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자, 어학원, IELTS, 홈스테이

by 류대선

저는 중2 때 미국에서 1년 교환학생을 한 것 말고는 한국에서 자란 토종 한국인이었습니다. 20대 때 군대에 다녀온 후 방황하다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지원한 곳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자신청에서 2번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22살 군대 다녀온 후 30살까지의 공백기 동안 무엇을 했는지 증명할 수 없었어서 그랬지 않았나 싶습니다. 간간히 파트타임으로 일한 것 말고는 백수로 지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불법체류자가 많아 학생비자받고 일하러 가는 사람이 많았을 때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시 유학을 생각하게 된 곳은 영국이었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싶었고 평소 영문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영어의 본고장인영국이 딱 좋다 싶었습니다. 처음 Durham대학에 지원했지만 떨어졌습니다. 유학원 원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지만 역시 22살~30살까지 무엇을 했는지 확실치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눈을 조금 낮춰 Bristol, UEA, Exeter에 추가로 지원했습니다. 놀랍게도 세 군데 다 붙었습니다. 지원서를 쓸 때 조금 달랐던 점은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기를 부풀리기보다 조금 더 진솔하게 다가갔던 부분을 영국사람들이 알아봐 주었다고 느꼈습니다.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세 군데 대학 중 Bristol대학으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배우는 과목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문학은 대학마다 배우는 과정이 매우 다양했습니다. 저는 중세문학과 아동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그 두 가지를 포함하는 대학이 Bristol이었습니다.


영국의 학기는 9월에 시작했고 저는 3월에 학교지원을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있었습니다. 영국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최소 IELTS점수가 필요했습니다. 어차피 기왕 공부할 거 잠깐 어학연수를 다녀오자 해서 영국 남동쪽 Broadstairs지역에 가게 되었습니다.


Broadstairs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없어 영어 공부하기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홈스테이 해주시는 분은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었고 세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애들 나이는 한국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정도. 아들들 때문인지 아주머니 기가 굉장히 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하필 코로나 때여서 1주 정도 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격리가 끝나고 학교에 갈 때 행복했습니다.


그 당시 학교는 대부분 온라인 수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갔을 때 학생 수는 7명 아래였습니다. 선생님들이 더 많았습니다. 원래 학생수는 300명 정도라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 IELTS 진단받았을 때는 5.5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때 Bristol대학교파운데이션은 반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IELTS 평균 6.0 이상 하나는 7.0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높은 반에 가고 싶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학원 수업은 재밌었습니다. 시험 공부였지만 토론 위주의 활동들이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보다 달랐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치는 걸 중시하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힘은 더 들었지만 흥미도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 있었던 반은 학생이 3명이었기 때문에 더 빡셌고 또 많이 배웠다고도 생각합니다. 영어가 익숙지 않고 말하는 게 서툴러서 조용히 있고 싶었지만 금방 말할 차례가 돌아오더라고요.

어느 날씨 좋은 날 어학원 풍경

3개월 정도 열심히 공부하고 런던으로 IELTS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결과는 Reading 7.5 Listening 7.5 Writing 6.5 Speaking 7.0이었습니다. 역시 한국인은 Reading과 Listening이었습니다. Speaking 봐주시던 분은 젊은 여성분이셨는데 굉장히 친절했습니다. 대화할 때 다양한 단어들과 문법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어려운 주제가 나와서 6.5 받을 실력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좋았어서 그런지 7.0을 받아서 기뻤습니다. 어학원에 돌아와 7.0을 받았다 하니 선생님들이 모두 축하해주었습니다. 제 담당 선생님을 안아주었습니다. 나이도 많고 꼬장꼬장하시고 수업할 때 자기만의 고집이 있으신 분이었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믿고 따라갔더니 좋은 결과가 나와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학생수가 얼마 없었던 터라 전 그날 이후로 선생님들 사이에서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Hey Desun, I heard you got 7.0 on IELTS. Congratulations!"


IELTS반을 나오고 나머지 한 달은 일반 영어수업을 들었습니다. 반을 옮기자 학생 수가 저 포함 2명이 되었습니다. 더 많이 말해야 했습니다. 다른 친구는 터키에서 온 항공기 조종사가 꿈인 학생이었습니다. 말이 많은 친구라서 그나마 좋았습니다. 토론 수업에서 제가 말을 덜해도 되었거든요. 학생들이 더 오고 반을 몇 번 바꾸기도 했습니다. 나중 마지막 2주는 제게 맞는 반이 없어서 선생님과 1:1로 수업했습니다. 굉장히 피곤했지만 영어 실력은 많이 늘었습니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조금 많아져 15명 정도 되었습니다. 스위스에서 7명 정도 오고 그 밖에 체코 등 유럽국가에서도 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는 못했지만 쿠키 만들기 등 여러가지 활동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늙고 성격도 내성적이었어서 다른 어린 학생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끔 다른 지역으로 산책도 가고 저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왔다는 한 친구는 눈이 초록색이었습니다. 해리포터에서 읽었던 그 눈을 직접 보니 저는 너무 신기했습니다.


학교생활 말고도 홈스테이도 무척 좋았습니다. 사실 공부에 집중하느라 아주머니와 아들들하고 시간을 많이 못 보냈던 게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맛있는 저녁을 주시고 가끔 바베큐 파티나 여러가지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내서 감사했습니다. 영국음식이 맛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음식에 간을 많이 안 해서 그렇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KFC도 시켜먹더라고요. 보통은 피쉬 앤 칩스나 버거, 스파게티 같은 걸 먹었습니다.


집에 마당이 있었는데 가끔 시간이 남으면 쓸데 없는 식물 뿌리를 뽑는 등 아주머니가 정리하는 걸 도왔습니다. 영국 날씨는 흐리고 축축해서 좋지 않은데 식물은 왜 이렇게 잘 자라는지 모르겠습니다. 뒷마당에 가끔 청설모가 와 아주머니는 땅콩들을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놔두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나무기둥에 그 숨겨둔 땅콩이 한 바가지 있는 걸 보고 그만두셨습니다.


비자 신청을 해야 해서 7월에 한국에 돌아갔습니다. 영국은 여름이 해가길고 날씨가 굉장히 좋은데 떠나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IELTS 시험 보고 목표를 달성해서 기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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