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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겨울섬 Dec 11. 2020

재회, 이끌림의 기록

르퓌길 프롤로그 4. Le Puy-en-Velay


2015년 4월 5일 - 6일



  2년 뒤 나는 다시 르퓌행 열차에 올랐다. 처음과 달리 열차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날은 2주의 연휴가 시작되는 부활 대축일이어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리옹역은 북새통을 이루었는데, 르퓌행 열차가 서는 승강장만은 홀로 한산했다.  

 


 오래 간직해온 글에 뼈를 세우고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어 16장면의 우주를 만드느라 치열하게 흘러간 지난 2년이었다. 그렇게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어 2015년 3월에 이탈리아 볼로냐로 가서 도서전에 참여한 수많은 출판사 부스의 문을 두드렸지만, 도서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두드린 것은 문이 아니라 높디높은 벽이란 걸 깨달아야 했다. 나의 첫 그림책은 공식적으로 실패작이 되었다. 하지만 한없이 벅차고 매 순간 고민하고 수없이 넘어지던 순간이 이 한 권의 우주를 반짝이며 수놓았기에 나의 우주는 초라할 줄 몰랐다.






 도서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와 스위스, 프랑스를 여행하며 르퓌에 점점 가까워지다가, 하늘이 더할 나위 없이 푸른 4월 첫 주 일요일, 우연이 아닌 인연이 되기 위한 재회를 위해 르퓌행 기차에 올랐다.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희망 없이 걸어왔던 길을 계속 나아갈 계기가 된 책 한 권을 품고 르퓌로 가는 나의 마음도 그날 하늘처럼 푸르렀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너머 멀리 그리웠던 실루엣이 드러났다. 햇빛을 등지고 그림자에 잠긴 채 희미하게 솟아오른 대성당의 둥근 돔과 뾰족한 첨탑, 코르네유 산의 붉은 성모자상, 화산 바위 꼭대기 생 미셸 데귈레 성당과 차례차례 눈을 맞추며 수없이 그려왔던 재회의 인사를 조용히 읊조려 보았다.

  '오랜만이야, 약속을 지키러 왔어.'

 종점에 도착했다는 우아한 목소리의 안내방송, 익숙한 승강장, 눈에 익은 기차역 앞 풍경....... 르퓌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푸른 물빛처럼 펼쳐진 하늘, 그리고 먹구름 대신 우주를 품고 다시 그 자리에 선, 나뿐이었다. 실로 빛나는 재회였다.

 







 아파트형 호텔과 다인실을 함께 운영하는 마을 외곽 숙소( Appart' Hotel Des Capucins SARL)에 짐을 풀었다. 도서전 준비를 하느라 더 가벼워진 주머니 덕분에 내 자리는 호텔이 아닌 마당 한쪽에 있는 별채 4인실이었는데 이층 침대 두 개만 덜렁 놓여있는 반지하 방에도 낭만적인 구석은 있었다. 정원으로 난 창의 덧문을 열면 눈높이에 수선화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피어있는 화단이 보이고 그 나머지 공간은 푸른 하늘로 채워졌다. 마치 풀잎을 지붕 삼아 사는 작은 생물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덧문을 열고 보는 아침의 장면과 방으로 돌아와 따뜻하게 씻고 침대에 눕기 전 덧문을 닫으며 보는 밤의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4월의 르퓌는 화창한 봄날로 눈에 담기고, 한겨울 얼음 계곡에 부는 칼바람처럼 피부에 와 닿았다. 기차역에서 내려 몇 걸음 만에 길바닥에 캐리어를 눕히고 외투를 꺼내서 하나 더 껴입었을 정도로.

 그 이상한 차림 그대로 구시가지로 향했다. 찬 공기가 네다섯 겹의 옷을 뚫고 살을 엘 기세로 파고들어도,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하나 변함없는 르퓌의 여기저기를 거니느라 꽁꽁 언 얼굴에는 내내 웃음이 머물렀다. 길목마다 내게 주는 재회 선물처럼 온갖 봄꽃들이 4월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고, 나는 그 재회의 꽃다발을 두 손 대신 마음으로 가득 받아 들었다.

 길을 기억하는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Breuil 광장과 빨래방 골목을 지나, 2년 전 르퓌를 처음 마주한 생쟉 호텔이 있는 광장으로 갔다. 호텔 로비 유리창 너머로 주인아저씨 모습이 아른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걸기 쑥스러워서 먼발치에서 눈길로 재회의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나요?'

