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영국 대학은 대부분 3년제이다. 대신 교양과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입학 전 A-level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국제학생들은 Foundation 과정을 한 후 입학하곤 한다. 나도 그랬다. 1년.
Foundation은 보통 학교 부설이나 아니냐로 나뉜다. 학교 부설의 경우 과정이 끝나고 그 학교로 그대로 입학하는 편이고 부설이 아닌 경우 다른 여러 대학에 지원하게 된다. 나는 Bristol 대학으로 정했기 때문에 학교 부설 Foundation을 선택했다.
Bristol 대학으로 가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Foundation 과정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보통 여기서 문과 Humanties 와 이과 STEMs 로 나뉘게 되는데 수강하게 되는 과목은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다. Bristol에서는 영어 관련 과목이 두 개 있었고 그 밖에 Cuture and Identities, Literature: Short Stories, What does it Mean to be Human 이라는 과목들이 있었다. 각각 문화, 문학, 교양에 대한 과목들이라 내가 배우고자 하는 영문학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과목은 매년 바뀔 수 있어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 Foundation 에는 반이 두 개가 있었다. 운 좋게 IELTS 7.0을 받아 나는 상급 반으로 갔다. 그리고 절망했다. 같이 수업하는 친구들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났다. 아래 반이 IELTS 6.0~6.5 라고 하면 여기는 7.0+++ 느낌이었다. 몇 명은 국제학교 출신이거나 미국인 아버지 혼혈도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두 명은 영어가 국가 언어였다. 그에 비해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한 말더듬이 한국인. 토론이 많은 영국수업 특성상 처음 적응이 굉장히 힘들었다. 친구들과 말이 통해야 뭘 하는데 수업은커녕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다른 정말 많은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문화 차이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반에는 일본 2명, 칠레 1명, 홍콩 2명, 싱가포르 2명, 중국 1명, 말레이시아 1명, 한국 1명, 사우디 1명, UAE 1명, 요르단 2명, 쿠웨이트 1명 등 국적이 굉장히 다양했다. 또 해외경험이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사실 이것만으로 그들 문화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우리 모두 대부분 배경이 달랐음에도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나는 성격도 그때당시 MBTI의 I 였던 데다가 나이도 많아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았다. 존댓말이 없는 영어를 쓴다고 하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는 거의 10년이라는 나이 차가 있었다. 젊은이들 사이에 낀 아저씨 느낌이었다. 게다가 영어를 쓰면 머리를 많이 써서 그런지 무척 피곤했다. 덕분에 나는 더욱 더 과묵해졌다.
Foundation 과정 자체는 쉽지 않다. 우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수업이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영어가 빨리 늘었고 또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어울리다 보면 나까지 어려지는 기분이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고 서로 이런 저런 얘기 나누는 시간들이 흥미롭고 재밌었다. 홍콩에서 온 친구는 홍콩얘기,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는 싱가포르 얘기. 한국에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할 새로운 것들이 많이 있었다.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
중동에서는 Speaking위주의 학습을 중요시 한다고 느꼈다. 요르단에서 온 한 친구는 어렸을 때 선생님이 영어 학습을 위해서 반 의자를 다 치워버리고 학생들에게 서로 돌아다니면서 무조건 영어로 대화하라고 시켰다고 한다.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상대 의견이 맞지 않다면 반박할 수 있는지 등 자기 주장하는 법을 확실하게 배우는 듯 했다. 그래서 교양 선생님 Walter가 Middle East 출신들을 참 좋아했다.
홍콩에서는 선생님이 답안지를 주고 학생들이 그대로 베껴서 시험을 치는 방식으로 수업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무척 마음에 안들어했다. 한 때 영국에 정복당했었고 영국 교육에 영향을 받았지만 Asian 교육 관념도 남아있는 듯 했다.
싱가포르 친구는 자기 집에서 4개의 언어로 소통을 한다고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중국 출신들이 많아서 중국어, 영어, 말레이시아어 등을 썼다고 했던 것 같다. 엄마와 소통할때는 중국어, 학교에서는 영어, 할머니하고는 말레이시아어. 나 같은 토종 한국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Foundation과정 때는 영어도 잘 못해서 친구들과 깊게 친해질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맺었던 좋은 관계들이 그 후 3년 영문학 공부할 동안 이어졌다. 영어 실력이 점점 늘면서 친구들과 만날 때 자신감이 생기고 서로를 더 알아갈 좋은 기회가 되었다.
Potluck이라는 문화가 있다. 서로 각자 먹을 걸 가져와서 나눠먹는 어떤 파티다. 일본 친구는 유부초밥을 해왔고 홍콩 친구는 어떤 갈비찜 같은 요리를 해왔다. 다양한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지금 뿔뿔이 흩어져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Instagram을 알고 가끔 소식도 들러보곤 한다. 홍콩친구는 실제로 방학 때 한국에서 만나기도 했다. Foundation 했던 모든 친구하고 친해질 수는 없었지만 그 중에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 영어 실력이 부족했고 지금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상대를 깊게 알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상대에게 다가가는 따듯한 마음이라고 느꼈다. 국가, 종교, 인종, 언어에 상관없이 상대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린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홍콩친구가 홍콩에 놀러오라고 했던 것처럼, 또 일본이나 칠레에 있는 친구가 자기 나라에서 일하고 있을 때 내가 여행가서 만날 수 있는 것 처럼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늘 생각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