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끌렁 기차 시장으로 향한 여정 - 두 번째 이야기.
이 에세이는 매끌렁 기차 시장으로 향한 여정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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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예상보다 2분 정도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연착이 일상인 태국 기차가 무려 2분이나 빨리 도착하다니. 옆자리에 행운의 여신이라도 함께 앉아 있었던 걸까. 예상치 못한 그녀의 은총으로 인해 반램역의 기차 시간까지는 20분 조금 넘게 남았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충분치 않아 내리기 전에 경로는 미리 외워뒀다. '마하차이 역에서 기차의 방향으로 쭉 걸어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꺾는다'
구글에서 예상한 거리는 도보 3분. 평소에도 걸음이 빠른 내 기준으로는 1분, 길어도 2분이면 가능하겠지.
선착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볍다.
3분이 지났다. 하지만, 선착장 안내 팻말조차 아직 보이지 않았다.
주위 상인에게 물으니 그들은 무심한 얼굴로 5분은 더 가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 말이 거짓일까.
구글일까. 상인일까.
목에 걸린 듯한 텁텁한 의문 속에서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마침내 '챠롬 산착장' 이정표가 보였고 나는 필사적으로 이정표의 방향으로 뛰었다. 호주머니에 미리 넣어둔 뱃삯 3밧이 땀으로 끈적끈적했다. 선착장 입구로 들어서자 눈앞에 배가 보였다.
점점 작아지는 배.
선착장에서 멀어져 가는 배.
놓쳤다.
강을 건너면 반램역까지 5분을 더 걸어야 하기에, 저 배를 탔어야만 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강물을 바라봤다. 강 위에는 오후의 햇살만이 평화롭게 부서지고 있었다.
갑자기 내내 눌러왔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역에서 여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다가 역에서 내린 직후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생각나서 스마트폰 갤러리를 열었다.
하얀색 간판에 적힌 까만 글씨
'MAHACHAI'
맞는데..
하지만, 앞에 글자가 더 붙어 있었다.
'NIKHOM ROTFAI MAHACHAI'
지도를 검색해 보니, 내가 내린 역은 마하차이역의 바로 이전 역인 '니콤 롯파이 마하차이역'이었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2분 빨리 도착한 게 아니라 2분만큼의 거리 앞에서 하차한 것뿐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건너편 승객에게 이번 역이 마이차이 역이 맞는지 확인하고 내렸었는데!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다니. 허탈함에 웃음마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어떡하지?
아쉬움을 물결로 남기며 점점 작아지는 배의 흔적을 뒤쫓고 있을 때쯤, 새로운 배가 시야가 들어왔다.
이제는 작은 점이 되어버린 떠난 배 옆으로, 점점 커지는 또 한 척의 배가 선착장으로 서서히 접근했다.
시계는 13시 20분을 가리켰다.
만약, 아주 운이 좋아서, 지금 들어오는 배가 바로 출발하고, 건너편 선착장에 내려 전력질주 한다면. 내가 올 때까지 연착에 연착을 거듭하며 기다리는 매끌렁행 기차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실낱같은 기대를 붙잡으며 서둘러 배에 올랐다.
하지만 배는 승객이 모두 찼음에도 출발할 기미가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선장님 뒤통수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쯤 되면 뒤통수가 가려울만한데도 선장님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배는 정확히 13시 30분에 출발했다.
'네가 매끌렁행 기차야? 왜 13시 30분에 출발하는 건데..' 속으로 외쳐봤지만, 나의 목소리는 뱃고동 소리에 묻혀버렸다.
...
13시 45분의 반램역은 고요했다.
누군가 포토샵으로 철로 위의 기차만 지운 것처럼 철로와 역사 둘만의 완벽한 풍경만 남아 있었다.
굳게 닫힌 매표소의 창문에는 '표를 판매하는 시간 7시 9시 13시 16시', '기차가 출발하는 시간 7시 30분, 10시 10분, 13시 30분, 16시 40분'이라는 안내문 두장만 덩그러니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아마도 표를 판매하는 시간에만 직원이 상주하는 작은 역인 듯했다.
이제 남은 건 16시 40분 막차밖에 없다.
막차를 타면, 승객의 입장에서 기차가 진입할 때 갈라지는 시장의 모습은 볼 수는 있겠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기차가 시장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16시 40분 열차가 매끌렁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열차일 테니깐.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막차라도 있는 게 어디야.
