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통나무였지만, 끝은 황금이었다. | 방콕 왕궁

화려함. 그 속에 숨겨진 더 큰 화려함.

by 하임

한국에서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여행 중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늘도 눈 뜨자마자 구글 맵과 한참 동안 눈 싸움 하다가 검색창에서 '방콕에서 꼭 가야 하는 곳'을 입력했다.

검색창을 누르자마자 한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태국을 상징하는 하얀 벽 너머로 반짝이는 황금빛 건축물. 바로 방콕 왕궁이었다.


경로를 검색했더니 또 3번 버스(에세이를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3번 버스는 매번 오랜 기다림의 수행을 요구하는 버스다.)를 타란다. 혹시나 싶어서 도보 경로를 검색했더니 20분 조금 넘게 걸린다고 했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창문 너머 오늘의 하늘엔 큰 구름이 많아 보이니깐 걸어서 가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나는 가볍고 시원한 코끼리 바지를 입고 팔토시, 선글라스 그리고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가방에 넣은 후 밖으로 나섰다.


구글 지도가 안내하는 경로를 따라 절반 정도 걸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비슷한 복장의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개미들의 행렬처럼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었다. 개미들이 향하는 곳엔 달콤한 음식 조각이 있듯이, 관광객들이 향하는 곳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이 근처에 유명한 관광지란 왕궁밖에 없으리라.

나는 스마트폰 배터리도 아낄 겸 구글 지도와 GPS를 끄고 그들의 행렬에 섞여서 무작정 따라갔다.


곧이어 끝이 보이지 않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왕궁이 눈앞에 보였다.

왕궁의 면적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하얀 담벼락을 따라 한참을 걸어서야 매표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관광객들 속에 섞여서 걷다 보니-비록 그들은 내가 모르는 언어를 사용했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입구에는 입장 가능한 의상이 안내되어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 짧은 반바지, 짧은 치마, 민소매 안됨.

그래서 그런지 입구에는 짧은 반바지 위에 코끼리 바지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몇몇 보였다. 미처 긴바지를 준비하지 못한 관광객들에게 코끼리 바지만큼 저렴하고 실용적인 것은 없을 테니. 가볍고 얇지만 속이 비치지 않고 하늘하늘 거리는 시원한 소재에다가 가격도 100에서 200밧(한국돈으로 4천 원에서 8천 원)으로 저렴하니 하나쯤 구입해서 들고 다니다가 긴바지가 필요한 곳에서 입기에 딱 좋다.


입구로 들어서니 넓은 잔디밭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정원의 끝에는 주황색 지붕의 하얀색 담벼락이 있고 그 너머로 황금빛 건물이 보인다. 잔디밭 주위는 끝이 뾰족한 원뿔형 모양의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국적인 모습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다가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매표소가 보였다. 가격은 500밧이였고, 티켓은 3시 30분까지. 내부 구경은 4시 30분까지라고 했다.

입구에는 외국인을 위한 무료 안내서가 비치되어 있고, 한국어도 있었다.

유럽의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일본어, 영어 안내서는 있지만 한국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비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언어에 비해 번역이 부실해서 기껏해야 내부 지도 역할밖에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곳의 안내서는 따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도 될 만큼 꽤 괜찮았다. 덕분에 늘 관광지 입구에서 고민하게 만들었던 오디오 가이드를 미련 없이 지나칠 수 있었다.


떠들어선 안되고, 셀피 여의봉도 안되고, 라이브 방송도 안된다는 안내문 덕분인지 왕궁은 입구부터 굉장히 조용했다. 그 적막함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사찰의 풍경소리와 새소리가 화려한 장식의 금빛 조형물과 대비를 이뤘다. 그야말로 눈과 귀가 만족하는 즐거움이었다. 눈은 화려함에 크게 떠지고, 귀는 자연의 소리에 가까울수록 편안함을 느끼니깐.

