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탄 무궁화호는 마치 시간의 길이를 늘린 듯 느릿하게 느껴졌다. 무료함을 달래줄 간식 같은 음악이 필요했는데 대충 고르기엔 이 작은 기차 여행이 소중했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 위주로 둘러보다가 한 앨범을 통째로 재생했다. 최근 자주 들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은 걸 보니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듣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기차에 머무는 소음을 가리기 위해 헤드폰의 볼륨을 일정 이상으로 높이고, 조금씩 흔들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책을 꺼냈다. 몇 해 전에 읽기를 멈추고 책장 구석에 꽂아둔 문학책인데 요즘 다시 꺼내어 읽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헷갈리는 이름을 구분하며 읽는 것은 여간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넘긴 페이지가 어느 정도 겹쳐질 때쯤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적한 들판, 손톱만 한 자동차들, 그리고 가끔씩 나타나는 강줄기까지. 투명한 창으로 흘러가는 조용한 풍경은 생각을 가벼이 덜어주었다. 소박하거나 화려한 정거장이 품은 서로 다른 분위기와 기차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하나둘씩 이 기차에 걸쳐졌다.
영락없이 찾아오는 졸음에 어중간하게 졸기를 반복할 즈음,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피곤해질 참이었는데 다행이라 생각하며 선반 위에 올려둔 짐을 서둘러 챙겨 출구로 나왔다. 전날 확인했던 비 소식과는 달리 물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지만 흐린 하늘에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승강장에는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이 무심히 얽혀 분주하면서도 침착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한 템포가 지나가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길로 흩어져 다시금 조용해질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