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전원 카페를 발견했다. 아파트가 즐비한 도심 속에서.
진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날, 차를 몰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에 전원카페 푯말이 아내의 눈에 띄었다. "전원카페가 있네"라는 아내의 말에 바로 차를 돌렸다. 스타벅스야 워낙 곳곳에 있으니 식상할만했고, 아파트로 빽빽한 도시에 있는 전원 카페가 궁금하기도 했다. 진입로에서 1킬로 미터 가량을 이동하여 창고 같은 조립식 건물들과 비닐하우스 농장을 몇 개 지난 다음에야 카페에 도착했다. 1층은 카페, 2층은 가정집인 생경한 느낌의 카페 건물.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니... 카페를 중심으로 왼편에는 고속도로가, 고속도로 건너에는 아파트 숲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녹음이 우거진 푸른 숲이 있었다.
"꼬끼오~"
차에서 내리니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차장 구석, 한 평 남짓한 닭장에 제법 큰 토종닭 열한 마리가 있다. 수탉 한 마리, 암탉이 열 마리다. 닭장 구석에는 어느 암탉이 놓았을 달걀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모이를 쪼던 닭들과 횟대에 앉아서 졸던 녀석들이 우리가 다가가자 머리를 들고 눈을 뜨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탉은 경계의 눈 빛을 반짝이며 철망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역시 수탉은 수탉이다. 물러서지 않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흰색과 회색이 섞인 얼룩 고양이가 관심 없는 듯 무심하게 닭장 옆을 지나 그늘 진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는 다리를 들고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분주한 닭과 한가한 고양이를 뒤로 하고 카페에 들어갔다.
조용한 분위기의 널찍한 카페에는 겨우 손님 네댓 명이 앉아 있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번잡하지 않은 곳,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다. 처음 오는 곳에서는 대표 메뉴를 맛봐야 한다. 우리는 시그니처 커피를 시켰다. 산미 강한 아프리카 원두를 사용한 맛은 그야말로 매력적이다. 집에서 불과 1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에 산미 강한 아프리카 커피를 파는 조용한 카페를 발견한 건, 정말 행운이다. 거기에 녹음이 우거진 숲뿐 아니라 한가로운 닭과 고양이까지 볼 수 있으니 당연히 단골이 될 수밖에.
그 매력 있는 카페를 한 주 지난 일요일에 다시 방문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 일요일에 집에만 있는 건 정말 어렵다. 푹 가라앉은 몸과 마음을 일으켜 우산을 들고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작은 돌이 깔린 주차장 겸 마당에 주차를 하고 차를 나서는 순간, 다시 "꼬끼오~" 소리가 들렸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닭들에게 인사도 할 겸 닭장 앞으로 갔다. 헐빈하다. 닭이 여섯 마리뿐이다. 놀란 마음에 다시 세어봤다. 역시 여섯 마리. 수탉이 없다. 남은 암탉들은 무심하게 모이를 쪼거나 횟대 위에서 졸고 있다. 섭섭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서 있었을 비 오는 복날의 잔치와 살육의 현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30여 년 전의 기억이 올라왔다.
강원도 정선은 그야말로 골짜기 중에 골짜기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둘째 형과 나는 대구에서 정선으로 장장 11시간 동안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작은 아버지 집에 놀러 갔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촌 형제들과 눈만 뜨면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그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집에서 몇 걸음 나가면 산과 나무, 강이 펼쳐졌으며 산딸기와 다래, 머루, 오디 같은 먹을 것이 지천이었고 밤이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곳이 좋았다.
어느 날, 멀리서 온 조카들에게 몸보신이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작은 아버지가 닭 두 마리를 사 오셨다. 닭들은 다리가 묶인 채로 작은 아버지의 손에 거꾸로 들려있었다. 시장에서 펄펄 끓는 물에 닭을 넣어 죽인 후 털을 뽑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가정집에서 닭을 잡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작은 아버지는 닭을 내려놓고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잡긴 잡아야 하는데 이걸 어쩌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때 작은 아버지 눈에 연탄집게가 들어왔다. 연탄집게를 손에 들고 닭들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나와 사촌 형제들은 숨죽여 바라봤다. 작은 아버지는 닭의 머리를 부여잡고 연탄집게의 뾰족한 날로 목을 '푹'하고 찔렀다.
"콱~꼮꼬꽉~" 죽는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작은 아버지도 놀라 손을 놓았다. 연탄집게에 목을 찔린 닭은 살아 날뛰었다.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도망을 다니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피를 흩뿌렸다. 평소 술을 많이 드셨던 작은 아버지는 굼뜬 동작으로 닭을 쫓았다. 우리 꼬맹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한 마디로 난리가 났다.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저 닭을 안 먹으리라!' 다짐했다.
밥 상위에 닭개장이 올라왔다. 진~한 국물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안 먹으리라' 다짐했던 마음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아 허기진 배를 이기지 못했다. 허겁지겁 한 그릇을 비우고 다시 한 그릇을 더 먹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커~하며 소주잔 들이켜는 소리뿐. 작은 어머니 요리 솜씨가 좋은 것인지 토종닭의 위엄인지, 아니면 허기가 졌던 탓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맛은 몸속 깊이 남았다.
닭장 속의 닭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가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절하고 상냥한 사장님이 우리 부부를 반겼다. 그 옆을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간다. 닭고기는 저 온화한 사장님과 배 나온 남편, 잘생긴 아들과 또 몇몇 이웃들이 맛있게 먹었을게 틀림없다. 먹고 남은 고기들은 뒷다리를 들고 똥꼬를 핥고 있는 저 고양이에게 돌아갔을 테고.
아프리카 커피의 산미는 혀 끝부터 느껴야 한다. 한가한 오후, 산미 강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억수같이 비가 오는 창 밖을 바라봤다. 인적이 없다. 멀리 아파트 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 녹음이 우거진 숲이 보였다. 닭장 속의 닭들은 비를 피해 횟대를 부여잡고 있을 터이다. 수탉이 없는 그들은 누가 지켜줄 것인지... 암탉들을 지키겠다며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수탉이 떠올랐다. 수탉은 지금없지만 그 마음은 바람, 아니면, 비라도 되어 남았으면...
집에 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창 밖을 보며 겨우 커피 한 잔 마셨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