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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05. 2021

여성 대상 주거침입 사건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여성 대상 주거침입 사건
(경찰 수사의 패러다임의 변화)

당직날 관내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누군가 몰래 집에 들어와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이 든 현금봉투를 훔쳐갔다는 신고였습니다.

사건을 받고 피해자의 집에 임장하여 자세한 피해 경위를 물어봤습니다.


피해자분은 생일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돈 봉투를 침대 옆 화장대 서랍에 넣어놓았는데, 이틀 후에 보니까 돈봉투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 집에 들어와 돈봉투를 가져갔다는 것인데, 이틀 사이에 집안이 흐트러져 있지도 않았고 누군가 집에 들어온 흔적도 없었다면서 더욱 소름 끼친다며 몸을 부르르 떠셨습니다.

20대 초반의 여성이신 피해자분에게 누구와 함께 사냐고 물어보니, 1년 전부터 독립을 하여 이 빌라 2층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선 CCTV를 보기로 했는데, 빌라는 오래된 건물로 CCTV가 없어서 구청에서 설치한 빌라 주변 골목길에 설치된 방범용 CCTV를 돌려봤습니다. 하지만 빌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CCTV로는 이틀 동안에 골목길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 중에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도저히 찾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분의 집 주변에만 유독 CCTV가 없었고 범인은 이를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CCTV로는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어서 바로 주변 탐문을 시작하였습니다. 범행 현장 주변에서의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을 하였고 탐문 이틀째 저녁쯤에 한대의 순찰차가 제 앞에 서더니 순찰차에서 내린 후배 경찰관에게 졸지에 불심검문을 당했습니다.

후배인 박순경은 저에게 "아휴~ 선배님이셨군요. 조금 전에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 주택가 골목길을 서성인다는 112신고가 떨어졌어요. 주민분이 선배님을 보시고 신고했네요. 여하튼 선배님 패션은 너무 범죄자 스타일이세요"하고는 멋쩍게 철수를 하였습니다. 음~ 주민들 눈엔 제가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고... 사실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ㅜㅜ

순찰차가 떠나고 이어진 탐문 중에 피해자의 옆집 할아버지로부터 의미 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막걸리를 한잔 기분 좋게 걸치시고 집에 들어오시는 옆집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경찰서 형사예요. 옆집에 도둑이 들었는데요. 최근에 골목길에서 수상한 사람 보신 적 있으세요?"하고 여쭤보았더니, 할아버지는 한겨울의 군밤장수 빵모자를 쓰고 있는 저를 보시고는 "형사 양반, 자네가 더 도둑처럼 생겼구먼, 허~ 허~"하시면서 도둑은 모르겠고 한 달쯤 전에 어떤 남자가 옆집을 기웃거리는 것을 봤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남자에게 "자네는 첨 보는 청년인데, 어느 집을 찾아왔노?"하고 물으니, 그 남자는 손으로 머리를 글적이며 "친구가 이사를 와서요. 친구를 만나러 왔는데 집을 못 찾겠네요. 헤~ 헤~"하고는 간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남자의 인상착의를 물어봤지만, 할아버지께서 기억하시는 것은 20대 정도 남자이고 신고 있던 운동화가 붉은색이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순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번쩍' 거렸고, 구청에서 골목길 주변 CCTV를 돌려봤을 때 붉은색 운동화를 신고 골목길을 지나가던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곧장 구청 CCTV관제센터로 달려가 이틀 동안의 녹화영상을 돌려보니, 이틀 모두 붉은색 운동화를 신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고, 그중 둘째 날의 영상에서 남자는 피해자의 집을 가운데 두고 양쪽 골목길을 통과를 했는데, 남자가 걷는 속도로 봤을 때 5분 정도의 시간이 비었습니다. 그러니까 5분이면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서 돈을 훔쳐 나오고도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용의자로 의심되는 한 남자를 찾았는데, 형사로써의 촉이 그는 단순 도둑이 아니라 여자를 목적에 둔... 절도가 아니라 성범죄 사건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용의자의 도주로를 계속 추적하여 그의 인적사항을 밝혀낼 단서를 찾아냈고, 며칠 후에 용의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과거 전과를 조회했더니 강간과 강제추행의 전력이 있었습니다. 침입절도 사건에서... 이제부터는 성범죄 사건으로 수사방향을 선회하여 용의자의 성범죄를 증명할 증거들을 차례로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절도보다 그 목적을 입증하는 게 더욱 어려운 수사였고 확보한 CCTV는 용의자가 피해자의 집 주변에 있었을 뿐, 그 집에 들어갔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할뿐더러, 만약에 여자의 집에 침입하였다는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더라도... 절도 사건보다 형량이 훨씬 높은 성범죄 목적의 주거침입 범죄의 자백을 받아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만약 용의자가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게 될 경우에는 간접증거로만 밀어붙여 그것을 증명하기는 어려움이 따르는 상황이었고, 체포 이후 용의자에게 변호사가 붙을 경우 변호사의 방어를 어떻게 깨내야 할지 까지를 생각하면서 수사를 진행하여야 했습니다.

형사가 사건을 수사하여 범인의 잡고 유죄판결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것은 분명히 실패한 수사일 것입니다.

용의자에 대한 증거수집이 끝나고... 며칠 후에 그의 주거지에서 용의자를 체포하였고, 범행을 부인하던 용의자는 명확히 확보된 증거들 앞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으며 정당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과거 경찰은 살인, 강도, 납치 등 강력사건을 중요사건으로 분류하고 수사에 총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여성 혼자 거주하는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이를 노리는 범죄가 늘어남에 따라 한편으로는 예방 경찰활동을 늘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여성 집의 엿보기, 스토킹, 주거침입 사건을 강력사건으로 분류하여 경찰력을 총동원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용의자가 여성의 집에서 훔친 돈봉투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때 용의자의 집을 수색할 수 있는 압수수색영장을 함께 발부받았습니다... 용의자의 인적사항을 특정하고 수사가 한참 진행 중일 때 여성분은 저에게 전화를 하여 "형사님, 이 말은 꼭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없어진 봉투 안에 현금과 함께 제 어린 시절 사진 1장이 들어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용의자의 집 앞에서 3일간 잠복을 하였고 집에 귀가하는 그를 체포하였을 때... 그의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끝내 숨겨놓은 도난당한 봉투를 발견했고, 현금은 없었지만 여성분의 어린 시절 사진은 봉투 안에 그대로 들어있었습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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