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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겨울섬 Nov 10. 2020

우연을 넘어 인연이 되기를

르퓌길 프롤로그 3.  Le Puy-en-Velay

2013년 3월 6일 - 7일





 호텔 주인아저씨가 알려 준 빨래방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호텔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골목에 'LAV' FLASH'라고 쓰인 분홍색 간판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프랑스어를 몰라도 하얀 거품에 퐁당 뛰어드는 초록색 글자를 보고 빨래방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목도리에 둘둘 만 빨랫감을 한 아름 안고 문을 열었더니, 빈 바구니를 하나씩 두고 도란도란 나누던 한 할머니와 두 할아버지의 담소가 한순간 얼음이 되어 멈췄다. 이어서 동그랗게 뜬 여섯 개의 눈에는 선의를 담은 호기심이 차올랐다.

 "봉주르."

 이방인의 어설픈 아침 인사가 침묵을 깨는 주문인 듯, 그들에게서도 다정한 인사가 흘러나왔다.

 "Bonjour!"

  빈 세탁기를 골라 빨랫감을 쏟아 넣었다. 세제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또 낯선 글자들이 빼곡히 적힌 버튼 중 어느 걸 눌러야 하는지 모든 게 막막한 이방인은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세탁기와 세제 자판기와 건조기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자, 이 녀석들의 침묵은 어떻게 깨지?

 그때 반짝이던 여섯 개의 눈 가운데 키가 큰 할아버지가 사뿐사뿐 다가와, 가장 먼저 세제 자판기를 깨웠다. 동전을 한 닢 삼킨 세제 자판기는 플라스틱 컵에 한 주먹의 가루를 쏟아냈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가죽점퍼를 입은 요정이 되어 우아한 손짓으로 가장자리에 흐른 가루까지 싹싹 모아 세탁기의 세제 칸에 부었다. 나의 임무는 때맞춰 기계들에 동전을 넣는 것. 할아버지는 물 온도를 중간으로 맞추며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로 무언가 말했다. 하지만 두 주먹을 가슴으로 모아 꼭 쥐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는 할아버지를 보면 누구라도 그 뜻을 모를 수 없었으리라.

 "이보다 뜨거우면 옷이 다 이~~~ 렇게 줄어들고 말 거란다."

  잠자는 마법에서 풀린 것처럼 경쾌하게 돌아가는 세탁기를 사이에 두고, 흰머리 세 요정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구시가지 골목의 작은 빨래방에서는 내가 프랑스어를 모르고 그들이 한국어를 모르는 게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목소리와 눈빛, 몸짓으로 실로 마법처럼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세 대의 세탁기가 차례로 알람을 울리자, 흰머리 세 요정도 옷가지를 바구니에 챙겨 차례차례 빨래방을 떠났다.

 "안녕, 좋은 여행되렴."

 따스한 인사도 잊지 않은 채.










 흰머리 요정들과 머물렀던 빨래방의 다음 장면은 상점가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행렬, 그 속에서 세탁기가 다 돌아가길 어슬렁거리며 기다리는 현실의 한가운데였다.

 빨래가 열심히 돌아가는 동안 산책 삼아 큰길을 따라 걷다가 위엄 있는 법원과 구청, 즐비한 상점으로 둘러싸인 Breuil 광장까지 갔다. 그곳에는 지난밤 생쟉 호텔 앞 작은 광장에서 광야를 헤매듯 떠돌 때만 해도 생각지 못한 르퓌의 번화한 이면이 펼쳐졌다.

 폭포수 같은 물이 삼단으로 콸콸 쏟아지는 광장의 분수대를 넋 놓고 구경하는 내게 누군가 손을 흔들며 광장을 가로질렀다. 어젯밤 내게는 천국의 열쇠를 쥔 천사나 다름없던 생쟉 호텔 주인아저씨였다.

 "저길 보렴."

 아저씨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 보니, 골목 사이로 멀리 솟은 바위산과 그 꼭대기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대한 촛대 같은 붉은 성모자상이 보였다. 아저씨는 뜻밖의 장관에 감동하는 나를 보고 뿌듯한 얼굴로 껄껄껄 웃더니, 다시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현실인 듯하다가 다시 몇 걸음만 옮기면 환상으로 통하는 입구를 마주하게 되니, 여행이란 내 영혼의 처마에 풍경 하나를 달아 놓는 일과 같다. 옅은 미풍에도 차라랑, 차라랑, 맑은 풍경 소리로 마음을 울리는.









