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 알지?
타자 급수를 준비하며 종이를 넣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자판을 눌렸어. 한 줄을 다 치고 나면 손으로 쭉~ 밀어서 처음으로 맞추면 종이도 다음 줄로 찍 넘어갔지.
자칫 오타라도 나면 처음부터 다시 쳐야 했고,
그렇게 종이 위엔 잉크의 흔적보다 한숨의 흔적이 더 깊게 남았지.
그러다 전동타자기가 등장했어.
이야, 그건 혁신 그 자체였어.
손가락 힘도 덜 들고, 무엇보다 백스페이스로 글씨를 지울 수 있었다는 것.(하얀 지움 테이프가 같이 들어있었거든.)
지운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기능이었는지,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 거야.
그리고 어느 날 ‘메모리’라는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정보를 ‘기억’ 하지 않고 ‘저장’한다는 개념.
머리 대신 기계에, 마음 대신 칩에.
우리는 점점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되었지.
수첩에 빼곡히 적어두었던 전화번호들,
애인 번호는 하트로, 친구 번호는 별표로 표시하던 시절.
그 수첩은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했지.
하지만 어느 순간 ‘단축다이얼’이 생기더니,
이제는 그냥 “○○에게 전화해 줘” 하면 되는 세상이 되었어.
문제는 그다음이야.
누군가 내 번호를 물어봤을 때,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거지.
집 전화번호는 더더욱.
수십 번 눌렀던 번호인데,
이젠 손가락만 기억하고 머리는 기억하지 않아.
‘2번’이 엄마, ‘3번’이 아빠였는데—
이젠 단축번호가 없어지면서
사람마저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편해졌지.
정말 편해졌어.
그런데 가끔은 묘하게 허전해.
내 기억 속 자리에 기계가 앉아 있는 것 같달까.
기억은 점점 외부로 나가고,
우린 점점 더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