역의 위치도 정확히 알게 되었으니 다시 찾아오는 건 보다 수월할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역 주위를 한번 더 살폈다.
역무원이 보이면 정확하게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3시 30분 열차가 정말 떠난 게 맞는지, 16시 40분 열차표는 지금 미리 구입할 수는 없는지.
하지만, 역사는 물론 그 주변 어디에서도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선착장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은 오히려 더 편해졌다. 오전부터 '놓치면 어떡하나', '연착되면 어떡하나',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면 어떡하나'하던 불안정함은 시험결과를 확인한 수험생의 마음처럼 편안했다. 원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는 나왔으니 이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일이다.
이제 플랜 B를 가동할 때다.
무계획 여행자에게 플랜 B란 어긋난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저 즐기는 것이다.
어차피 완벽한 계획은 없었으니, 그것이 어긋났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기차를 놓쳤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한 끼만 못 먹어도 기운이 빠지는 내가 점심시간이 지났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다음 기차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 우선 밥을 먹고, 스마트폰 충전할 카페를 찾아야겠다.
일단 배를 타고 다시 강을 건너가자.
건너편엔 큰 시장이 있으니, 거기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러 폰과 나를 재충전해야겠다. 폰 배터리가 가득 차면 다시 GPS를 켤 수 있고, 여행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기다란 민트색 나무배가 선착장으로 천천히 후진해서 들어왔다.
이윽고 접안을 마치자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선착장에는 배로 통하는 4개의 통로가 있다. 중간의 두 개는 넓은 통로, 그리고 양 옆에 좁은 통로다. 넓은 두 개의 통로는 오토바이가 오고 가고, 좁은 양옆의 통로는 보행자를 위한 길이다.
사람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이 타고 내리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나는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었다.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인 동남아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아까는 오로지 기차 출발 시간에만 집중하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배는 양쪽 끝의 긴 의자를 제외하면 중앙이 텅 비어 있었는데, 배안으로 들어오는 오토바이들이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그 공간을 채워갔다.
배에 올라탄 후에도 그들은 엔진을 끄지 않고, 오토바이에 탄 채 그대로 서있었다. 배 내부는 오토바이 매연과 배의 엔진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배가 출발하자 강바람이 들어와 거친 매연을 부드럽게 바깥으로 밀어냈다. 물결은 배가 지나가는 길에만 일었고, 고개를 들면 한없이 고요하고 잔잔한 강의 풍경이 보였다.
올 때의 풍경과 갈 때의 풍경이 사뭇 달랐다.
도착의 급박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여유가 채워졌다.
반램역을 향할 때는 목적지를 위한 교통수단으로만 느껴졌던 배가 이제는 유람선처럼 느껴졌고, 빠르게 뒤로 밀어 보내고만 싶던 배경은 이젠 붙잡아두고 오랫동안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 되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이 본래 뜻과는 다르겠지만, 들어갈 때의 조급함과 나왔을 때의 홀가분함만을 비교하자면 이보다 더 적합한 비유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정의 목적이 '도착'에서 '과정'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강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홀가분한 이 여유는, 내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로 이어졌다.
과정에 중점을 두면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날 수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결과에만 치중하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출판은커녕, 아직 제대로 된 한 권의 책조차 완성 짓지 못했다. 이전의 꿈들도 그러했다. 처음부터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결과를 기준으로 나를 닦달하다 보니 조금씩 성장하는 그 과정은 너무도 초라하고 무의미해 보였고, 결국 나는 단 한 번도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
어쩌면 결과는 맹목적인 질주의 종착점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과정들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아름다운 풍경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점심을 해결하러 들어간 식당은 시장의 도로변에 있었다.
가게의 입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튀긴 고기 덩어리들이 쇠 꼬챙이에 꽂힌 채 커다란 유리 보관함 안에 매달려 있었다. 태국에서 이렇게 튀긴 고기가 진열되어 있는 식당에 들어가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낮다. 이런 식당엔 주로 튀긴 고기 덮밥이나 비빔국수가 메뉴에 있고, 튀긴 고기는 실패하는 법이 거의 없다.
가게 내부엔 오직 태국어로 쓰인 메뉴뿐이었다.
음식사진도, 영어로 적힌 메뉴판도 따로 없었다.
