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산 로드에서 다시 만난 나의 꿈

by 하임

밤이 되면 카오산 로드의 펍(pub)들은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낮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 고요했던 거리는 이내 접이식 나무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들로 채워진다.

착. 착. 착. 능숙한 직원의 손길에 점점 영역이 확장되는 광경은 마치 접혀 있던 폴더블 폰이 펼쳐지며 두 배의 화면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밤의 카오산 로드가 이제 본격적인 작동을 시작한다.

노천 테이블의 정리가 끝나면 가게와 가게의 경계선엔 메뉴판 스탠드가 영역을 표시하는 깃발처럼 세워진다.

깃발을 넘는다고 전쟁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돈다.


겉으로만 보면 서로 비슷한 광경 같아 보여도, 사실 가게마다 다른 특색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카오산 로드 메인 스트리트인 '여행자 거리'의 펍들은 흥을 돋우는 클럽 음악이 주를 이룬다. 반면, 바로 옆의 '타논 람부트리 거리'의 펍들에서는 가게마다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감성적인 기타 소리가 돋보이는 락, 강한 비트의 메탈음악, 추억의 옛 팝송, 소수의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인디음악등 가게마다 음악의 장르가 다르다. 그 특색 있는 장르는 심야의 라이브 밴드 공연에도 이어진다.


펍의 라이브 밴드 공연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에 놓인 작은 무대에서 시작된다. 무대는 노천 테이블 쪽으로 나 있어, 야외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밴드의 연주를 즐기는 반면, 가게 안 손님들은 각자의 일행과의 시간에 몰두하곤 했다.


카오산 로드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나는, 매일 이곳을 지나치며 이 풍경을 지켜봤다. 하지만 차마 그곳에 앉아 구경할 용기가 나지 않아, 늘 공연장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혼자 들어가기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혼자 즐기기 레벨로 따지자면 카오산 로드는 1 레벨이다. 이곳에는 혼자 있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거리 이름 자체가 '여행자의 거리'이지 않은가. 만약 '관광객의 거리'였다면 난이도는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관광객'의 기본 값이 '둘 이상의 단체'니까 대부분의 공간이 2인 이상에 맞춰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여행자'는 다르다. '여행자'의 기본값은 '혼자'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객은 물론, 펍에서도 혼자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동안 내가 손님이 아닌 구경꾼에 머물렀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은.

응원하고 싶지만, 질투를 숨길 수 없었던 그런 이유.


학창 시절, 나의 꿈은 라이브 밴드의 뮤지션이었다.

실력과 카리스마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락 밴드도 멋있었지만, 나는 좋은 음악이 주는 위로와 철학적 메시지로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그 꿈은 학교 밴드 동아리의 보컬 오디션 도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변성기가 늦게 온 탓에 보컬이 아닌 드럼을 맡게 되었다. 원했던 파트는 아니었지만, 막연했던 꿈이 현실화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만으로도 매일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론, 실력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것을 졸업한 선배들의 초라한 주머니 사정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내 미래의 모습을 보고 온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상과 현실 속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갈등했고, 결국 꿈은 '나중에'라는 이름으로 미뤄졌다. 대학 가면, 취직하면, 돈을 벌면 다시 이뤄가리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꿈은 어렴풋한 흔적만 남겼다.


이제는 그 흔적마저 지워졌다고 생각했었는데.


라이브 밴드의 공연을 마주한 순간 그때의 기억이 다시 선명하게 살아났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니면 그런 악조건을 무릅쓰고도 음악의 꿈을 놓지 않은 저들에 대한 질투일까.

부러움일까.


앉아서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과의 갈등은 나를 며칠 동안 계속 '지나가는 행인 1'로 머물게 했다.




'이러다가 카오산 로드 떠날 때까지 고민만 하다가 끝나겠다.'


나는 용기를 내어 노상 테이블의 맨 끝에 앉았다.

일주일간의 방황을 끝내고 마침내 구경꾼이 아닌 손님이 된 것이다.


주문한 맥주가 나왔다.

병 입구를 티슈로 닦고 크게 한 모금 삼켰다.

차갑고 찌릿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동안 고민했던 텁텁한 불편함이 차가운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라이브 락 밴드는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었다. 곱슬 장발에 하얀 민소매를 입은 덩치 큰 남자가 메인 보컬을 맡았고, 평범한 헤어스타일에 검은색 반팔을 입은 다른 기타리스트는 코러스를 담당했다. 두 사람에 가려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드러머가 바로 뒤에서 묵묵히 연주를 이어갔다. 자신도 그런 부분을 의식하는 듯 드럼스틱을 휘두르는 그의 액션은 유난히 화려했다. 보컬의 걸걸한 목소리는 학창 시절 즐겨 듣던 본 조비를 연상케 했다.


거리엔 강렬한 기타와 드럼소리가 울려 퍼졌고, 밴드는 열정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했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에 비해 손님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밴드 앞에 앉은 남녀는 서로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처럼 혼자 온 손님들은 스마트 폰을 보거나, 반쯤 풀린 눈으로 멍하니 밴드를 바라볼 뿐 아무런 호응을 하지 않았다.

마치, 라이브 공연과 테이블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다른 세상인 것처럼.

밴드 앞에 놓인 팁박스는 그들의 무관심을 대변하는 듯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이 무관심한 풍경이 겹쳐 보이는 순간, 실력과 열정은 있어도 설 무대가 없었던 학창 시절 선배들의 얼굴이 떠 올랐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망설임 끝에 일어서서 팁 박스 안에 지폐를 넣었다. 밴드의 보컬은 내 모습을 보더니 "땡큐!"라며 고마워했고, 나는 살짝 목례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누군가도 용기를 낸 듯 일어나 팁 박스에 돈을 넣었다.

그들은 연신 땡큐를 외쳤고 이어진 연주에는 왠지 더 힘이 실린 듯 강렬함이 느껴졌다.


나는 음악의 리듬에 어깨를 들썩이다가 노래 한곡이 끝날 때쯤 힘차게 박수를 쳤다.

적어도 내가 공연 관람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터져 나온 박수소리였고, 그 첫 박수가 내 손바닥에서 시작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마도 두 병째 마시는 맥주의 취기가 나 몰래 손바닥을 움직였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구석진 외곽에 혼자 앉은 테이블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자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들이 깜짝 놀라 쳐다봤다. 나는 눈인사를 했고, 그들도 이내 살짝 웃으며 함께 박수를 쳤다. 곧이어 테이블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의 작은 행동은 마치 도미노처럼 다른 관객들의 박수를 이끌어 냈고, 밴드의 공연은 더욱 풍성해졌다. 이제 그들의 음악은 단지 배경음악이 아니었다. 그들의 열정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학창 시절 이루지 못한 내 꿈을 그 밴드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무대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자, 선배들이 설 수 없었던 꿈의 무대였다. 부디 이들만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맥주병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 한 모금을 아껴뒀다가 이번 곡이 끝날 때쯤 들이켰다.

그리고 마지막 박수를 치며 일어섰다.

어서는 내게 밴드는 눈인사를 건넸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말없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카오산 로드의 뜨거운 밤과 쓸쓸한 내 지난 꿈을 뒤로하며, 나는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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