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떡볶이집에서
인쇄소에 샘플책 만들기까지 원고에는 14일이 걸렸다. 하루에 한편씩만 쓰면 완벽한 탈고 계획이었는데 그렇게는 안 됐다.
글만 쓰던 14일이 지나고 처음으로 솔을 만났다.
2주 만에 만난 솔에게 서로 근황 이야기하다가 나는 이번에 독립출판 원고를 썼다고 했다. 솔은 너무 잘했다고 말했다. 내가 3년 전에 그림책 작가 꿈을 가지기 시작하고 2년 전부터 그림과 글을 배우러 다닌 걸 아는 솔은 나에게
- 계속 글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림책은 아니라도 결국 글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 이거 독립출판은 하려고만 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 아무나라고 말 안 하면 좋겠다. 나는 기록하겠다는 마음이 없어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글을 계속 쓰는 건 특별한 마음이다.
솔과 나는 떡볶이를 먹으며 이야기했는데 떡볶이보다 솔의 말이 더 맵싸했다.
나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말로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너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 이건 쉬운 일이지, 특별한 게 아니야 이 정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받은 자격으로 나를 소개하다가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키보드와 색연필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나는 재능 없음을 마주하며 살았다. 벌써 그렇게 살게 된 지 2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한 공부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겠다고 맨땅에 나온 나를 보고 무언가 도전하고 싶지만 시작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대리만족이었다. 그렇게 사는 게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막상 그림책 작가를 꿈꾸던 시간 동안 그림이 쉬운 사람들을 찾아가면 나는 뭐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글로 말하는 이들을 찾아가면 나는 “취미로 하는 거죠?”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취미생이었다.
뭐 하나 답이 되지 않는 시기를 지나며 전업 작가를 포기하기도 했다. 작가와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아 재빨리 습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여행산문으로 독립출판을 하게 됐다. 그림책 만들 때도 독립출판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기성출판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때는 그림책 작가만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출판사에 투고해서 인세를 받고 사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내 그림책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기성출판이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면 여기서 독립출판하는 건 내가 투고해도 아무도 내 그림책을 만들어주지 않으니까 그 이유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그게 뭐 어때서?” 되묻겠지만 그때는 하고 싶지 않았다. 2년 전 나는 참 편협한 생각을 하고 살았다.
접었다고 생각한 출판에 대한 갈망을 다시 보게 한 독립출판으로 나는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틈을 보고 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곳이 있나 살핀다. 9월부터 독립서적 판매하는 세 곳을 가봤는데 갈 때마다 내 책도 여기 놓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사 온다. 다른 이의 글을 가장 잘 읽는 건 글 쓰려는 사람일 것 같다.
나에게는 독립출판이 길을 열어 준 기특한 방법이라 나처럼 목적지는 있으나 방향을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쓰는 동안 머리카락이 많이 빠질 수는 있다. 그래도 글은 가장 온전하게 나를 점검하는 도구의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
나는 독립출판을 서른책방에서 시작했지만 이번에 알게 된 전환출판사에서도 빈칸놀이터 서점에서 아주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고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도 지속적으로 글 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가고자 하는 길에 직접 쓴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