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산 로드는 땅콩 크림처럼.

어릴 적 먹던 땅콩크림 샌드 같았던 카오산 로드

by 하임

카오산 로드는 마치 어릴 적 먹던 땅콩크림 샌드위치의 크림 같았다.


포장지를 뜯어 겹쳐진 식빵을 살짝 열어보면 한 곳에 뭉쳐있던 땅콩크림.

나는 샌드위치를 먹기 전에 크림이 뭉쳐 있던 부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식빵 전체에 크림을 골고루 펼친 후에야 한 입 베어 먹곤 했다.

방콕을 하나의 샌드위치라고 하고, 그 샌드위치 공장에 크림 분배기가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한데 모아 카오산 로드에만 꾹 짜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자동차 두대가 동시에 오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거리였지만, 앞사람의 걸음걸이에 속도를 맞춰야만 넘어지지 않고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그곳은 수많은 인파 그 자체였다.


이 꾸덕한 땅콩 크림은 도대체 어디까지 뭉쳐있는 걸까.

나는 인파의 흐름에 맞춰 계속해서 걸어갔다.

정확하게 카오산 로드의 경계선까지였다. 카오산 로드의 입구를 감싸고 있는 도로를 건너면 그곳은 마치 새벽거리처럼 어둡고 한산했다.


불 켜진 몇몇 노점상들이 보이긴 했지만, 한두 명의 현지인들만 앉아서 허기를 달래고 있을 뿐. 여행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온탕과 냉탕. 밀림과 사막. 여름과 겨울.

카오산 로드와 그 너머의 거리는 그렇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땅콩 크림 속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 음악 소리, 불빛. 생명의 열기가 다시 온몸을 감싼다.

수많은 상점들.

주문을 받으면 즉시 만들어 주는 생과일주스 가게 앞엔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태국은 '땡모반'이라는 수박주스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것을 위한 기다림이 아닐까 싶었다. 김밥천국처럼 온갖 메뉴를 파는 식당들이 즐비했고, 알록달록한 열대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 주는 상점에선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줄지어 선 레스토랑엔 밴드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고, 거리까지 펼쳐진 테이블엔 공연을 관람하며 흥을 발산하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술집의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는 형형색색 팔찌와 액세서리를 손님들에게 판매하려는 작은 아이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 외에도 마사지샵 거리, 술집 거리, 맥도널드, 타코 가게, 호텔, 클럽,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악어고기와 식용 곤충등 특이한 음식을 판매하는 노점. 비슷한 듯 다른 종류의 상점들은 그저 바라만 봐도 눈이 즐거운 볼거리였다.


같은 거리를 여러 번 돌았음에도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쯤, 주황색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 내 앞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발마사지 30분 150밧이 적힌 메뉴판.

메뉴판의 주인은 내 앞으로 다가와 미소 지으며 '마싸지' '마싸지' 외쳤다.

안 그래도 오래 걸어서 발바닥에 열기와 통증이 슬슬 느껴지던 참이었다. 태국에 왔으니 마사지를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아주머니를 따라 바로 옆의 가게로 들어갔다.

마사지사의 안내에 따라 입구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카운터 앞에 서자 여러 종류의 마사지와 가격이 적힌 정식 메뉴를 보여주며 어떤 것을 원하냐고 물었다.

그들의 억양에 맞춰 '풋 마싸지' 라고 대답하자, 마사지사는 짧게 "오케, 팔로우 미" 따라오라고 했다.


가게 안은 굉장히 넓었다. 칸막이 없이 오픈된 공간에는 소파들이 벽을 따라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소파 위에는 마사지를 즐기는 여행객들로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마사지사는 비어있는 소파 중 한 곳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자리에 앉으니 마사지사는 따뜻한 물이 담긴 나무통을 가져와 상쾌한 아로마 향이 나는 세정제로 발을 씻겨줬다. 따뜻한 물의 온도와 상쾌한 아로마의 특성이 대조적이다. 냉탕에서 온탕으로 바로 들어갔을 때의 그 느낌처럼. 얇은 피부를 경계로 이완과 수축이 반복되는 시원함.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라고 외치는 그 묘한 느낌.


