었다.

이는 19세기 후반 라마 5세가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탈리아 건축가를 고용해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을 설계했었는데, 당시 태국 왕실 고문들이 건물에 태국의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그 절충안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만약, 라마 5세가 당시 왕실 고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유럽풍으로만 지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그저 흔한 유럽의 풍경으로만 여기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 왕실 고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태국 전통식 지붕을 올렸기 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몇 번이나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왕이 머무는 공간이 아닌 동서양의 묘한 조화가 가미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땅에 가까운 저층은 흙의 색과 비슷한 어두운 색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맑은 하늘처럼 명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지붕은 태양을 연상케 하는 황금빛 장식물.


그 독특한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에 동양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훌륭한 평가를 받은 파리의 화가처럼, 서양의 영향을 받은 동양의 예술가가 만든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다.


왕궁은 현재도 사용 중인 시설들이 많아서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사진으로 보이는 건 일부고 그 뒤편의 여러 건물에서는 외국 사절 접견 같은 주요 행사가 열린다고 했다. 그렇게 중요한 장소이니만큼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왕궁은 사원과 사원 사이에 있는 야외 미술관처럼 느껴졌다.

눈으로만 볼 수 있고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왕궁의 외관은 아름다운 조각품 같았고, 그 사이사이에 잘 관리된 정원은 조각품과 정원이 조화를 이루는 파리의 로댕 미술관을 떠올리게 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왓 포 사원에 도착했다.


왓 포 사원은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로 태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화려한 불교 예술품들, 그중에서도 와불상이 가장 유명하다.

와불상은 옆으로 누워있는 부처님의 상을 말하는데 길이 46m, 높이 15m라는 그 압도적 크기도 놀랐지만, 옆으로 누운 모습이 나에겐 무척 생소했다.

왓포 사원 내부엔 아주 작은 크기의 와불상도 전시되어 있다.

이 자세는 누가 봐도 침대나 소파에 누워서 TV 볼 때 자세 아닌가?

부처님도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셨나?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한 자세가 너무 신기해서 부처님의 발꿈치부터 발바닥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펴봤다.

금박으로 둘러싸인 전신과 특이한 문양이 있는 발바닥을 제외하고는 매일 밤 침대에서의 내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누운 침대는 푹신하고, 부처님이 누운 곳은 돌침대를 연상하게 할 만큼 딱딱해 보인다는 것 정도일까?

당연히 부처님 시대엔 TV가 없었을 테니, 와불상의 의미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알고 보니 이 자세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거라고 했다. 열반은 생사의 윤회 자체를 종식시키는 궁극적인 목표. 즉 번뇌와 욕망, 어리석음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 그 자체를 말한다. 열반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해탈은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해탈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방법과 과정을 의미하고, 열반은 해탈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목적지인 셈이다.


이 자세는 모든 중생들이 해탈의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나도 매일 밤 침대 위에서 같은 자세를 취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내가 이 자세를 취할 때는 밤은 깊어가는데 온갖 잡념으로 인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때. 가벼운 주제의 영화나 영상으로 신경을 돌려, 잠드는 걸 방해하는 고민으로부터 벗어나보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니깐.

부처님은 번뇌와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서 해탈하셨고 나는 그것들을 회피하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그것들 앞에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언제쯤 가벼워질 수 있을까. 과거의 미련과 아쉬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까.

당장은 그 방법을 알지 못하니, 나는 그저 반복해서 와불상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이 분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신 분이시니, 그런 분 근처에라도 머물면 내 오랜 고민과 잡념 또한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렇게 부처님의 머리에서 발끝으로 향하니 아주 독특한 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발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발바닥에 새겨진 자개 문양은 108 번뇌를 상징한다고 했다.


왜 발바닥에 새겨 넣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인생 전체로 보면 한 걸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온 길엔 발자국을 남기고, 그 길의 흔적이 발바닥에 묻어나듯이, 우리 인생의 발걸음이 늘어날수록 하루하루의 번뇌들이 발바닥에 묻어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삶은 여행이듯, 우리는 그저 걸어갈 뿐이니깐.


그럼 매일매일 발을 깨끗하게 씻는 것만으로도 발에 묻은 번뇌들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발바닥을 지나 와불상의 뒤편에는 둥근 놋쇠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왓포를 찾는 신도들은 그곳에 동전을 넣으며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빌었다. 나도 이왕 온 김에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항아리에 넣었다.

내 삶을 짓누르는 번뇌가 조금만 더 가벼워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왕궁의 관람 가능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왕궁 밖으로 나왔다.

이왕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근처에 도보로 갈만한 곳을 검색해 봤다.

구글은 왓 아룬(아룬 사원)의 풍경이 아름다운 뷰포인트가 있다고 했다. 장소 리뷰 사진들을 보니깐, 노을이 질 무렵 사진들이 아름다웠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천천히 주변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뷰포인트를 향해 걸어갔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이미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착한 뷰포인트.

Tha Tian Pier. 페리 선착장이었다.

구글 지도에도 '유명한 뷰포인트'라고 표시된 곳이라 그런지 선착장에는 페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보다 노을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서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짜오프라야 강 너머로 보이는 아룬 사원.

해가 점점 강물 너머 어딘가로 내려가고 하늘이 주황색 노을빛으로 물들자 사원의 불빛도 켜졌다.

처음엔 노을과 같은 주황색인줄 알았는데, 완전히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노란 조명으로 보였다. 같은 색이었는데 주위 밝기에 따라 조명이 달라 보였는지, 아니면 노을과 밤에 맞춰 조명색을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후에 왕궁에서 봤던 태국 전통의 지붕의 색 조합처럼 '주황색'과 '노란 황금빛' 조명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한동안 노란색과 주황색을 볼 때마다 태국이 떠오를 거 같은 기분이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를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이었나 보다.

강 너머로 보이는 노란색 불빛은 파리의 에펠탑 야경과도 닮았다.

에펠탑의 노란 불빛이 켜지면, 센강 다리 위에서 오고 가는 페리 너머로 에펠탑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성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지만, 왓 아룬은 사원이어서 그때의 감성과는 다른 신성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 눈에 담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는 점은 에펠탑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카오산 로드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갈 때 마주친 왕궁 또한 태양아래서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잠든 시간이라 그럴까. 더 이상 생존을 위해 그늘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로움 때문일까. 관광객들이 사라진 한산함 때문일까.

내가 만약 엄청나게 몸이 큰 거인이라면, 왕궁을 그대로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 씌워주고 싶을 만큼. 밤의 왕궁은 동화 속 왕비의 황금빛 왕관처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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