 환상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잠시 미뤄두고 빨래방으로 돌아와 일을 마친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 건조기를 두 번 돌려 바짝 말렸다(다음 날 아침 파리로 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빨래가 저절로 마르길 기대할 수 없었다). 약국에 들러 목에 생긴 발진에 바르는 연고를 사고(줄을 서며 프랑스어로 연고가 뭘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내 차례가 되어 나도 모르게 목을 가리키며 외쳤다.'연-고-!' 알아듣고 약을 준 게 신기하다), 마트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샐러드와 요구르트를 골랐다(초콜릿 맛 요구르트라니, 안 먹어볼 수 없었지). 호텔 근처 빵집에서 머랭 쿠키도 사고 싶었지만, 이미 양 손에 한 짐을 들고 있던 터라 오후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갔을 땐 이미 그 작은 창문에 셔터를 내린 뒤였다.)

 방으로 돌아가 옷을 차곡차곡 개서 캐리어에 넣고, 창가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붉은 지붕 위로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은 아무래도 내일 르퓌를 떠날 때까지 맑은 얼굴을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행의 모든 순간이 꿈속을 걷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면, 여정이 끝나고 현실에 발을 디딘 나는 아마도 너무 오래 휘청이겠지. 그래서 나의 여행과 그곳의 일상이 겹쳐지는 때가 오면, 잠시 여행을 미뤄두고 꿈속을 가로지르는 일상의 평균대 위에서 중심을 잡아본다. 그렇게 발끝을 보며 특별할 것 없는 걸음을 내딛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곤 갑자기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감동에 정처 없이 뭉클해지고 만다.

 밀린 빨래를 해결하는 일, 약사에게 아픈 곳을 보여주는 일, 끼닛거리를 고르는 일, 빵집 진열대를 보며 군침을 삼키는 일, TV를 틀어놓고 배를 채우는 일...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일들이 이토록 애틋할 수 있는 걸까. 단지 여행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나에게 여행의 가치는 일상의 애틋함을 익혀가는 순간들로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들은 시나브로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연습이 된다. 여행에서 일상의 평균대 위를 따라 걸은 것처럼, 일상 속에서도 환상으로 통하는 입구를 지나치지 않고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삶의 처마 끝에서 들려오는 풍경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오후 두 시나 되어서야 호텔을 나섰다. 다음 날 아침에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니, 르퓌 여행은 만 하루도 남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시가지를 걷는 발걸음은 느긋하기만 했다. 걸음걸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는, 다짐보다도 믿음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에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된 돌이 촘촘히 놓인 오르막길, 따뜻한 색으로 시간의 덧을 입은 집들이 줄지어 선 좁은 골목, 시장바구니를 팔에 끼고 볼에 입을 맞추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무 덧문 사이로 드문드문 흘러나와 싸늘한 공기를 경쾌하게 물들이는 목소리들.

 이따금 새가 지저귀는 숲에서 팔 벌려 길을 내어주는 사려 깊은 고목 사이를 거닐듯 마음이 끌리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르퓌 대성당 (Cathedrale Notre-Dame-du-Puy)은 숲의 가장 커다랗고 오래된 아름드리나무처럼 긴 오르막길 끝, 136개의 계단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검은 화산석으로 지어진 걸까, 아니면 시간이 흐르며 산화한 걸까, 전쟁이나 화재의 흔적일까...

 계단을 오르며 성당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면에 층층이 아치를 그리고 있는 검은 벽돌에 대한 생각도 층층이 계단을 이루었다.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고단한 세월을 지내온 성당의 빛바랜 흔적들은 수많은 삶의 굴곡을 넘어선 어머니의 주름 같았다. 그래서 어딘가 애달픈 한편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품고 있는 듯도 했다.

 긴 오르막을 지나서 가파른 계단 끝에 오르니, 평소 걷기 말고는 운동이라고는 하지 않아서인지 숨이 가빠왔다. 끝인 줄 알았던 계단은 파사드의 아치 아래 깊은 어둠 속으로 계속 이어졌다. 가쁜 숨을 고르고 그 어둠에 안기듯 대성당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겉보기보다 꽤 넓고 깊숙한 성당 내부에는 차분한 어둠이 감돌았고, 곳곳에 켜진 낮은 조도의 조명들과 초 봉헌대에서 타닥거리며 타고 있는 몇 개의 촛불이 유서 깊은 보물과 성상, 성화를 비추고 있었다.

 루이 9세가 봉헌했다는 중앙 제대의 검은 성모자상, 한 여인이 돌 위에 올라가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자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회복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널따란 돌, 많은 이들의 기도로 발아래 불을 밝힌 초 봉헌대 앞 성 야고보 상.

