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형 형사 Nov 03. 2023

"니가 뭐가 될지 어떻게 알고, 형은 너 믿는다."


제31화 “니가 뭐가 될지 어떻게 알고, 형은 너 믿는다”
(청소년 범죄사건)

아파트 현관문 앞에 있는 택배박스가 계속 도난당한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다른 회사의 택배기사님께서도 경찰서를 직접 찾아오셔서 현관문 앞에 놓아둔 박스가 연이어 없어지고 있으시다며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경찰서에 접수된 택배 도난 사건을 모두 취합해보니, 한 달 사이에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만 도난 사건이 10건이 넘었습니다.

저는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우선 아파트 CCTV를 돌려봤는데, 용의자는 의외로 쉽사리 찾을 수 있었고, CCTV의 화면으로 봤을 때 중학생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앳된 남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의류... 그러니까 옷만 없어지고 다른 물건은 뜯어진 택배박스와 함께 대부분 계단에 버려져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탐문을 통해 용의자가 어느 중학교에 다니는지를 확인하였고, 그 학교를 찾아가 학생지도부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형사들이 학교에 찾아온 자초지종을 들으신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에게 곧바로 전화를 하셨는데, 두 분의 대화를 들어보니 얼마 전에 학생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 학생의 어머님은 아들을 데리고 경찰서에 출석을 하셨고, 조사실에서 어머님이 옆에 계신 채로 학생의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학생은 왜 택배를 훔쳤냐는 제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조사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눈물을 훔치시면서 아들이 사춘기라 그런 것 같으시다며 피해는 변상하겠으니, 아들의 처분을 좋게 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력팀이라고 범인이 청소년인 사건을 전혀 수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피의자가 미성년자인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내내 무거운 마음은... 그것이 아무리 직업이더라도 쉽사리 떨칠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 물건을 훔치거나 범죄를 저지를 때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손가정이나 불량한 친구와의 어울리거나, 그런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각종 통계로 수치하기도 하지만,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부모님이, 선생님이, 경찰관이 타이르는 듯이 말하는 것은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지금 제 앞에 앉아서 저에게 조사를 받고 있는 이 학생의 나이 때에는 그랬으니까요...

제가 먼저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그러니?", 학생은 저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하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조사가 들어가기 전에 저에게 남편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먼저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제가 아들에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그러냐고 묻는 질문에 다시 참았던 눈문을 흘리셨습니다.

학교에서 부장 선생님께서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갑자기 가세가 기울고, 그에 덮쳐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공부를 곧 잘하던 제자가 지금은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저에게 "이런 상황에 아무리 형사님이라도 힘들지 않겠습니까"라면서 당신이 잘 타일러 볼 테니, 저에게 사건을 없던 것처럼 덮어주실 수 있냐고 물었었습니다.

저는 학생에게, 그리고 옆에 앉아 계시는 어머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은 너한테 화 안내, 화낼 필요도 없고, 형도 니 나이 때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모든 사람들이 짜증 났거든, 그래도 그 사람들 때문에 지금 다행히도 깡패가 안되고 이렇게 형사라도 하고 있는거야, 니가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 어떻게 알아", "형이 너한테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니가 한 번 들어보겠다고 생각해 봐야지 형말이 들리는 거지, 더 이상은 얘기하지 않을게"

조사가 끝나고 경찰서 현관에서 어머님과 학생을 돌려보내며, 어머님에게 아들 일로 경찰서까지 오셔서 고생하셨고 조심히 귀가하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갑자기 "갖고 싶은 옷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랬어요, 그래서 택배를 뜯어서 옷만 가져갔어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래, 알았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지"라고 하니, 학생은 "예"라고 짧게 답하였고, 저는 "형이 너 믿을게"하고 헤어졌습니다.

학생의 사건을 두고 당연히 소년사건으로 처리를 하여야 하겠지만, 저는 계속 고심을 했습니다.

소년사건으로 검찰에 사건을 보내지 않고 즉결심판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즉결심판은 형사절차에서 즉시 해방된다는 이점이 있는 처리절차인데, 제 나름의 생각으로는 소년사건보다 나중에 기록이 아예 남지 않는 즉결심판을 받는 게 학생에게 좋을 거 같아서 였습니다.

즉결심판은 노상방뇨처럼 정말 경미한 범죄만을 청구할 수가 있는데, 선배님들도 아무리 미성년자이지만 절도 건수가 10건이 넘는 사건을 즉결심판으로 처리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님에게 전화를 하여 잘 안 될지도 모르지만, 아드님의 사건을 즉결심판으로 처리를 해보겠다고, 만약에 판사님께서 기각을 하시면 다시 소년사건으로 처리된다고 알려드렸습니다.

학생에 대한 절도 사건을 처리하면서, 담당 형사로써 객관적 사실만을 써야 하는 수사보고서에 감정을 섞으면 안 됨을 알고 있었지만,

'학생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힘든 학생의 상황을 고려할 때 기록이 남지 않는 즉결심판으로 처리함이 학생에게는 더욱 유리할 것으로 판단됩니다"라는 보고서를 달아 즉결심판을 청구하였고, 판사님께서 ‘형 면제’ 판결로 제 청구를 인용해 주셨습니다.

아들과 함께 즉결심판 법정에서 나오신 어머님께서는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형사님, 판사님께서 형을 면제해 주셨어요. 방황하던 아들이 다시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하네요. 앞으로도 아들에게 형님처럼 가끔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으시죠"라고 하셔서, 저는 "그럼요, 나이 차가 많이 나는(25살 차이) 형이지만, ○○이가 잘 된다면야 저는 오케이입니다"

...

사무실에서 열심히 보고서를 치고 있을 때 반가운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동생 : "형님, 도봉경찰서 지나가는 길인데 경찰서에 계세요?"

나 : "어 경찰서야"

동생 : "그럼, 잠시 들리겠습니다. 커피 한잔 주세요"

나 : "그래 와라, 우리경찰서에도 카페 생겼어^^"

2009년 강력팀에 들어와 제게 주어진 첫 절도 사건인 동시에 담당 형사와 첫 피의자로 만난 동생이었습니다.

사건을 처리할 당시에 제가 29살이었고, 동생이 15살이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사건이 끝난 후에도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할 때, 군에 입대하고 제대할 때,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에 취직할 때, 그리고 지금도,

가끔 만나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_______

제 책은 브런치(brunch)에서 무료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etective-kim11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국민 #경찰 #보이스피싱 #범죄예방
#강력팀 #형사 #소통 #코로나물러가라
#대한민국 #강력형사 #1프로 #형사수첩
#제31화 #니가뭐가될지 #어떻게알고 #형은너믿는다 #청소년 #범죄사건

매거진의 이전글 제30화 탐정동아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