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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07. 2021

협박전화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한 통의 협박전화
(데이트 폭력, 법의 공백과 경찰)

당직 근무 날 헤어진 남자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았다는 112 신고가 떨어졌습니다.
 
지령을 받은 관할 파출소에서 여성분이 운영하는 식당에 먼저 출동을 하였는데, 112상황실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상황실에서는 "김형사, 방금 떨어진 협박 신고말이야, 공청이 심상치 않아, 강력팀에서 현장에 나가서 여성분을 만나봐"라고 했습니다.
(※공청 : 112신고자의 신고 시 음성을 녹음한 파일)

저희 팀은 형사기동대 차량을 타고 급히 식당으로 가면서 공청을 들었는데, 신고를 하시는 여성분의 목소리에서 극도의 공포심이 제 몸에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만큼 여성분은 다급하고 초초한 목소리로 112에 신고를 하신 거였습니다.

식당에 도착하니 파출소 경찰관이 먼저 도착하여 여성분에게 신고 내용을 듣고 있었는데, 경찰관이 옆에 있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여성분의 얼굴은 다소 안정된 모습이었습니다.

50대이신 여성분의 신고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식당에 매일 찾아와 식사를 하던 중년의 남자분이 있었는데 다정다감한 그 남자와 친해지게 되었고, 친해진 후부터는 남자는 종종 식당일을 도와주면서 사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자는 어떤 사건으로 1년 전에 교도소를 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성분은 얼마 전 기존의 식당이 있던 건물이 신축 공사를 하게 되면서 식당을 옮기셨는데 어제 저녁경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받았더니... 그 남자였고 출소를 하였으니 다시 만나자고 하여, 이제는 더 이상 만나기 싫다고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갑자기 '배신'이란 단어를 운운하며 화를 내고 다시 찾아간 식당이 없어졌다면서 식당을 옮겼냐고 묻기에, 여성분은 식당은 폐업을 하였으니 더는 자신을 찾지도, 전화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계속 전화가 걸려왔었고 조금 전 깜박 실수로 전화를 받았더니, 그 남자는 술에 취해 흥얼거리며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식당 주소가 나오네... 흐흐... 기다려... 죽이러 갈 테니"라는 한 마디를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며 극도의 공포에 질려있었습니다.

여성분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보니까 밤새 10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습니다. 팀장님께서는 직접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전화인지를 알았는지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종합했을 때, 현재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남자가 식당 주변에 숨어서 저와 여성분을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과, 경찰이 철수한 이후의 상황을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성분은 사건 처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여성분이 자신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정말로 갑자기 식당에 찾아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이 무슨 일을 벌이면 어떡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분의 걱정은 맞는 말이었고... 저 역시도 지금 그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성분에게 경찰이 제공해 줄 수 있는 모든 신변보호 조치를 해드리겠다고 하였지만, 가정폭력과 달리 데이트 폭력은 경찰수사 단계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강제적으로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긴급 임시조치(판사 결정문)를 할 수가 없습니다. 법이 아직까지 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신변보호 조치를 마치자 팀장님께서는 저에게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이 사건은 데이트 폭력 사건이지만 죄명은 '협박'으로 강력팀에서 처리하는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우리 팀에서 맡아서 수사를 하겠냐고 저에게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팀장님께 제가 이 사건을 맡아서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경찰서에는 여러 부서와 수사팀들로 나뉘어 있지만, 이 사건의 현장에는 저희 수사팀이 가장 먼저 도착을 하였고 여성분의 공포와 불안함을 직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제가 사건을 맡아서 수사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면 저희 수사팀에서 수사를 하는 게 가능합니다. 이 사건은 제가 피해자의 가족도 아니고 그밖에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상황도 전혀 없었습니다.

여성분을 안심시켜드리고 경찰서로 동행하여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하였는데, 피해조서를 만드는데 최대한 신경을 썼습니다. 검사님과 판사님은 현장에 오지 않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지 않기 때문에 현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런 협박 사건은 현장 상황을 서류로만 접하기 때문에 더더욱 현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서는 소설이 아니지만 수사서류를 읽으실 때 현장 상황과 여성분의 공포감을 제가 느낀 것만큼 검사님과 판사님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게끔, 그 상황이 그대로 눈앞에 그려질 수 있도록 조서 작성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신속히 체포영장을 만들어 수사기록을 들고 직접 검찰청으로 갔습니다. 기록을 들고 검사님에게 찾아가 영장이 빨리 발부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드리고 검사님으로부터 영장 청구서를 받아, 다시 수사기록을 들고 법원 영장계에 가서 접수를 하고 의자에 앉아서 영장이 발부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판사님은 사건의 공정성 때문에 검사님과는 다르게 제가 직접 만날 수가 없어서 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영장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 중간에 영장계 직원에게 혹시 영장이 발부되었냐고 물으면서 기다렸고 다행히 판사님도 체포영장을 빨리 발부해 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와 파트너는 경찰서로 출근하지 않고 여성분의 식당으로 출근했습니다. 여성분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듯 보이셨고, 신고를 했을 때부터 아직까지는 남자에게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면서... 저에게 혹시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냐고 되물었습니다.

남자가 사용한 휴대폰은 외국인 명의의 대포폰으로 확인되었는데 그 위치가 지방이었습니다. 여성분에게 남자는 멀리 지방에 있다고,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드리려고 우리가 식당으로 출근한 거라고... 당분간은 식당으로 출근을 하고 밥도 식당에서 먹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제야 여성분은 안심을 하시며 제가 얘기한 그 지방이 그 남자의 고향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의 며칠 간의 잠복 중에 여자를 만나러 온 남자를 체포하였고 남자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조사는 변호사님의 참여하에 진행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여성을 죽이겠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화가 나서 순간적으로 한 말일뿐, 실제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면서 화나서 한마디 한... 이런 남녀 간에 말다툼한 사건을 왜 강력팀에서 처리하냐면서 오히려 저에게 신경질을 내면서 여성분과 무슨 관계냐고 되물었습니다.

조사가 끝나갈 때쯤... 변호사님은 저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할 꺼냐고 물으시기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거라고 말을 하였더니, 변호사님은 "말 한마디뿐인 이런 협박 사건을 강력팀에서 맡아서 수사를 하는 것도 이례적이고, 불구속이 아닌 구속수사를 한다는 것도 이례적인데, 김형사님 경찰에서 너무 무리를 하시는 거 같습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속영장을 치겠다는 제 말을 들은 남자는 저를 노려보면서 "형사님, ○○이 잘 지키세요. 나 풀려나면 무슨 일 일어날지 모릅니다"라고 하기에, 저는 "풀려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물으니 남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글쎄요"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다음날 남자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변호사님에게 통보를 해주자, 변호사님은 깜짝 놀라면서 영장이 발부된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도 말 한마디 뿐인 단순 협박 사건의 피의자에 대해서 구속수사를 하겠다고 수사방향을 잡고 수사를 하면서 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구속영장은 발부되었고, 자신의 행동이 중한 범죄임을 깨우친 남자는 여성분에게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작성된 합의서를 저에게 제출을 하면서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찰관으로 이러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정폭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인 간 범죄인 데이트 폭력 사건임에도 임시조치나 가해자에 대해서 가중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어 엄중히 처리하지 못하는 벽에 부딪칠 때도 있지만... 국민들께서는 법을 넘어서 사회 정의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피해자를 진심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그러한 경찰을 원하실 것입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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