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이 가득 담긴 태국 기차

매끌렁 기차 시장으로 향한 여정 - 첫 번째 이야기

by 하임

'윙위안 야이역'은 한국의 기차역과는 사뭇 달랐다.


한국은 거대한 역사를 중심으로 높은 담벼락이 둘러싸고 있어 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지만, 이곳은 '윙위안 야이 스테이션'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나무 간판 외에는 역을 감싸는 어떠한 벽도 보이지 않았다.


옛 서부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광활한 황야에 역명이 새겨진 커다란 나무 간판 하나 덩그러니 서있고, 간판 뒤엔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철길이 펼쳐져있던.

차이점이라면 이곳의 간판 주위엔 황야 대신 오래된 상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는 것과,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양쪽 허리춤엔 총집이 없다는 점이었다.


왠지 카우보이 모자가 어울릴 것만 같은 이색적인 풍경을 뒤로하고 간판 옆으로 걸어가니 철길과 매표소가 보인다. 서둘러 매표소로 향했다. 창문 아래의 작은 반원형 구멍으로 '마하차이 스테이션'이라고 외치자 '10 밧'이라는 역무원의 응답이 들렸다. 나는 10밧을 밀어 넣었고,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색 표를 건네받았다.

빳빳한 하얀색 종이 표에는 열차 시간, 목적지, 가격이 인쇄되어 있었고, 오른쪽 아래엔 정사격형 모양의 QR코드가 찍혀 있었다. 클래식한 역 풍경과 최신식 QR 코드의 조합이 이질적이다.


20분 뒤에 출발 예정인 열차는 12시 15분에 출발해서 13시 10분에 마하차이 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미리 찾아본 후기에는 연착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만약 이 기차가 매끌렁 기차역까지 한 번에 간다면 한 시간 연착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여정은 윙위안 야이역에서 마하차이 역까지, 다시 챠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반램역으로, 그리고 반램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을 더 달려야 최종 목적지인 매끌렁 역에 도착하는 복잡한 경로다. 그러므로 이 열차가 한 번 연착되면 그 뒤의 배 시간과 열차 시간이 모두 엉켜 최악의 경우 매끌렁행 마지막 열차를 놓칠 수도 있다.

먼저 다녀온 후기 작성자도 이곳의 열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다음 열차 시간에 늦어서 다음날 다시 재도전한 끝에야 겨우 매끌렁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물론, 이런저런 변수 없이 편하게 가는 방법도 있다.

방콕에서 매끌렁 기차역으로 한 번에 가는 봉고차를 이용하면 된다.

봉고차를 타면 두 시간도 안 걸려서 매끌렁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고, 곧이어 열차가 들어오는 순간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시장을 눈앞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 아니다.

나는 대중교통이 갖춰진 도시에선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의외로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도시를 찾기 힘들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차치하더라도,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만 봐도 그렇다. 그들의 이동수단은 대부분 흥정으로 시작해서 흥정으로 끝이 난다. 이동에 흥정이 필요하다는 건 대중교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가장 높은 값을 받으려는 자와 합리적 가격을 지불하고자 하는 자의 숨 막히는 머리싸움.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는 건 열차의 지연, 예기치 못한 변수가 아니라, 그런 머리싸움이다.

특히 빠듯한 여유자금을 최대한 쪼개서 여행하는 나 같은 배낭여행자에겐 십만 원짜리 정찰 요금보다 흥정 때문에 허투루 사용한 천 원짜리 한 장이 더 치명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교통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축복과 같다.


두 번째 이유는 영상과는 다른 경험을 원하기 때문이다.

검색을 통해 찾아본 대부분의 '매끌렁 기차 시장'의 풍경은 시장에 서서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바라보는 시점이었다. 물론 그 장면이 가장 장관이었기에 모두가 같은 구도로 같은 장면을 기록했겠지만, 그런 장면은 이미 영상을 통해 많이 봤으니깐, 나는 내가 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이색적인 시점을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연착으로 이후의 일정이 모두 망가졌었다는 경험자의 후기 때문인지, 열차표의 시간을 확인한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과연 기차가 연착되지 않고 제시간에 출발할까?'였다.

복권 판매대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받은 즉석복권을 긁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랄까? 오백 원짜리 동전으로 조심스럽게 긁어가는 은박지의 뒤엔 과연 '정시 출발'이 있을까?




공식적인 기차 출발시간까지 아직 20여분이 남았기에 나는 철길을 따라 산책하며 주위를 살폈다.

한국의 역에는 주로 프랜차이즈 대형 음식점이나 카페가 입점해 있는 반면 이곳은 열차를 타는 플랫폼을 따라 재래식 시장 같은 상점들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남대문 시장의 거리처럼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장난감, 과자, 아이스크림, 잡화를 판매하는 상인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간단한 음식이라도 먹을까? 고민스러울 만큼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기차 안의 화장실을 되도록이면 이용할 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쇼핑을 마치고, 출발 시간이 십오 분 남았을 때 나는 역무원에게 이 열차가 맞는지 확인 후 열차에 올랐다.


