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2번 인턴십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토종 한국인이라 인턴십을 하면서 영국 회사에서 돈을 벌 자신이 없었다. 특히 내가 가고자 했던 분야는 인문이었기 때문에 더 언어능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 소개로 돈을 내고 인턴십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첫 인턴십은 1학년을 마치고 런던에서 하게 되었다. 분야는 마케팅 쪽. 기간은 4주에서 12주까지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12주를 하기로 했다.
내가 가게 된 회사는 광고 회사였다. 사장님은 유대인. 런던 북쪽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회사가 있었다. 한국, 그리고 내가 있던 브리스톨과는 또 다른 환경이 신기했다.
우리는 다른 업체들의 로고라던지 브로셔, 웹사이트 등을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장님도 나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던 거 같다. 나는 어차피 공짜 인력이었으니까. 영문학을 하고 있다는 나에게 마케팅 전략에 대한 지금까지 쓰셨던 글들을 정리하는 일을 맡겼다. 그 글들을 읽어보면서 전반적으로 광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광고의 기원에 대해 읽었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옛날 초기의 광고는 길거리에서 물건 파는 사람이 큰 목소리로 '사세요!' 하는 거였다고.
사실 여기서 일하며 일 자체에 대해서 배웠다기보다 영국 회사의 분위기 등을 느껴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비해 굉장히 동적인 느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업무 지시를 받는 등 하루하루가 바쁘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은 따로 없었다. 알아서 눈치껏 잘 먹는 것이다. 이렇게 일하니 출퇴근 시간이 잘 지켜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일할 땐 열심히, 퇴근은 빠르게.
2번째 인턴쉽은 스페인에서 하게 되었다. 광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던 때 난 나의 진로를 선생님 쪽으로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교육, 마케팅, 저널리즘 등 다양한 분야에 지원할 기회가 주어졌고 난 그렇게 발렌시아의 국제학교 보조 선생님으로 가게 된다.
교육 관련으로는 인턴십을 하며 Tesol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인턴십 종류에 따라가는 국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달랐는데 내가 지원한 곳은 초등교육 쪽이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던 나는 내 주제에 다른 성인이나 청소년들을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스페인 아줌마와 아들, 그리고 또 다른 인턴이 먼저 집에 들어와 있었다.
사실 인턴십 프로그램은 일을 배우는 목적도 있지만 그 지역의 문화를 배우는 교류의 느낌도 있다. 나는 영어 교사를 하러 갔기 때문에 굳이 스페인어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1:1 온라인 수업으로 미리 공부를 하고 갔다. 확실히 그때 배운 걸로 사람들과 조금이나마 소통하니 좋았다. 아주머니가 요리를 해주었을 때 적어도 '음식이 맛있다' 정도는 표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스페인어는 도움이 되었다. 나는 영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스페인어로 대화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시간 지도라든지 아이들을 인솔하는 등 통제가 필요할 때는 짧은 스페인어가 도움이 되었다. '먹어' 라는 뜻의 '꼬메르' 를 짧게나마 얘기하면 아이들은 나도 스페인어를 할 줄 아냐는 듯 눈을 땡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자국어가 주는 힘을 여기서도 느꼈다.
언어적인 면에 있어서는 여기서 일할 때가 영국에서보다 많이 어려웠다. 학교에 있는 어른들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과 더 교감하기는 편했다. 내가 가르친 학년은 1학년, 6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영어 실력이 좋아 놀라울 정도로 소통이 되는 반면 말이 부족한 아이들도 우린 어떤식으로든 통했다.
스페인의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해가 쨍쨍한 날씨 만큼이나 사람들 마음도 정열적으로 불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말 자체도 빠른데다가 제스처를 많이 사용하는 등 자기표현이 매우 강하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던 나에게 아이들은 가끔씩 다가와 이유없이 안아주곤 했다. 내가 바닥에 앉으면 꼭 내 무릎에 앉으려고 하는 아이들 등 학교 자체도 그렇지만 여기는 정말 사랑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물론 즐거운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아침에는 스쿨버스를 타고 갔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질문 공세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누구고 어디서 왔고 나이는 몇살이고 ... 스스럼 없이 다가와 주는 아이들 덕분에 매일이 새롭고 재밌었지만 지칠 때도 있었다. 차가운 나라 영국에서 온 나에게는 너무 많은 관심은 버거웠던 거 같다.
또 내가 다녔던 학교는 부유한 학생들이 많이 다녔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끔 제멋대로인 경우가 있었다. 학교에는 규칙이 있고 그걸 따라야 할 때가 있는데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보면 한숨이 많이 나왔다. '저렇게 예쁜 아이들이 왜 저럴까'. 특히나 제멋대로였던 한 아이 때문에 학기 마지막에는 같은 반 선생님이 눈물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다른 선생님도 울고. 그 선생님이 보였던 아이에 대한 노력을 나도 알고 있어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달래도 보고, 화내도 보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심리상담가도 왔었는데 나아지는 모습이 안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이 울자 같은 반 아이들이 그 선생님을 안아주기 시작했다. 그 힘듦 속에서 나는 따듯함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 치유되는 느낌.
비록 돈을 받지 못하는 인턴십이었지만 여기서 나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내 진로를 탐색할 수 있었고 또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힘들었던 만큼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은 좋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로 변했다. 여기에서의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유학 중에는 방학이 길기 때문에 이렇게 인턴십으로 자기 길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