예전 같으면 꽤 당황했겠지만, 구글 번역기 앞에서 현지어 메뉴판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곰탕'을 'bear soup'이라고 번역하는 정도의 한계는 있지만, 번역 결과가 이상하다 싶으면 먼저 영어로. 번역된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나는 번역한 음식 이름 중에 '돼지고기'가 들어간 밥을 주문했다.
음식은 모두 60밧이었고, 주문한 지 1분도 안 돼서 나온 음식은 보기에도 훌륭했다.
하얀 쌀밥 위에 튀긴 돼지고기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아래의 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고기가 푸짐했다.
방콕에서 먹었던 같은 메뉴는 밥에 비해 고기가 적어서 밥 한 숟가락에 고기 반을 베어 먹어야만 균형이 맞았는데, 여기는 한 숟가락에 고기 한 조각을 먹어도 남을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역시 로컬에 가까울수록 음식은 훌륭해진다.
식당에 외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밥 먹는 동안 점원들의 웃음과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이 한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음식은 너무 맛있었고, 양도 많아서 너무 행복했다. 방콕과 치앙마이에서 경험했던 고기 덮밥을 통틀어서 최고의 맛집으로 기억될 곳이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그들은 웃으면서 나를 입구까지 배웅했다.
'씨 유 어겐' 하고 싶었던 식당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타찐 강'을 옆에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싱싱한 해산물부터 말린 건어물까지 다양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유가 있다면, 좀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당장 스마트폰을 충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미리 봐둔 카페로 향했다.
마하차이 선착장에 위치한 2층짜리 카페는 마치 수평선 아래로 저무는 태양의 모습처럼 반원 모양의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낮에는 카페, 밤에는 주류를 주로 판매하는 듯했는데, 무엇보다 가게 잎구에 세워진 커다란 '노인과 바다'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여기가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 장소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형상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쿠바 해안과 멕시코 만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을 이렇게 크게 세워뒀을 리 없다는 강한 의문에 나는 검색창에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태국'을 입력했다. 검색결과는 당연히 관계없음.
그럼 사장님이 '노인과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설치한 걸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상쾌하게 나를 반겼다.
벽면 전체가 창문으로 트여 있어 타찐 강의 풍경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2층은 손님들이 가득한 1층에 비해 한적했다. 강 뷰의 야외 테라스도 있고, 전망은 이곳이 더 좋은데도 사람이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에어컨의 부재 때문인 듯했다.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내 발걸음이 자꾸만 1층으로 향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쾌적함을 이길 수는 없다.
1층의 내부 인테리어는 나무 색과 검은색 가죽 소파를 활용한 모던한 디자인이었다.
주문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이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왠지 근처에 산다면 매일 이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고 집중력을 높이는 인테리어, 그리고 다양한 영감이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 이곳은 글을 쓰는 작가에게 최고의 환경이 아닐까.
문득 가게 입구의 커다란 '노인과 바다 조형물'이 떠올랐다. 이곳은 '노인과 바다'와 관계있는 장소가 아니라, 제2의 '노인과 바다'가 탄생할 수 있을 만큼 집필에 최적화된 카페인 걸까.
나는 창 밖의 강물을 바라보며 상상에 빠져든다.
눈앞의 풍경으로 노를 저으며 나아간다.
오늘은 좋은 글감을 낚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매일 노를 젓는다.
한 문장도 낚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깊은 강물은 언제나 미지의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언제쯤 출판하냐고 내게 묻는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빈 손이다.
어느 날 풍경의 저편 너머에서 엄청난 영감을 발견한다.
이것만 제대로 잡으면 나도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을 거야.
며칠 동안 밤낮으로 사투를 벌이다가 마침내 손에 얻은 녀석을 보트의 밧줄에 매달고 항구로 뱃머리를 돌린다.
하지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땐, 화려한 문장들은 모두 사라지고 초라한 뼈다귀 같은 단상만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은 조롱했고, 나는 다시 어딘가에 숨어 있을 영감을 갈망한다.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사람들은 늘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쉽게 단정 짓는다.
만약, 그때 사람들이 노인의 배에 매달린 뼈다귀가 아니라, 고독한 사투를 벌인 노인의 거친 손을 봤다면, 그 과정의 위대함을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내 손을 들여다본다.
키보드에 닿는 손가락에 굳은살 정도는 박혀야,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은 완충되었고, 나는 노트북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이제 정말 매끌렁행 기차를 타러 가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