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루틴을 다시 찾기 위한 노력
휴직 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아침 루틴이 잡혀간다. 일어나는 건 7시다. 회사에 다닐 때와 같다. 침대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아침 예배 말씀을 듣고 30분 정도 기도한다. 그럼 보통 8시 전후다. 여기서 누우면 안 된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뛰러 나간다.
차를 세워놓은 곳 뒤에 2평 남짓 작은 공간이 있다. 거기서 짧은 스트레칭을 한다. 고관절을 잘 풀지 않고 뛰면 꼭 종아리나 무릎이 아프다. 특히 틀어져 있는 오른쪽이 중요하다. 달리기는 그리 오래하지 않는다. 길어야 15분이다. 1.5에서 2키로 정도를 아주 가볍게 뛴다.
다리를 들어 움직이기 시작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오늘 몸 상태가 어떤지. 허리의 축과 고관절이 같이 회전하며 자연스럽게 앞으로 몸이 나가는 날이 있다. 반면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것 마냥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다리를 계속 앞뒤로 차고 접으며, 팔꿈치는 최대한 갈비뼈에 붙여 힘차게 흔든다. 나는 앞으로 가야한다.
뛰고나선 좀 걷는다. 햇빛의 온기에 온몸의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주변을 꼼꼼히 훑는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이라도 발견하려 애쓴다. 누군가 안에서 조명을 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게 빛나던 창문, 영하 13도의 추위에도 결코 떨어지지 않은 바싹 마른 꽃잎, 파아란 하늘을 뒤로 움직이는 구름같이 피어나는 환기구의 수증기. 인적이 드문 골목 위주로 뛰다보니 사람보단 주로 이런 장면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를 사진으로 담으면 이 날의 달리기 기록 배경 이미지가 된다.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한다. 땀이 나도 춥다보니 아주 뜨거운 물로 머리끝부터 샤워를 하는게 좋다. 그렇지만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이제 자랑스런 탈모인이다. 머리를 감을 땐 미온수가 좋다고 했다. 너무 차지도 뜨겁지도 않게. 1분 정도 물로만 머리를 가볍게 헹군다. 그리고 샴푸에 거품을 충분히 내어 손가락만으로 부드럽게. 깨끗히 잘 헹구고 쿨링 샴푸를 한번 더. 거품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그제서야 몸에 끼얹는 물의 온도를 높인다. 사르르 녹는다.
좋아하는 향의 바디샴푸로 몸을 씻는다. 다시 물의 온도를 낮춰 머리를 헹군다. 꾸덕한 세타필에 불리의 오일을 개어, 에이솝의 향수를 뿌려 건조함을 막아본다. 이러면 대략 9시쯤 된다. 머리도 몸도 꽤 맑고 개운하다.
7시부터 9시. 2시간을 보내며 나는 오늘 하루를 마치 다 보낸 것 같은 마음으로 정리한다. 해야 할 일들을 이미 다 잘 했다고 생각하며 그 과정을 머릿 속으로 구조화 시킨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한다. 그에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게, 내가 들어야 할 말이 있다면 감사히 받을 수 있게. 불안과 두려움이 낮아지고 기분 좋은 설레임이 생길 수 있도록. 사치스럽게 넘치는 사랑과 예민할만큼 본질을 파고 드는 지혜를 강박적으로 찾고 또 찾는다.
미루고 미루던 옷장정리를 드디어 마쳤다. 안 입는 옷들이 100벌 이상 나왔다. 사진 찍고 올려서 파는데도 한계가 있지, 이걸 다 어떻게.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과 교회분들에게 홈 플리마켓을 열었다. 오늘 몇 분이 각자 몇 장씩 손에 들고 가셨는데도 내 눈에 남아 있는 옷의 숫자는 거의 그대로다.
나눔해달라는 요청들이 좀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솔직히 정말 오래 아껴 입다 작아서 못 입는 옷들은 선뜻 그냥 드리기 어렵다. 단돈 얼마라도 받아야 가져가서 막 다루시지 않을 것 같아 그렇다. 뭐 내 옷이잖아. 내 맘이다. 오늘은 가디건 만원부터 시작했다. 좀 비우면 새로 더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닌 거 같다. 이 100벌을 정리하고 나야, 진짜 비움을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많은 옷들이 어디 있었나 싶을만큼 아직도 내 옷장은 가득 차 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계속 하고 있다. 상당히 어렵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었는데 내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는 방법인 것 같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먹은 마음이, 무얼 위함인가 생각한다. 널 위한다면서 날 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여행이 가고 싶은 건 어떤 이유인가. 바빠질 나에 대한 선제적 보상의 심리인가 아니면 정말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어서인가. 같은 주제들로 나를 탐구한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중간에 쇼츠에 빠져 길을 잃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면 정말 최악이다.
맛있는게 먹고 싶어졌다. 지인이 스토리에 일본 어느 도시에서 올린 사진 한장을 보고 나서 시작됐는데, 그 맛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 음식 하나를 위해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행의 이유가 됐다. 이건 도피도, 보상도 아닌 순수한 나의 기호다. 그러다 굳이 일본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서울 아닌 곳에 로컬 음식들 중 꼭 먹어보고 싶은 것들도 있다. 그저 찾아가서. 먹고. 그 과정과 먹고난 뒤의 감상을 글로 쓰면, 그걸로 썩 괜찮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3월 중엔 해야겠다.
그러며 마지막 한 가지 고민을 한다. 혼자 갈 것인가, 일행을 찾거나 만들 것인가. 며칠 전 까지도 혼자는 싫은데 여행은 가고 싶다. 가 내 고민의 주제였는데. 목적이 먹고 경험하고 글을 쓴다가 되니, 혼자가도 될 것 같다. 심심하려나. 외로우려나. 여기서 뭐 하나 싶으려나? 어쩌면 2008년 두달 간의 혼자 여행 이후 나는 계속 어떤 틀 안에 갇혀 있던 건 아닌가. 그리고 아이들과는, 나를 위한 여행은 안하는게 맞다. 이건 별개로 본다. 너희를 위해선 따로 가야지.
오늘 읽은 어떤 글에서 요즘 사람들이 책을 못 읽는 이유는 읽는 근육이 자라지 않아서 라고 했다. 인간은 원래 소리로 대화를 하는게 더 자연스럽지, 글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건 인간 역사 전체에서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글을 읽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쓰게 된다. 읽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쓰는 건 어떠하랴. 짧지 않은 긴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렵다. 그럼에도 쓸 때 만이 근육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쓴다. 별 쓰잘데기 없는 루틴 얘기에서부터 먹는 여행에 대한 것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