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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04. 2021

여형사가 나를 좋아한 이유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여형사가 나를 좋아한 이유

몇 년 전에 다른 경찰서에서 여형사가 전입 왔습니다. 당시 우리경찰서 형사과에는 여형사가 없었는데, 형사과 전체 회의 자리에서 당당히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에 한눈에도 형사로써의 자부심과 강한 근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다른 경찰서에 있을 때는 여청팀(성ㆍ소년 범죄 수사팀)에서 외근형사로 성폭행 사건을 주로 수사했다고 했습니다.

저와는 다른 팀이었는데 언젠가 여형사팀의 인원이 부족하여 제가 하루 그쪽팀에 지원근무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여형사와 형사의 삶과 수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을 하였는데, 후배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수사기술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근무시간이 끝나 저희 팀으로 돌아갈 때쯤, 갑자기 선배인 저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이전 경찰서에 있을 때 몇 날 며칠을 추적하면서 꼭 잡고 싶었던 성폭행범이 있었는데... 그 범인을 끝내는 잡지 못하여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기고 우리경찰서로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가슴에 남겨진 사건을 털어놓고 고민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한 듯 보였고, 아주 잠시 지원근무를 나와 짧은 대화였지만, 타경찰서에서 같은 팀 선배도 아닌 저에게 가슴 한켠에 묻혀둔 얘기를 어렵게 꺼낸 거였습니다.
 
저는 범인의 범행수법을 물어봤습니다. 밤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창문으로 몰래 들어가 성폭행을 하고 증거를 싹 치우고 도망간다고 했습니다. 범인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니, 그 친구는 자기 휴대폰에 저장된... 가슴에 사무쳐 차마 지우지 못한 범인의 뒷모습이 찍힌 흐릿한 CCTV 사진 한 장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 잡지 못한 거 같다며, 그래서 수사를 좀 더 배우기 위해 형사과에 지원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사실은 그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 범인은 한 달 전에 제가 절도범으로 잡아 구속시킨 범인이었습니다. 원래는 성폭행 사건이었는데 피해자분은 수치심에 신고할 때 차마 성폭행당한 부분은 말하지 못하였고, '야간주거침입절도' 사건으로 신고되어 저희 팀에서 맡아 수사를 하게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추적 단서를 지우면서 도주하던 그놈을 쫒으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범인을 체포하였을 때 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면서 흥분하여 범인이 지금 어디 있냐고 물었고, 저는 ○○교도소에 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드라마 시그널의 차수현 형사를 닮은 그 여형사는 현재 모 지방청 광수대(2021년 광역수사대는 '강력범죄수사대'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에서 국민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드라마 '시그널'속 차수현 형사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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