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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말썽쟁이

나의 꿈을 찾아서(1)

by 예신

5월, 장미의 계절에 나는 회사 후배로부터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선배와의 대화>라는 사내 매거진의 섹션에 응모를 했는데 당첨이 되었다고 했다. 후배는 육아 휴직 후에 회사로 복귀하는 걸 두려워했는데, 내가 잘 배려해줘서 많은 힘이 되었다고 했다. 육아 때문에 퇴근시간을 잘 보장해준 것 뿐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계면쩍었지만, 그래도 기분좋은 경험이었다. 우리는 이태원의 떠오르는 맛집인 A스파게티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인터뷰한 내용이 매거진에 게시되었다.


나는 그렇게 후배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후배들은 나를 멘토 삼아 직장생활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나를 보기에 나는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대기업에서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하는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늘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진급했다. 거기에 일처리 똑 부러지고 전문성이 높다는 평을 받았으니, 그들이 보기에 나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내 몸은 소금에 절은 배추처럼 축 늘어졌다. 끝없이 돌아오는 수많은 업무와 업무에 함께 딸려오는 사회적 관계에 질식되고 있었다. 나의 내면은 쪼그라들고 있었으며 끝없이 신호를 보냈다. 때로는 돌덩이처럼 뭉쳐진 어깨와 바늘로 찌르는 듯한 등의 통증으로, 때로는 중성지방과 당뇨 수치를 신호로 보냈다. 나는 그 신호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러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의 내면은 나의 그런 무심함이 싫었었던 것 같다. 더 강한 신호를 보냈다. 우울증이라는. 눈에서는 총명한 기운이 빠졌고 누가 봐도 침울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회사를 다녔다. 큰 프로젝트의 매니저로서 멤버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프로젝트를 대표해서 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우울한 나는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가슴이 답답해졌고 손과 발이 떨렸다. 염소 목소리가 되었다.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지, 안 그래?"


이렇게 치부하며 살기에 나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나를 안쓰러워하던 아내와 함께 한의원에 들렀다. 내 얼굴을 보고 진맥을 하던 한의사 선생이 말했다.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가장 좋은데,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를 못해요. 그럴 때는 음, 많이 놀아야 해요."


그의 말을 듣고, 좋아하는 일은 잘 모르니, 놀기라도 많이 놀자라는 생각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신나게 놀러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간, 나는 무엇을 했나'하는 생각이 가슴에서 올라오며 곧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었던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았고,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 잘하면 되는 거라 알았다. 대학교를 선택할 때도 그저 취직 잘 되고 있어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적성에 맞는지도 따지지 않고.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나의 주변에는 늘 힘들어하며 사는 어른들이 있었다. 남편을 잃고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어머니, 어린 나이에 일을 해야 했던 형제들. 우리 가족의 삶은 쪼들리고 팍팍했다. 나는 어릴 때 그런 삶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나는 '돈이 적게 드는 것'들을 선택하고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랐다. 그건 쥐어짜는 삶이었다. 그런 삶을 살며 40년을 버텨왔었다.


그렇게 버티며 살아온 40년 동안 나의 내면 아이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꿈을 찾아야 한다고. 지금이라도 꿈을 찾아서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아이는 묵직한 어깨를 비롯한 온몸에 통증을 일으켰고, 그래도 반응하지 않는 나에게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던졌다. 거기에 공황장애와 버금가는 불안장애를 뭉쳐서. 그렇게, 나의 내면 아이는 말썽쟁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달래야 했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과 풋살 모임을 만들고 운동장을 뛰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포기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을 등록하고 못 읽었던 책을 읽었다. 많이 놀고 웃으며, 해보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나는 다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내면 아이가 잠잠해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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