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을 찾아서(2)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도움을 받을 일이 생겼다. 스타트업 창업 기회가 생겨서 친구의 경험을 들어야 했다. 친구는 직장 생활 8년 만에 퇴사를 하고 창업을 했다. 겨우 500만 원 자본금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매출이 30억 이상이고 직원이 40명이 넘는 회사가 되었다.
비가 와서일까. 꽉 막힌 교통체증으로 친구에게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하긴, 서울은 어딜 가나 공사 중이니 교통 체증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어쩌면 사람들도 이 도시를 닮아가는 게 아닐까. 바삐 어딘가 가고 싶어 하지만, 땅을 파며 철판을 덧대는 공사를 하는 삶에서는 마음만이 앞서고 조급해진다.
겨우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어이, 친구" 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몇 년 만인가. 기억도 못할 만큼 오래 보지 못했지만, 친구는 역시 친구다. 어제 만나서 놀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옛 친구들을 떠올렸다. 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친구들. 그리고 아이들과 아내, 이제는 연세가 드신 부모님들의 안부를 물었다.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어쩌다 보니 대학 1학년 때 친구 녀석이 가출했던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나는 당시 10만 원 정도의 거금을 가출 자금으로 보태주었었다. 말이 10만 원이지, 그 돈은 당구장에서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하고 받은 급여였다.
"네가 집을 나간 후에, 너네 엄마가 전화를 하셨잖아. 어디 갔냐고, 보채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생각이 있는 애니까, 알아서 잘 들어오겠죠.'라고 했어. 그랬다가, '생각이 있는 놈이 집을 나가냐?'라고 너네 엄마 한 테, 내가 혼났잖아."
"다 옛날 얘기잖아. 뭘 옛날 얘기를 하고 그래?" 친구가 낄낄거렸다.
"응, 됐고. 돈이나 갚아. 이자가 얼마냐?"
우리는 웃고 말았다. 망할 놈. 친구는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엄마의 만류로 가지 못했던 것에 좌절하고 방황을 했었다. 친구는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으로 나와 닮은 면이 있었다. 우리의 꿈은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나만의 영토를,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 했다.
시간은 빠르다. 친구는 사업을 실행에 옮겼고, 나는 회사를 오랫동안 다녔다. 친구는 실행한 자, 나는 실행하지 않은 자가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사업에 대해서 물었다. 지분은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주식은 어떤 식으로 발행하는 건지, 사업 초기의 보릿고개는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동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건 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고, 좋은 사람이랑 함께 하는 게 중요하지."
오후 세 시,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서울의 도로에는 차가 가득했다. 모두들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니까.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목적지에 언젠가는 도달할 터이다. 그 목적지는 내 자유 의지에 따라 내가 선택하리라, 다짐한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회사에서의 책임과 역할이 커지면서, 나의 내면에서는 '이제 그만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달래 두었던 내 안이 말썽꾸러기가 다시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또다시 어깨는 딱딱해지고, 등에는 통증이 올라왔다. 하루에 겨우 세, 네 시간 정도를 자는 날도 잦아졌다. 나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면서 어느 날은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말을 내뱉었다. 무심코.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나는 모든 책임과 역할을 내려놓았다. 비자발적으로.
나는 좌절하고 방황했다. 친구처럼 어린 나이였다면 집이라도 나갔을 테지만,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에 이끌린 듯, 명상에 빠져들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내면 아이의 문제는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내 삶을 자유롭게 살았는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며 사는 삶을 자유로운 삶이라 정의한다면 '나는 그렇게 살았소'하고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어릴 때야 경제적으로 독립 못했다는 이유라도 있겠지만, 어른이 된 후에도 환경 탓, 남의 탓, 어린 시절 탓, 운이 없다는 둥.. 이런 말들을 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그리고 변할 의지가 있다.
시골의 들고양이는 똥을 싸고 흙으로 덮지 않는다. 모두 자기 땅이기 때문이다. 광활한 자기 땅에 똥을 싸는 데 흙으로 덮을 필요가 뭐가 있겠나. 나도 들고양이처럼, 나만의 영토를 꿈꾸고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꾸었던 꿈을. 그 꿈을 다시 마음에 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 같은 기회가 왔다. 기회는 잡으라고 있는 법.
그나저나, 함께 꿈을 키워나갈 친구들을 섭외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러나, 인생은 과정에 묘미가 있는 법이니 즐거운 경험이 지혜로 바뀔 날이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