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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05. 2021

형사처럼 안 생겨 죄송합니다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형사처럼 안 생겨 죄송합니다

파출소에 근무할 때에는 경찰서에 있는 형사들을 보면 같은 경찰이면서도 무언가 멋있어 보였습니다.

당시에 제가 강력팀에 지원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하니, 동료들은 저에게 응원보다는 "거기 장난 아니게 힘들데, 그걸 뭣하러 하려 하냐, 승진 공부나 하지"라는 얘기를 더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강력팀의 분위기도 예전에 비해 많이 유해지긴 했는데, 제가 형사과에 지원서를 냈을 때만 해도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일례로 조장님께서 "수고했어, 들어가 봐"라고 퇴근을 시켜줘야 집에 갈 수가 있었으니까,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강력팀 내의 군기는 제가 예상한 것을 훨씬 뛰어넘었고, 어찌 보면 직장 생활이고 공무원 사회인데... 우리조직 안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서가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었습니다.

당시 저희 경찰서 강력팀에는 진짜 기라성 같은 형님들이 여러 분 계셨습니다. 또 형님들은 한 분 한 분이 개성이 정말 뚜렷하셨는데, 제가 가장 닮고 싶었던 형님이 당시에 강력3팀에 계셔서 발령 때마다 그 팀에 들어가려고 제 딴엔 나름 애를 썼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각 경찰서에는 강력팀마다 강력형사의 '족보'를 이어가는 형사가  명씩 있습니다. 저희서에서는 그 형님께서 그 족보를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처음 강력팀에 발령받은 날 조장님을 따라 각 팀의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선배님들에게 첫인사를 드릴 때, 그 형님은 저를 보고 대뜸 "얘는 여자처럼 생겨서 형사하겠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선배님들은 뜨거운 여름철에도 흑백 고양이가 그려진 니트티에 무거운 금목걸이와 금팔찌, 통 좁은 기지 바지에 일수가방을 들고 다니셔서 누가 봐도 조폭 아니면 형사라 오해만한 외모를 가진 형님들이 많으셨습니다.

5년이 지나서야 제가 닮고 싶어 했던 그 형님과 한 팀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한 팀이 되어 회식자리에서 형님에게 "형사처럼 안 생겨서 죄송해요"라고 했더니, 형님은 괜찮다면서, "요새는 근성 있는 동생이 드물어, 일 좀 갈켜 놓으면 힘들다고 도망가니까, 너도 금방 도망칠 줄 았지"하시며 제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셨습니다.

지금은 모 경찰서 강력팀장으로 계신 그 형님의 별명 '조사자'였습니다...


'조폭 저승사자'^^

 

 

2009년 강력3팀 워크샵중에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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