발에 묻은 오일이 따뜻한 물로 씻겨나가자 마사지사는 두꺼운 수건이 깔린 보조의자 위에 발을 올려 물기를 닦아냈다. 하루 종일 좁은 운동화 안에서 발버둥 치던 두 발이 이제야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오른쪽 발을 수건으로 감싸고 왼쪽 발부터 마사지를 시작했다.

부드러운 오일을 바르고, 발바닥의 혈자리를 꾹꾹 누르던 마사지사는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아파?" '괜찮아?"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괜찮아요" 마사지사는 미소를 머금으며 발바닥의 군데군데를 꾹꾹 눌렀다. 오픈된 공간이긴 했지만 마사지사와 눈이 마주치니 왠지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나는 고개를 들어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마사지 가게는 내부와 외부로 나뉘어 있는데, 가게 앞의 외부 소파에도 꽤 많은 손님들이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가게 안의 쾌적한 에어컨을 포기하고, 밴드의 라이브 연주 관람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외부 마사지 의자의 건너편은 라이브 밴드 공연을 하고 있는 술집이었기 때문이다. 카오산 로드의 술집은 대부분 거리까지 열려 있어서 밖에서도 그 라이브 공연을 구경할 수 있다. 푹신한 소파에서 라이브 공연을 '직관'하며 마사지를 받는 것은 에어컨과 맞바꿀만한 매력적인 환경이다.

다음엔 나도 저기에서 발마사지를 받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시선을 다시 가게의 내부로 돌렸다.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편안함에 잠이 든 사람. 이어폰으로 자신만의 음악 즐기는 사람. 마사지를 받는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 마사지사와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외국인. 그리고 대각선에서 나처럼 두리번거리던 또 다른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민망함에 서로 미소를 띠며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서둘러 각자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이었지만, 은밀한 무언가를 서로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이 시야의 가장자리에 잔상으로 남았다.


이런 상황들이 왠지 모르게 정겹고 재미있었다.

카오산 로드의 마사지샵은 그 옛날 우물가의 빨래터 같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방망이를 두들기며 스트레스도 풀고 소통하던 우물가의 빨래터처럼.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의 발들이 모두 같은 곳을 향해 뻗어있다. 그 발들은 중앙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하루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주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만의 언어로 우물가의 여인처럼 하루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사지는 발바닥에서 발등으로, 다시 장딴지로 이어졌다.

발바닥은 시원했는데, 장딴지는 아팠다. 온종일 땅의 중력을 빨아들인 장딴지는 돌처럼 단단했다. 마사지사는 장딴지에 단단하게 뭉쳐있던 피로의 응어리를 마사지 봉으로 풀어서 원래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아팠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프지 않은 척 참았지만, 뒤틀리는 몸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인고의 발버둥이 전해졌는지 마사지사는 나를 보며 웃었다.

"아파?"

"아.. 아니요.. 네.. 아파요.."


버스정류장에서의 삼십 분은 영원처럼 느껴졌었지만, 발마사지의 삼십 분은 찰나와 같았다. 마사지사는 수건으로 발에 묻은 오일을 닦아내며 마사지가 끝났음을 알렸다.

나는 두 손을 모으며 "코쿤캅"이라고 인사했다. 마사지사는 짧게 "캄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편안한 모국어를 두고 어설픈 상대의 언어로 대답한. 우리는 서로 웃었다.



발걸음이 가볍다.

가벼운 발걸음만큼 기분도 가볍고 상쾌하다.

이래서 태국에선 1일 1 마사지하나 보다. 육천 원 정도로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다면 정말 매일 마사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카오산 로드 구경을 멈추고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이 가벼움을 안고 잠들고 싶다.

나는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서 태국 과자와 음료, 그리고 맥주 한 캔을 구입했다. 호텔에 가서 태국 TV 방송을 보면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호텔이 있는 람부뜨리 거리에 들어서서 카오산 로드를 돌아봤다.

'안녕. 땅콩 크림. 내일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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