십오 분 전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자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자리'란 선풍기와 가깝고 그늘진 자리를 의미한다.

에어컨도 커튼도 없는 객차이기 때문에 어떤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확연히 달라진다.

역시 먼저 오른 사람들은 모두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오른쪽에만 몰려 있었고, 그늘지고 천장 선풍기와 가까운 좌석엔 빈자리가 아예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객차를 옮겨가며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아있는 두 개의 의자를 발견했다.

하나는 선풍기와 가깝지만 미끄러운 플라스틱 좌석, 다른 하나는 선풍기의 바람이 닿지 않지만, 엉덩이가 닿는 곳에 얇은 시트가 깔려 있는 의자.

나는 제자리에 서서 잠시 고민하다가 시트가 깔린 좌석에 앉았다.

어차피 모든 창문은 열려 있으니 열차가 달리면 바람이 들어오겠지만, 엉덩이가 미끄러질 것만 같은 딱딱한 의자에서 한 시간을 버티는 건 더 힘들 거 같았기 때문이다.



'끼이이익.'


다행히도 열차는 예정된 시간이 되자 꿈틀거렸다.

기차가 오랜 침묵을 깨고 기지개를 켜자, 창밖에서 머뭇거리며 눈치만 보던 바람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안으로 들어와 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기계의 거친 마찰음과 함께 열차는 조금씩 빨라졌다.

속도를 낼수록 바람의 강도는 마치 선풍기의 1단, 2단 3단처럼 점점 강해졌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바람이 강해질수록.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시원함이 느껴졌다.


기차가 속도를 내자 창밖은 거대한 스크린이 되었다.

태국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의 오래된 건물들.

나무마다 촘촘히 달려있는 유난히 짙은 초록색의 나뭇잎들.

신나게 놀다가 멈춰 서서 달려가는 기차에게 손 흔드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그 풍경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얼굴을 창가에 가까이 대려던 나는 깜짝 놀라 창문에서 떨어졌다.

창밖의 풍경이 창문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풍경과 기차가 퍼즐의 조각처럼 너무 가까웠다. 어쩌면 매일 기차가 지나가면서 이 나무의 조경을 한 것처럼. 나뭇가지는 기차의 공간만큼 깎여있었다.

닿을 듯 말 듯 창밖의 나뭇가지와 가게의 차양막은 열린 창문을 스치듯 지나갔다.

나는 창가에서 한 뼘 떨어져 그 아슬아슬한 풍경을 감상했다. 기관사가 계속해서 울리는 경적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기차의 공간을 침범하는 나뭇가지를 향한 것 같았다.


첫 번째 역을 지나 두 번째 역으로 향하는 길에 열차 승무원이 내게 다가와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표를 꺼냈고, 그는 역삼각형 모양의 니퍼 같은 걸로 표의 가장자리를 찍어서 구멍을 냈다.


모든 게 정겹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

나에게 이 순간이 생소하지 않은 것은, 내가 어렸을 때 탔던 기차의 승무원 역시 같은 방식으로 승차권을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기차를 자주 탔고, 기차 타는 걸 좋아했다.

외갓집이 역의 바로 옆에 있어서 외갓집에 갈 때마다 기차를 탔는데, 어린 시절 나는 사실 외할아버지를 만난다는 것보다 기차를 타서 더 기뻤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객차를 오고 가던 간식카트를 좋아했다.

기차 안에서 먹는 건 뭐든 다 맛있었다. 덜컹 거리며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쏟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여 소금에 찍어먹던 삶은 달걀, 주황색 망사에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달려 있던 귤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건 훈제 버터오징어였다. 가격이 비싼 편이라서 매번 먹을 수는 없는 간식이었기에, 더더욱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이다와 버터 오징어만 있으면 하루 종일 기차를 타도 좋을 것만 같았다.

양쪽으로 마주 보는 의자에 앉아 동생과 나, 아빠와 엄마가 서로 마주 보며 간식을 먹던 장면은 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한 추억 중 하나다.

어쩌면 그런 추억이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 사각지대에, 쿠션 없는 의자의 불편함을 감쇄시켜 주는 게 아닐까.


여행 중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평생 열차 승무원, 차장, 역무원으로 근무하셨다가 퇴직하신 아버지.

만약 아버지와 함께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아버지는 이 열차를 보며 선풍기가 냉방의 전부였던 우리나라의 비둘기호, 통일호부터 에어컨이 설치된 이후의 열차 그리고 지금의 ktx까지 아마도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을 것이다.



에어컨 없는 버스부터, 지금의 이 열차까지.

우리네 부모님처럼 나이가 지긋하신 분에겐 화려한 패키지 관광코스보다는 이런 경험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에겐 그저 불편하기만 한 낙후된 시설이지만, 그들에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젊은 날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될지도 모른다.

격동의 시대를 오직 가족들을 위해 살았던 그들의 가장 빛나던 시절, 그 소중한 기억을 싣고 기차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뚫고 마하차이 역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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