나는 그 풍경 어디쯤의 그늘에 기대어 왕궁 안내서를 천천히 읽어봤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 옛날 왕궁의 모습은 상당히 초라했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통나무로 성벽을 쌓고, 임시로 목재를 이용해 작게 지어졌으며, 거기서 임시 대관식을 했다. 그 이후로 형편이 나아지면서 나무로 지었던 걸 다른 소재로 점점 교체했고, 후대의 왕들이 그 이후로 계속해서 모듈 쌓듯이, 레고 만들듯이 옆으로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건물을 채워 넣고, 다시 채워 넣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점점 더 단단해지고 더 화려해져서 지금은 이렇게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이야기.


말 그대로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 하리라에 딱 어울리는 스토리다.

문득, 자기 계발서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시작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고, 더군다나 처음부터 완벽하기란 더더욱 어려우니깐.

왕궁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현명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증축되어 온 듯했다.


만약 태국의 왕이 나처럼.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처럼 처음부터 완벽주의자였다면 이렇게 화려한 지금의 왕궁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혹은 나라 살림도 어려운데, 대규모 인력을 총동원해서 처음부터 고급소재로 만들기를 강요했다면, 왕권 자체가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사를 봤을 때 망한 왕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그러하니깐.

하지만 라마 1세는 처음엔 자신의 처지에 맞게 나무로 소박하게 시작했고, 그 미약한 시작은 지금의 화려한 결실을 낳았다. 그러니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라. 시작은 통나무지만, 끝은 황금빛 궁전이리라.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뜻밖의 깨달음 속에 왓 프라깨우에 도착했다.

왓 프라깨우는 에메랄드 사원이라도 불리는데, 태국 전역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이고 에메랄드 불상이 있는 태국 불교의 성지라고 했다.

본당의 돌담과 회랑에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태국화 한 라마끼엔 설화를 묘사한 178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라마 3세 때 제작된 것으로 계속해서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는 '라마 왕의 일대기'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된 인도의 대서사시라고 한다. 저술의 시대적 배경이 불교가 발흥하던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라고 추정하고, 이 대서사시에 등장하는 원숭이 영웅 하누만은 훗날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의 원형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하면 더 좋았겠지만, 갈 길이 먼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에메랄드 불상이 있는 프라 우보솟으로 갔다.

프라 우보솟은 1783년 라마 1세 시대에 지어졌고, 사찰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입구는 동쪽으로 나있고, 외벽에는 동남아시아, 남아시아의 상상 동물이라는 라루다 조각상이 황금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왓 프라깨오 내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만큼 어느 기둥 하나 그냥 세운게 없었다. 눈이 닿는 모든 곳에는 정교한 손길의 화려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장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대망의 내부. 에메랄드 불상.

태국인들은 이 에메랄드 불상을 국왕의 수호신으로 여긴다고 한다.

사원은 왕궁에 속해 있으므로 왕이 직접 관리한다. 1년에 세 번 태국 국왕이 직접 불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진행한다고 하니 이 불상이 가지는 의미가 태국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국왕의 제사를 치르는 왕실 수호 사원이라고 하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


중요하고 신성한 사원인 만큼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외부에서 문 틈을 통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황금 옷 사이에 옥색의 부처님은 그 존재만으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위에 첨부된 오른쪽 사진 참고)


에메랄드 불상도 그렇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와,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내부의 천장과 벽에는 석가모니 일대기와 국왕의 행진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보자마자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가 저절로 떠올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에 넋을 잃고 멍하니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그림을 쫓아 시선을 옮겼다. 동서양 혹은 종교의 차이 때문인지 화풍은 달랐지만, 그 그림이 풍기는 힘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우와. 그냥 눈에만 담기엔 너무 아까운 장면이라고 감탄하며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한 태국인에게 내 시선이 멈췄다.


그녀는 두 손을 모은채 훌쩍 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은 곳에서 저렇게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을 향해 소원을 빌 정도면 얼마나 절박한 사연을 안고 있을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화려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외지인들에겐 꼭 가봐야 할 화려한 관광지 중에 하나인 이곳이. 현지인에겐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절박한 장소일 수 있다는 것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구경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서 불상을 바라봤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을. 그리고 눈물 흘리며 애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저분의 소원도 꼭 이뤄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들떴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고 나는 잠시 관광객이 아닌 중생으로서 부처님께 예의를 갖춰서 삼배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