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장소에서의 의외의 힐링.
쯧쯧쯧
뒷목을 지그시 누르던 손이 멈추며 들려오는 혀 차는 소리.
갑작스러운 당황스러움에 마사지 베드의 구멍 속에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이가 지긋한 마사지사는 내 목의 뒷부분을 누르며 말했다.
"알유 오케??"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괜찮냐는 말에 나는 얼떨한 얼굴로 "예.. 예스"라고 답했다. 마사지가 아프냐고 묻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가냘픈 체구의 할머니 마사지사의 손압은 그녀의 체구처럼 힘이 없었다. 타이 마사지에서 기대했던 특유의 강한 힘이 느껴지지 않아서 오히려 처음엔 불만족스러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마사지가 계속될수록 할머니의 손길은 의외의 시원함을 선사했다. 마치 어렸을 적 배탈 나면 "엄마 손은 약손이다" 다정하게 어루만지던 엄마의 손길처럼. 그녀의 손은 통증들 사라지게 하는 마법 같은, 설명하기 힘든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곧이어 알아들을 수 없는 태국어로 몇 마디 하더니 다시 짧은 영어로 말했다.
"유 헤브 스트레스."
"네?"
"히얼. 스트롱. 히얼."
그녀는 내 뒷머리와 목이 만나는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만져봤다. 마치 누군가 몰래 작은 구슬을 심어둔 것처럼. 단단하고 작은 무언가가 만져졌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스, 아이 헤브 스트레스"
"알 유 스튜던트?"
"노우. 아임 낫 스튜던트, 벗 라이프 이즈 스트레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진지하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따라 했다.
"유얼 라이프 이즈 스트레스.."
그녀는 무언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끝내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는지, 결국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엎드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라이프 이즈 스트레스.'
얼떨결에 내뱉은 말이지만 씁쓸한 진심이다.
만약 한국에서 친구에게 같은 말을 했다면, 곧이어 이런 말이 뒤따라 왔을 것이다.
"요즘 스트레스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딨어?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뭘.."
학창 시절 영어책의 "How are you?" 뒤에 자율주행처럼 따라오는 "Fine thank you, and you?"처럼.
너무도 뻔한 -심지어 시험에도 나오지도 않는- 무의미한 공식이다.
마치 누군가 미리 짜놓은 매뉴얼처럼. 뒤이어 따라오는 형식적인 말들.
어렵게 꺼낸 누군가의 무거운 진심을 한순간에 휘발시켜 버리는 가벼운 반응.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라서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태연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디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으니깐.
"그렇지. 다 힘들지 뭐. 술이나 한잔 하자."
가벼운 반응엔 가벼운 대응이 최선이다.
무거운 진심은 술잔에 담아 마음으로 다시 삼켰다.
그렇게 계속 삼키기만 하던 스트레스는 점점 햇볕도 바람도 통하지 않은 밀폐된 마음속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점점 숙성되어 갔다.
"갑자기 웬 한숨이야?"
가끔 친구들은 내게 물었다.
나도 모르게 종종 새어 나오는 긴 한숨은 숙성을 지나 부패되어 가는 감정의 덩어리가 내뿜는 가스였다. 아무리 내뱉어내도 쉽게 빠지지 않는 부패의 흔적.
고개를 숙여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어디서 새어 나온 가스일까?
아무리 둘러봐도 이제는 그 실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 와서, 이제는 어떤 고민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도 나지 않는. 이름조차 잃어버린. 내 안의 불청객들. 따뜻한 위로 한번 못 받고 계속해서 삼켜진 녀석들은. 내 눈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결국 내 시선의 완전한 사각지대로 숨어들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먼저 진지하게 "요즘의 너의 스트레스는 뭐야?"라고 물어도 딱 집어서 대답하기 힘들 거 같다.
분명 존재하지만,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녀석을 대신해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냥 그렇지 뭐. 스트레스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딨겠어?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뭘."
무거운 감정은 또다시 술잔에 담겨 삼켜졌다.
할머니가 혀를 차며 뒷목의 작은 구슬을 만져보라고 했을 때,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어디 갔나 했더니
내 목 뒤.
거기 있었구나.
조금 더 일찍 할머니를 만났더라면.
고민과 걱정거리가 보다 명확한 형체를 갖추고 있던 시절이었다면.
나는 어쩌면 마사지 베드에 얼굴을 박은채로 주절주절 입 밖으로 모두 꺼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를 모르는 할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그 마음만큼은 눈치채고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태국어로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줄 것만 같다. 물론, 나는 할머니가 건네는 위로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함께 걱정하는 그 진심 어린 마음만은 전해지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다른 곳을 마사지할 때 보다 더 오랫동안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천천히 목 뒤를 어루만졌다.
마치 평생을 외면받다가 결국 숨어버린 나를 달래주듯이.
뭔가 울컥했다.
할머니 손 안의 작고 동그란 것이 '나' 같아서.
외면받고 외면받아서 결국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버린. 내가 외면한 '나' 같아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는 조심스레 나를 깨웠다. 그리고 다시 뒷목을 만져 보라고 했다.
작은 구슬은 사라졌다. 차갑고 단단했던 녀석은 할머니의 따뜻한 온기를 받고 다시 내 속 어딘가로 스며들었다
할머니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코쿤캅"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할머니는 알 수 없는 태국어 몇 마디와 함께 내 어깨를 토닥거린 후, 다시 엎드리라고 손짓했다.
약손은 머리로, 다시 팔에서 등으로 옮겨갔다.
옮겨가는 도중에 한 번씩 뒷 목의 구슬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게 느껴졌다.
뭉쳐있던 마음도 풀리고, 뻐근했던 근육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역시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