 하나같이 손길이 많이 닿아 빛나지는 않지만 모난 곳 없이 둥글고, 경외하며 올려다보기보다 마주 보고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너그러움을 띠고 있었다.












 빛이 든 자리와 빛이 닿지 않는 그늘진 곳까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거닐다가 가로로 길게 걸린 액자 앞에 섰다. 성 루이 왕이 선물한 검은 성모자상을 성당에 안치하는 행렬을 담은 그림이었다. 경건하게 검은 성모자상 앞뒤로 길게 늘어선 행렬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700년 전 중세시대가 배경인 그림 속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딘지 익살스러우면서도 지혜를 품고 있는 듯한 선한 눈을 가진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행렬 속에서 붉은 주교 복을 걸치고 금색 지팡이를 든 엄숙한 복장의 그는 고개를 돌려 그림 밖의 나와 눈을 맞추며 침묵의 말을 걸어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나올 수밖에 없었던 나의 그늘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 눈빛을 마주 보던 나의 입가에도 그림 속 그처럼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늑한 동굴 같은 지하 소성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책장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성가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가 빼곡했지만 손때 묻은 페이지마다 많은 이의 기도가 머물고 있었다. 그때 어느 한 페이지에도 나의 기도가 더해졌겠지. 고요함 속에 마음을 툭 꺼내놓으니, 모르는 사이 마음에 한 겹 한 겹 내려앉은 평화가 문득 벅차게 실감이 나 눈물이 났다. 꺼내놓은 마음 어디에도 날 괴롭히던 먹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에는 꼭 미사를 바치고 싶다는 바람을 남겨두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흐릿한 조명에 의지해 정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정문이 가까워올수록 계단이 점점 밝아지더니 파사드의 아치 너머 르퓌가 가득 펼쳐졌다. 마치 내 안에 겹겹이 쌓인 평화처럼 황홀하고 따스한 빛깔이었다.

 '르퓌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한다지.......'

 저 멀리 아득한 산자락을 보며 1,500여 km 너머로 첫발을 딛는 순례자의 벅찬 마음을 어렴풋이 상상해보다가, 금세 발아래 계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단 아래에는 아름다운 르퓌가 펼쳐져 있고, 1,500km 너머 산티아고는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였으니까.

 5년 뒤 배낭에 조가비를 매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득한 산자락을 보며 첫발을 딛게 되리라는 걸,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모퉁이를 여러 번 지나자 아득했던 산자락의 전경이 훤히 드러나는 마을 끝자락에 가까워졌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언덕과 들꽃처럼 피어있는 붉은 지붕들... 오랫동안 고대하며 사진으로 익혀온 풍경은 나를 이리로 부른 화산암 위 성당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하게 했다.

  오래 기다려온 절정은 고요하고 평온한 적막 속에 드러났다. 소리 없이 밀려온 파도가 철썩, 해변에 닿아 부서지며 발을 적셔오는 것처럼 눈 앞에 펼쳐진 꿈같은 풍경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모니터 너머의 사진이 아니다.

 바라며 그리던 공상 속 한 장면도 아니다.

 평원에 우뚝 솟은 뾰족한 화산 바위 위 생 미셸 데귈레 성당 ( Eglise Saint Michel d'Aiguilhe)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다.

  같은 공기 안에, 무겁게 늘어진 흐린 하늘을 함께 머리 위에 이고 있다.






 바위 아래 매표소에서 아름다운 르퓌 지역을 굽어보는 세 개의 성소에 다 오를 수 있는 통합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생 미셸 데귈레 성당과 코르네유 바위의 붉은 성모자상, 그리고 옆 마을(Espaly - Saint - Marcel)에 있는 성 요셉 성당의 거대한 성 요셉과 아기 예수상. 잠시 고민하다가 빠듯하게 남아있는 르퓌에서의 시간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보낼 순 없었기에 생 미셸 데귈레 성당 입장권만 샀다.

 바위를 깎아 만든 돌계단은 꽤 가파른 데다 모서리가 닳아있어서 천천히 한 발씩 공들여 꼭대기에 다가가게 했다. 정상까지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에 비해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과연 아찔한 높이였다.

 고상하게 빛이 바랜 성당 외벽은 반듯하게 차례로 면을 이루는 검은 화산암과 햇빛을 머금은 듯한 옅은 주홍색 벽이 직선과 둥근 아치로 어우러졌고, 어느 한 부분은 정말로 바위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바위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정문 파사드 너머로 은은한 성가가 퍼져 나왔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노랫소리를 길잡이 삼아 그 어둠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라는 표시가 으레 써놓은 게 아니구나,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성전 안은 천여 년 거친 세월을 아무 보호막 없이 그대로 끌어안은 듯했다. 정말 카메라 플래시 한 방이면 파스스 스러져 먼지가 될 것처럼 색과 형상, 모두가 희미했다.

