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Prologue
스무 살 끝자락, 홀로 유럽으로 떠났다. 정확한 정보 없이, 뚜렷한 계획 없이 그저 나 하나만 챙겨 떠났다.
그곳에서 마주한 생생함, 여유로움, 따뜻함, 분주함, 외로움에서 나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질감을 만질 수 있었다. 풍부한 그 깊이가 다분히 놀라웠다. 우린 모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싱그러운 푸른 잎을, 또 누군가는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구름을 닮았다. 자신만의 결을 지닌 사람은 그 중심에 단단함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의 물살에 휘청이지 않고, 부단히 걸어가는 힘을.
단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여행이었다.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마법은 역시 없었다. 하지만 분명 아름답지 않은 순간인데도 좋았고, 보통의 상황인데도 유난스럽게 감동을 느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사랑에 빠지듯 그렇게 맥락 없이 잠겨있던 마음을 풀어헤쳤다. ‘그냥’ 좋으니까. 처음 걷는 길과 신선한 하늘빛은 자꾸만 새로운 마음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이 주는 기대와 달리,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때도, 지금도 의도 없는 서투름과 맑은 불안을 안고 흔들리고 있다.
일상을 소소히 즐기고 조금씩 배워가며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 달라진 것은 없지만, 천천히 영글어가겠거니 하고 담담하게 걸어간다. 앞으로도 투박한 날들을 정성스레 다듬어 가고 싶다. 그 안에 조용히 물들어 있을 반짝임을 찾고, 다채로운 매일을 엮어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