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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Apr 10. 2021

정재형 님께

뒤늦게 발견한 너의 편지

아내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건 꽤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지금 내 손에 쥘 수 있는, 그녀의 온기를 머금었던 몇 안 되는 물건.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출렁인다. 유독 엄마가 그리운 날, 아이들은 엄마 핸드폰을 찾는다. 그리고 니가 담긴 영상들을 수십차례 반복해서 본다. 일부러 피하고 있는 나는, 아무리 시선을 돌려도 들리는 너의 생생한 목소리에, 기어이 꽁꽁 묶어뒀던 슬픔의 둑이 터져 어쩔 줄 모르는, 애써 모르는 채 하지만 이미 가라 앉아버린, 바닥에 흩뿌려진 먼지가 된다.

꺼뒀던 너의 핸드폰을 아이들 때문에 켰다가 문득 너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게 됐다. 그러다 니가 정재형씨에게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 아내는 그의 음악을 즐겨들었다. 그 중 오솔길과 달빛을 유독 좋아했다. 살면서 좋아해본 연예인 하나 없다 했던 너였는데, 니가 가장 힘든 시절, 병실에서 외로웠던 그 밤, 아내는 그의 음악에 위로를 받았다며 그가 읽을리 만무한 디엠을 보냈다. 너 특유의 공손함과 진솔함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정재형씨에게 남겼다. 물론 그의 답장은 없었다.

외로웠던 힘들었던 그 밤, 나는 어디 있었나 자책하진 않는다. 나는 너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을 너의 마음처럼 보듬고 있었을테니. 다만 옆에 있을 때 몰랐던 일을 다 지나고 떠난 뒤에나 알 수 밖에 없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런 걸 하나 둘 발견하게 됨에, 나는 너를 다시 떠올리며 눈물 지을 뿐이다.

어제는 니가 꿈에 나왔다. 웃기지만, 우리는 같은 훈련소에 있었다. 너는 마치 지아이제인처럼 머리톨 하나 없는 모습으로 그 누구보다 강인하게 모든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여름이었는지 소매를 걷어 올린 군복 상의를 멋들어지게 입고 서서, 뒤쳐져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대로 한참을 앞서 뛰어갔다. 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따라갈 수 없었다. 달려가는 그 길이 마지막임을 우리 둘다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이라도 더 손이 닿길, 죽을 힘을 다해 발을 굴렀지만 짐짝처럼 무거운 내 다리로는 한 걸음 떼기도 버거웠다. 그리고는 잠에서 깼다.

널 추억하는 건 여전히 내게 너무 힘든 일이다. 충분히 슬퍼 할 시간도 필요하단 얘길 주변에서 많이 해주지만, 그렇게 슬퍼하다가 난 죽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일부러 어느 정도는 외면하고 산다. 아니 어쩌면 너라는 존재가 애초에 내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으려 애써보기도 한다.

오늘 아침 말씀을 읽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에 대한 말씀이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바로 사랑. 생각해보면 니가 그랬다. 아내는 나를 걱정인형이라 불렀다. 내가 본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나에게 쉽게 본인의 아픔과 외로움을 다 털어놓지 못했다. 가장 너답지 않은 행동, 연예인한테 디엠이라니. 그 메시지를 보며 나는 발끝까지 저렸다. 너의 외로움과 아픔이 어땠을 거라는 걸 차마 짐작도 다 하지 못했음에.

그럼에도 또 오늘도, 내일도 나는 살아가야 한다. 니가 남겨둔 과제, 삶의 숙제 아니 우리의 선물이자 보석같은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이 곳에서의 사명이 있다. 돈과 명예, 사회적 권위, 세상의 아름다움과 이를 누리는 즐거움. 맛 볼 수 있다면 나에게도 달콤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님을 안다. 신은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나는 너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값지게, 너의 몫까지 살아야지 다짐한다.

오늘 밤은 나도 정재형님의 음악을 듣는다. 정재형씨에서, 정재형님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다. 그녀를 위로해주셔서, 지금 나를 위로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상실 #위로 #기도 #말씀 #정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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