 기둥과 천장, 제대를 빼곡히 채운 벽화들은 눈, 코, 입이 모두 지워져 표정을 알 수 없었는데, 그 역시 천년 세월이 지나간 자리였다. 하지만 그 낡고 닳음은 여기를 초라하게 만들지 못했다. 정성스레 빚은 그릇을 단단하게 구워내기 위해 불을 품었다가 소명을 다하고 적막에 잠긴 가마 속처럼, 낡고 닳은 자리들엔 어떤 흠 없는 보석에서도 볼 수 없는 숭고함이 배어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사진에서는 볼 수 없던 그 낡고 닳은 흔적들에 말할 수 없이 깊은 애틋함을 느꼈다.







 950년 스페인으로 순례를 떠난 르퓌의 주교 고데스칼크는 국경을 넘어 산티아고로 향한 첫 순례자로 기록되었다. 지금과 달리 죽음을 부르는 질병과 강도들의 습격이 난무했던 당시의 산티아고 길 순례를 마친 그가 르퓌로 들어오기까지는 무려 1여 년이 걸렸다. 이 벼랑 같은 바위 위 성당은 그가 스페인에서 돌아와 순례를 마친 기쁨과 감사를 담아 지은 찬미의 성전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치 백석 시인의 시구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성당은 보이지 않는 별들의 들판으로 향하는 길 위의 순례자를 떠올리게 한다.

 하늘이 어떤 날씨를 내리든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소명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 점점 낡아가는 행색과 온갖 상처에도 숭고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발자취로 운명처럼 누군가를 길로 이끄는 사람들.

 서로 닮아있는 순례자와 바람벽 위 성당은 이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아름답다.








 성당 벽을 따라 놓인 긴 나무 의자엔 어린 학생들이 쪼르륵 앉아,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핏 불이 꺼진 줄 알았던 가마는 여전히 불씨를 품고 정성스레 그릇을 굽고 있었다. 나도 여기 들어오기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서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스러지지 않는 가마에서 작은 불씨 하나를 마음에 옮겨 심었다.

 성당 밖으로 나와 저 아래 낮게 깔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어디로 걸어 볼까... 이렇게 높이 올라와 봤으니 이제 르퓌의 가장 낮은 자리에도 머물러야지.  

바위 꼭대기에서 본 르퓌의 전경은 아름다운 한 폭 지도 같아서 마음이 끌리는 자리를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생 미셸 데귈레 성당에서 내려와 도로를 건너 약국과 꽃집이 있는 건물을 지나면, 오래된 돌다리가 나온다. 보흔느 강을 가로지르는 그 다리 건너엔 르퓌 시내와 구시가지에서 왠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작은 마을이 있다. 바로 거기에 르퓌의 가장 낮은 자리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강물이 돌에 부딪혀 흐르는 맑은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건넜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물기 섞인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다리 건너 대형마트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작은 집들이 나무를 담장 삼아 나란히 길을 만들고 있었다. 붉은 지붕을 얹은 이층 집들은 모두 비슷한 크기와 모양을 가졌지만, 아기자기한 장식품과 마당의 꾸밈새로 사는 사람들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냈다.

 미끄럼틀과 그네를 둔 마당은 아이가 있는 집일 테고, 풀이 무성한 옆집은 주인이 무척 바쁘거나 도통 마당 꾸미기엔 관심이 없는 사람 같다. 담장에 동그랗게 구멍을 낸 집은 아마도 산책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함께 살겠지.

 열려있는 마당을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글이 없는 예쁜 그림책을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이었다. 글 자리의 여백을 상상으로 즐겁게 채워가며 넘기던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강 건너 생 미셸 데귈레 성당과 르퓌 구시가지가 거대한 붉은 돔처럼 웅장하게 펼쳐졌다.

 가장 낮고 조용한 자리라서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파노라마였다.








 강가 잔디밭 낡은 돌 벤치에 앉아 시린 손을 비벼가며 수첩에 메모를 했다. 물결을 타고 노니는 한 무리의 청둥오리, 다리 아래에 오리 밥을 뿌려주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마을 사람, 할머니 손을 잡고 지나가다가 수줍게 "봉수아!" 저녁 인사를 건네는 남자아이, 강가에 심어진 나무 사이로 신비롭게 솟아오른 르퓌의 전경.

