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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닙 Apr 10. 2022

한낮의 여로

        

         포플러 나무는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방법을 안다. 그저 다가오는 풍부함을 마주하며 꾸밈없는 왈츠를 추는 것이다. 봄의 끝자락과 초여름이 맞물려 빚어낸 연둣빛. 아무런 욕심 없는 그 생생한 빛이 투명한 창 너머로 넘실거린다. 소박한 창이 난 방 안에는 가볍고 질긴 고요가 떠다닌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출발해 여러 갈래로 난 생각들은 꽃봉오리를 움 틔울 준비를 한다. 신선한 레몬을 닮은 색일지, 라즈베리에 한껏 물든 색일지 가늠되지 않는 여린 잎들을 상상하며 또 하나의 눅눅한 마음의 짐을 빈 그릇에 덜어낸다. 눈부신 해의 광채가 방 안 가득 쏟아져 내린다. 다만 미처 빛이 닿지 못한 좁다란 구석은 아직까지 밤의 곡선 위에 있고 캄캄한 어둠만 빛낼 뿐이다. 나른히 흘러가는 구름은 부드러운 물결을 그려내고 평범했던 마룻바닥은 드넓은 바다가 되어 일렁인다.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튀어 올라 날쌔게 공기를 가르고 다시 깊은 물속으로 빠져든다. 생생하고 힘찬 움직임, 더불어 끝없는 유영.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미세한 소금기가 묻어있지만 무른 복숭아의 그것처럼 달큰함도 배어있다. 더 이상 이곳 시간의 흐름은 덧없고, 오직 마음의 흐름만이 영원히 머무는 한낮의 여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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