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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닙 Jun 23. 2022

여름의 감각

나의 휴학 편지 3호




03


금요일 오후는 더운 열기가 피어나는 햇빛이 쨍한 하루였다. 점심을 먹고서 간단히 작업할 거리를 챙겨 스타벅스로 향했다. 평소처럼 앱을 켜서 메뉴를 둘러보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담았다. 결제를 하려는 순간, 문득 내 닉네임이 눈에 밟혔다. 그냥 평범하다면 평범한 내 이름으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이유 없이 바꾸고 싶었다. 수정 버튼을 눌러 두 글자를 지워내고, 그곳에 고민 없이 새로운 두 글자를 입력했다. 바로, '여름'. 썸머다.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그것도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태어날 때부터 맞이한 열기에 어쩌면 익숙한 감이 있어야 할 거 같기도 한데, 나는 여름의 좋은 구석을 그다지 알지 못했다. 땀이 쉽게 나고 더위를 잘 타는 체질 때문인지 더운 것보다는 차라리 추운 것을 좋아한다. 두툼한 옷을 한가득 껴입으면 되니까. 그래서 코끝이 시리도록 시원한 공기를 품은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올봄에만 해도 이제 곧 무더운 여름이 온다는 사실이 살짝 겁이 났다. 보송보송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그 더움을 어쩌랴. 


그렇지만 올여름은 새로운 마음으로 반겨주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끝내주게 즐겨서 나의 생생한 여름으로 만들어 보자고.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 눈이 부시도록 쨍쨍한 햇볕, 통통하고 달콤한 수박, 속까지 차가워지는 여름밤의 맥주, 등이 파인 민소매, 시원한 물로 순식간에 끝내는 샤워 ... 이 모든 여름의 질감을 마음껏 느낄 준비가 되었다. 아마 여름이 다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올 무렵, 나에게는 이제껏 몰랐던 여름의 감각이 하나둘씩 배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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