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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입니다 Nov 13. 2023

독립출판 전 샘플북 만들어야 하는 이유

작가이자 편집자 그리고 북디자인까지 혼자하는 독립출판이니까

8일이 걸려 샘플북이 인쇄되었다. 인쇄소는 프린피아를 이용했다.

책이 나왔으니 먼저 셀프 평론을 하겠다.


아쉬운 점부터 쓴다면

1. 부족한 퇴고

사진과 디자인에 시간을 많이 쓰고 글을 퇴고 못 한 게 아쉽다. 퇴고는 책 만드는 과정 중에 가장 하기 싫은 작업이지만 안 했더니 못 봐줄 글이 나왔다.


2. 사진 화질

cmyk로 인쇄하면 탁하다는 말을 너무 믿었다. 채도 조절이 잘 된 것도 있지만 실내에서 찍은 사진에 채도를 높이니 인위적으로 표현됐다. 자연광, 야경 사진 다 괜찮은데 실내 사진은 다시 수정해야겠다.


3. 페이지 넘버 선택 안 함

사진엽서 느낌이 나길 바라면서 책처럼 안 보이려고 페이지 넘버를 안 넣었다. 그렇지만 내 책에 글이 사진보다 많다는 점이 인쇄하니까 극명하게 보인다. 페이지가 없어도 목차를 찾으려면 색인을 표시해야 했다. 읽고 싶은 부분을 찾기 위해 책 전체를 다시 읽어야 하는 건 너무 불편한 방식이었다. 마르지엘라가 자신이 만든 옷에 아무 택을 안 붙이고 싶어 했지만 카피가 가능해서 최소한의 표시만 넣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가치관을 실용성이 이겼다.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 페이지 넘버를 표시해야겠다.

(좌)페이지는 넣어야겠다. 유난히 깨진 감자튀김 사진(우)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샘플북을 보고 만족감이 더 컸던 이유가 있다.


1. 책이 원했던 바로 그 크기다.  

110*160으로 만들었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일반적으로 보는 책에 비하면 작다고 생각되는데 바로 내가 원했던 바다.


2. 폰트 선택 대만족

이번에 본문에 KBIZ한마음명조를 사용했다. 너무 멋 부리지 않았지만 쓰던 명조보다는 개성이 느껴진다.


3. 단권 인쇄라 선명한 사진 인쇄

대량인쇄를 하면 복사기 느낌으로 선명도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한 권만 인쇄하니까 상태가 매우 좋다.


우연히 찍은 사진이 표지가 되고, 그냥 Hmart에서 찍은 사과사진이 여행 중 베스트다.


이번에 수정하고  바로 100권 인쇄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샘플을 한번 더 만들려고 한다. 감리를 본다고 해도 전체 페이지를 다 보는 게 아니라서 샘플북 없이 바로 인쇄한다는 건 내가 만든 pdf파일이 아무 오류가 없을 가능성에 배팅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항상 오탈자가 따라붙는 마음이 앞서는 성향이라 비용이 들어도 샘플북을 받고 수정 사항이 없을 때 대량인쇄를 하기로 했다.


샘플북을 만들면 나처럼 같은 사진이 앞뒤로 연속해서 들어갔을 때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군’하고 얼른 수정할 수 있다. 인쇄본 파일 마감할 때 연이은 밤샘으로 제정신이 아니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멀쩡하지 않았나 보다. 마지막으로 인디자인에서 pdf 내보내기 전 페이지 순서 바꾸다가 앞페이지가 밀렸다. 하지만 난 그걸 눈치채지 못했고 밀린 채로 아주 잘 나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나의 작품이었다.


사진도 더 넣고 글도 다듬어야 해서 출간 인쇄까지 8주를  생각했는데 그 8주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다. 마감하고 8일 동안은 무감동 상태도 지내다가 이제 2주가 지나서 이것저것 하기 시작한다. 출간을 미룰수록 더 하기 싫어진다고 하니까 어서 해야겠다. 나는 8주도 빡빡하게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기수 분들은 한분 빼고 다 1월 안으로 출간하신다고 했다. 미국 여행이 올해 1월에 끝났는데 1년이 지나기 전에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벌써 입고 서점에 책 들고 방문할 생각하고 있다. 갈 때 뭐라도 사들고 가는 게 좋겠지? 아직 서른 책방 이외에 입고 문의도 안 넣었지만 상상할 때가 제일 재밌으니까)


혼자 하면 마감을 못 할 것 같아서 브런치북에 연재로 1주일에 2편씩 올리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3일에 1편을 써야 하는데 타고난 글쟁이가 아닌 나로는 숨 막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에게 관대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마감일 정할 때는 아주 너그럽다.-


이번에 퇴고도 제대로 안 한 글을 마감하면서 진짜로 마지막 2주간은 혼자 만든 지옥 같은 세상에 살았다. 매일 글은 써야겠고 안 나오고 내가 봐도 뻔한 소리만 하고 있고 이게 과제 보고서인지 출간하려는 책에 담긴 내용인지. 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60% 만족하면 된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절대 내 글에 100% 만족이란 없을 것 같다.


손에 샘플북이라도 들려있으니 이거 조금만 고치면 그럴듯한 책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인디자인 안에 살면서 계속 수정만 했으면 목표가 점점 흐려졌을 것 같다.

가제본도 좋지만 더 책 느낌 나는 샘플북 1부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수정할 힘이 생긴다.

100페이지 책에 2만 원이 들었는데 이 정도면 투자할만하다.


서른책방에서 수업 듣길 잘했다. 마지막 날에 주신 고양이 작가님의 쿼카마카롱



한적한 책방 가는 길에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문을 열면 내가 수원에 있는 건지 미국에 있는지 모를 만큼 낭만적인 공간으로 들어갔다.

밤에 서른책방에 가보신 분들은 이 말을 다 이해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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