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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히어로를 기다리나요?

지속가능성의 이해관계자들

by DESUS

사람들은 끊임없이 동경할 만한 인물을 찾고, 멋진 인물이 홀연히 나타나 앞에 놓인 문제들을 멋지게 해결해주는 영웅 이야기에 열광합니다. 히어로에 대한 환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선지자, 위인, 임금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왔습니다. 헐리웃 영화와 같은 일이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당과 공약들보다 인물이 가진 매력과 스토리텔링에 마음이 쏠리기도 합니다.


Photo by Ali Kokab on Unsplash.jpg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은 비단 대통령에만 한정되지는 않습니다. 사회혁신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는 용어 중 하나가 '체인지 메이커' ,'사회적 기업가'입니다. 한국 사회에 이 용어가 널리 퍼진 것은 히어로에 대한 환상이 누구 못지 않게 발달한 미국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한 사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체인지 메이커'를 발굴하겠다거나 교육을 통해 '사회적 기업가'를 키우겠다 하는 식입니다. 프로그램의 홍보 페이지에는 팔짱을 끼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과 성공담을 다룬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찬물을 끼얹어 본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속가능성의 문제들은 한 사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문제도 복잡해지면서 한 분야의 전문성으로 다룰 수 없고, 하나의 시각으로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마치 그 사회 문제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올 것 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솔루션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나 단기적 접근은 오히려 문제를 파악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또는 여러 방면의 전문성이 결여되었을 때에 우리는 뒤늦은 부작용들을 발견합니다. '졸속'으로 진행되었다거나, '탁상 공론' 이라거나, '현장'과 거리가 멀다는 등의 표현은 문제의 복잡성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속가능성의 이해관계자들

이에 대한 고민은 미국에서도 이어져 왔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혁신에 대해 정부나 기업, 각각에서 해결하려고 하거나 또는 학계의 기초연구에서 응용연구로 그리고 기업의 R&D와 상업화, 정부 정책으로 흘러가는 선형적 구조가 보편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강력한 대학기반을 바탕으로 한 기초연구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선형적 모델의 약점이 부각되고, 새로운 대안에 대한 요구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각 단계간의 연결과 기업과 대학 등 서로 다른 부분들의 연결을 강조한 모델이 개발되었습니다. 이것을 트리플 헬릭스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이 모델은 정부와 기업 학계간의 연결 을 넘어서 각각이 서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서로 중복되는 영역에서 하이브리드 조직을 만드는 모델로 발전했습니다.

04_triple helix.jpg Etzkowitz, H., & Leydesdorff, L. (2000) 재구성



트리플로도 부족하다

이후 21세기형 모델로 시민사회를 이해관계자로 포함시키는 4중 나선형 모델이 등장했습니다. 또한 이 모델은 이해관계자들간의 네트워크를 통한 다양한 지식의 창출과 확산을 보여줍니다. 현재 많은 국가들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으로 이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2018년 순환경제 확립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이를 위한 자문기구를 설립했고, 4중 나선형 모델을 통한 협력활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4중 나선형 모델을 넘어 5중 나선형 모델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05_4helix_Fraunhofer IAO_co-shaping.png Fraunhofer IAO 연구소의 4중 나선형 헬릭스 모델






우매한 군중에서 영웅의 자리로

영웅이 세상을 구한다는 환상에는 문제를 단순화하는 위험성 외에도 숨어있는 불편한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보통의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수동적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우매한 군중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은 가냘프고 위험에 처한 시민과 대조됩니다. 여기에는 과거의 가부장적인 사회 모습도 반영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은 팀플레이입니다. 위대한 한 사람보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4중 나선형 모델은 정부나 기업 또는 학계 그 어떤 한 집단이나 특정 전문성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시민들을 전문가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이것은 개인들의 전문성과 목소리를 문제 해결을 위한 주요한 능력으로 인정하는 한편,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해 그 누구도 뒷짐을 지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모두의 문제이면서 모두가 함께 해결해나갈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Etzkowitz, H., & Leydesdorff, L. (2000). The dynamics of innovation: from National Systems and “Mode 2” to a Triple Helix of university–industry– government relations. Research policy, 29(2), 109-123.


Carayannis, E. G., & Campbell, D. F. (2009). 'Mode 3'and'Quadruple Helix': toward a 21st century fractal innovation ecosystem. International journal of technology management, 46(3-4), 2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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