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럽 34 Clifton Strengths 검사로 다시 발견한, 나
지난 달 제주에 갔을 때 친구들과 강점검사를 했다. 세계적인 조사기관인 갤럽에서 만든 34 Clifton Strengths 라는 검사다. 갤럽은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 어떤 패턴이 있는지 1950년대부터 수십 년간 연구를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타고난 강점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도구를 설문 형태로 만들었다.
34라는 숫자에서 볼 수 있듯 이 검사는 사람의 강점을 34개의 재능 테마로 정의 내린다. 그리고 이를 다시 실행, 영향력, 관계, 전략적 사고의 4개 영역으로 묶는다. 갤럽 웹사이트에서 약 30분 간 200개 쯤의 문항에 답을 하면, 내가 가진 강점들이 1위부터 34위까지 우선순위로 정리된다. 갤럽은 이것을 재능 DNA 라 부른다. 즉 우리 모두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상위 10개 항목을 집중 분석하며 이를 최대한 활용해보라 조언한다. 잘하도록 설계된 영역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게 이 검사의 목표다.
나의 상위 강점들은 대인관계 영역이 많다. 특히 연결성, 개별화, 절친 테마가 높다.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강점과 매력을 발견하고 이들이 서로 협력 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알아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더 쉽고 즐겁다. 이것은 비단 인간 관계에서 뿐 아니라 일과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신념, 미래지향, 책임, 최상화 같은 강점이 붙으니, 나는 어디서든 계속 새로운 미래를 그려간다. 잘 되리라 믿는다. 완수하기 까지 맡은 일에 열과 성을 다한다.
한 때 나는 지하철만 타면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표정, 서있는 자세, 입은 옷차림, 시선 정도 보면 왠지 이 사람은 이런 성격에 이런 상황에 처해 이런 생각들을 하고 살 것 같단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마도 실제와 많이 달랐을 수 있다. 그게 중요하다기 보다,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을 안하고 싶었다. 근데 이게 누군가를 보면 계속 뭔가의 이미지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연상됐다. 때론 나의 오만과 자만으로 비판과 비난, 조롱과 조소가 섞이기도 했다. 그래서 안 보려고 눈을 그냥 감아버린 적도 많다.
사회에 나와 회사 생활을 하다보니, 이런 나의 감이 그다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모두가 나와 같은 걸 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고백하건데 이걸 강점으로 개발해 활용하기보다 조종하고 통제하는데 더 썼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따르고 싶은 리더이지 못했고, 같이 일하고 싶은 팔로워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뒤늦게 반성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려 애썼던 최근 몇 년 이긴 했지만, 막상 검사를 통해 나만 아는 나를 강점이란 이름으로 다시 마주하니 괴로운 마음도 생겼다.
2009년 LG패션 공채로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명을 뽑는 회사에 만사천명이 지원했다. 700:1 의 경쟁률. 나는 운이 좋아 붙었다 생각했다. 학점도 입사동기 중에 가장 낮았고, 유학을 준비하다 급하게 취업을 하게 되어 회사, 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우리 동기들은 정말 똑똑해 보였다. 여유있고, 유연한데, 아는 것도 많고, 말들은 또 어쩜 그리 잘하는지. 발표 울렁증이 있어 대학교 4년 내내 조모임 첫 시간 마다 발표만 빼주면 뭐든 다 하겠다 말하던 나였다. 낮은 자존감에 어떻게 이들과 경쟁해서 사회에서 인정을 받겠나, 늘 걱정하고 불안했다.
지난 주 입사를 같이 했던 동기 한 명과 같이 한강을 뛰고 영동설렁탕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 친구는 최근 달리기 후 회복을 돕는, 리커버리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를 만들어 런칭했다. 이걸 어떻게 알리고 홍보 할 지 고민이라고 하는데, 내가 알고 겪어온 범위 안에서 조언해주고 싶은 얘기가 내 안에 명확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그 이야길 설렁탕을 쑤셔 넣으며 신나게 했다. 그 때 이 동기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얘기는 승렬이형하고만 할 수 있지. 다른 A형, B형 하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야.'
순간 뭐랄까. 깎두기를 입에 넣고 베어물고 있었는데, 지난 17년의 시간들이 달콤하고 짭짜름하고 맵고 신 맛의 파노라마처럼 혀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맞지, 그 친구들은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라고 답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하니 이건 정말 나만 해줄 수 있는 얘기였다. 그 불안과 떨어진 자존감의 단짠 같던 시간들을 삼켜내며, 나는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었다. 지난 주엔 1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날은, 야 너 발표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하는 구나 란 얘길 들었다. 대학교 4년 내내 덜덜 떨던 나는, 이제 마이크를 들고 웃으며 대신 너스레를 떤다. 짧은 순간 파악한 상대방의 성격과 마음을 보고, 한명 한명 눈을 맞춰가며 대화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 됐다.
최근 가까운 두 동생들의 스타일링 컨설팅을 아주 가볍게 해줬다. 특히 두 사람 다 눈매가 진한 편이라 안경을 잘 쓰면 많은 부분이 보완될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안경점 대표님과 이 친구들에게 정말 잘 맞는 안경을 찾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달라진 인상을 보니 내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걸 산 것도 아니고, 내가 돈을 번 것도 아닌데, 나는 정말 활짝 웃으며 신나 있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내가 가진 타고난 강점의 발현일 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는 일들을 잘 관찰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울 때,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만약 이 강점이란게 정말 DNA 안에 심겨져 있는 거라면 이런 나를 설계한 존재도 분명 있겠지.
나의 신은 내게 그 어떤 삶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지 말지 선택 할 의지는 분명 나에게 있으니. 그러나 내가 만약 집을 짓는 설계자라면, 내 의도에 맞게 사용되길 바랄 것 같다. 특히 아주 특별하고 명확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더 그렇겠지. 그래야 이 건물을 찾는 사람들은 집이 갖는 충분한 장점들을 누릴테고, 집 역시 옛 동화 속 행복한 나무처럼 자신의 쓰임을 다함에 행복 할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