 흩날리는 글씨로 눈앞의 파노라마를 시시콜콜한 단어들로 묘사했지만, 한구석에 꾸깃꾸깃 접혀있다가 지금은 온통 마음속에 가득 펼쳐진 이 평화를 설명할 말은 찾지 못했다. 누군가는 시시하다고 할 수도 있는 가장 낮고 조용한 자리에서 이 낯선 마을과 우연을 넘어 인연이 되길 청하며 마음속 평화를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내내 하늘이 무겁더니 기어코 비가 후드득 쏟아졌다.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아서 목도리로 대충 머리까지 감싸고 다리를 건너며 보았던 대형마트로 뛰었다. 작은 병에 든 로제 와인과 치즈를 하나 사서 주머니에 넣고 친애하는 생쟉 호텔 31호를 향해 다시 종종걸음을 했다. 르퓌에서의 마지막 밤을 조촐하게나마 기념하기 위한 준비물이었다.    















 르퓌를 떠나는 날 이른 아침, 눈을 뜨니 기다란 창문으로 비친 햇살이 침대 이불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책상엔 다 못 쓴 채 펼쳐진 일기장과 짐을 챙겨 세워둔 캐리어가 보였다.

 어제 냉장고 대신 테라스에 와인과 치즈를 꺼내놓고 어둠이 내린 구시가지 산책을 다녀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뒤 침대에 앉아, 예쁘고 만만한 분홍색 와인을 잔에 따라 몇 모금 마시고, "뭐가 이렇게 독해..."라고 중얼거린 게 마지막 기억.

 일기도 쓰고 사진도 보면서 우아하게 와인을 곁들이며 마지막 밤을 보내려 했는데...... 한 뼘짜리 작은 병에 든 로제 와인을 반도 못 마시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아침이라니. 떠나는 날에야 이렇게 파랗게 웃는 하늘이라니.

 그래도 나의 가는 길에 이렇게 밝게 손 흔드는 르퓌의 하늘이 꼭 또 보자는 인사 같아서, 그리고 다음엔 꼭 이렇게 파란 얼굴로 맞아주겠다는 약속 같아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창문에 기대어 붉은 지붕 위에 사뿐 앉은 르퓌의 푸른 하늘을 마주 보며 나도 약속을 건넸다.

 이번에 못 오른 붉은 성모자 상에 가보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올 거라고, 다음에는 꼭 이렇게 평온하고 맑은 마음으로 찾아올 테니 부디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체크아웃을 하며 주인아저씨에게 방에서부터 번역기를 돌려 프랑스어로 적은 작별 인사를 보여주었다. 아저씨는 내 어설픈 메시지를 나지막하게 읽더니 껄껄껄 웃으며 남은 여행에 축복을 빌어주었다. 문밖까지 배웅 나온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틀 전, 온통 어둠에 잠겨 막막하던 광장과 길목에 햇살이 쨍쨍 쏟아졌다.









 르퓌에서 출발한 열차는 파리로 가는 환승역인 생떼띠엔느로 천천히 나아갔다. 이번에도 빈자리가 많았지만, 문가에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아서 지나가는 풍경에 눈을 맞췄다. 밤의 색을 입으며 신비롭게 빛나던 산세와 강물은 환한 햇살 아래에선 신비로움을 거두고 편안히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물결대로 흐르는 일, 그리고 존재하는 일.

 이 여정을 마치면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가 소임을 다해야겠지. 삶의 결대로 흘러가는 일, 그리고 나로서 존재하는 일.

 여정 중에 르퓌를 만나서 조금은 다르게 흘러가고, 또 조금은 다르게 존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바람결에 춤추는 꽃밭처럼 마음을 간질였다. 오 년 전 여행에서 기차 창밖을 보며 더 큰 사람이 되겠다고 그렸던 결연한 기대와는 다른 결과 흐름으로.

 달리던 기차가 중간역에 멈춰 서자, 한 할머니가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내 곁에 섰다. 예쁜 꽃무늬 두건을 머리에 쓴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와 캐리어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그날의 눈부신 아침 햇살 같은 음성을 건넸다.

 "Bon voyage!"

 할머니가 내리고 기차가 다시 출발한 지 한참이 지나서도, 좋은 여행되라는 한마디 인사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그 짙은 여운 속에서 마음을 간질이는 기대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여정을 끝내고 돌아간 일상에서 나는 어떻게 흐르고 존재하고 싶은지를.

 



 느려도 좋으니,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잔잔히 흘러가야지.

 작아도 좋으니, 지혜가 깊은 가마에 머물렀던 그릇처럼 단단히 존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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