 그리고 걸음이 이끄는 길 위의 모든 풍경에도 같은 인사를 건넸다. 길모퉁이의 작은 성당들, 처음 유스호스텔을 찾아 힘겹게 오르던 오르막길, 구시가지 파스텔 빛 벽과 아기자기한 문고리, 외진 계단 앞 해시계로 벽을 꾸민 예쁜 집... 아름다운 르퓌를 이루는 소소한 장면들과 인사를 나누며 걷다 보니 대성당이 우뚝 서 있는 길목이었다. 등 뒤로 찬 바람이 물살처럼 밀려왔다. 옷깃을 여미고 첫 계단에 발을 디뎠다.

 








 성당은 켤 수 있는 조명은 전부 켜놓았는지 처음 왔을 때보다 한참이나 밝았고, 많은 사람들이 제대를 향해 앉아있었다. 세 명의 신부님은 한쪽에서 나지막하게 노래를 맞춰보고, 복사 아이는 지각을 했는지 바쁘게 뛰어와 제대 초를 밝혔다. 곧 미사가 시작되려는 분위기였다.

 전날 리옹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부활 성야미사에 참례하긴 했지만 다른 곳도 아닌 르퓌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부활 대축일 미사가 막 시작하려 하다니, 이번 여정 최고의 행운이라 여기며 사람들 틈에 들어가 제대를 향해 앉았다.

 성가와 함께 열 명 가까이 되는 사제의 입장으로 엄숙하게 미사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어 전례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의식이 진행될수록 지금 참례하고 있는 게 미사가 아니라는 걸 알 수는 있었다. 가톨릭의 미사통상문은 세계 공통이라 어느 나라 언어로 진행되어도 똑같은 기도문을 나의 언어로 함께 바칠 수 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그 의식은 성당 안의 모두가 행렬을 이루어 대성당 가장 뒤에 있는 커다랗고 투박한 돌로 지어진 성수함의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으며 끝을 맺었다. 의식 내내 성당을 울리던 세 신부님의 알렐루야는 눈물겹게 아름다웠고, 여러 사람이 맞잡아 공들여 뚜껑을 연 오래된 성수함의 고요한 수면에 손가락을 찍어 조용한 파동을 그릴 때는 때마침 우연히 이 성스러운 순간을 누리고 있다는 기쁨에 감격스러웠다.

 


 이 의식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 건 3년이 훌쩍 지난 후였다. 그건 교구의 모든 사제가 주교좌성당에 모여 함께 성수를 축성하고 각자의 본당으로 담아가는 성수 축복식이라 했다. 나의 지난 여행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본당 신부님께 그 의식의 이름과 뜻을 듣자마자 마음 깊숙이 닫혀있던 기억의 뚜껑이 스르르 열려 작은 파동이 생겼다. 그 둥근 파동은 점점 넓게 퍼져나가 그 오후 다섯 시 대성당의 소리와 빛과 촉감들을 되살아나게 했다. 나는 또 새삼스레 뭉클해졌다. 묻어놓았던 그리움의 깊이가 실감이 나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참여한 성수 축복식이 끝나고 성당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검은 성모자상을 성당으로 안치하는 행렬을 그린 그림 앞에 섰다. 그림 밖 나와 눈을 맞추던 그림 속 그의 온화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가 미소를 띤 입가와 이해의 바다를 품은 눈빛으로 재회의 인사를 건네 왔다.

 '잘 지냈나요?'

 나도 침묵으로 물음을 던졌다.

 '나를 기억하나요?'

 그의 미소에 옅은 장난기가 더해지며 답을 했다.

 몇백 년 같은 자리를 지킨 나에게 2년은 찰나와도 같아서,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힘겹지 않았다고.

 말없이 오가는 오랜 재회의 인사. 그 환상 속에서 깊은 안도를 느꼈다. 두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렇게 꿈으로 가득 찬 마음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꿈은 내가 지닌 최고의 가치였기에.






 


 성당에서 나와 어느덧 땅거미가 진 구시가지 여기저기를 바쁘게 눈을 돌리며 식당을 찾았다. 식당이 아니어도 좋으니, 빵집이라도... 아니, 과자 한 봉지여도 좋으니 마트라도 한 군데만 열려있기를. 시린 손을 비벼가며 바랐지만 거룩한 부활 대축일을 맞이한 르퓌의 모든 상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디라도 불 켜진 가게를 찾아 헤매다가 숙소 근처 로터리에서 붉은 등을 켠 중국 레스토랑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메뉴판을 보고 유일하게 국물이 있는 메뉴와 칭다오 한 병을 시켰다. 한국이었으면 펄펄 끓어 나오는 짬뽕을 시켰겠지만, 뜨거운 것으로 꽁꽁 언 몸을 녹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친절한 중국인 주인이 맥주를 따라주고 곧이어 치킨 누들 수프가 나왔다. 김이 펄펄 나는 걸 먹어야 몸이 풀리는 한국인에겐 한참 미지근한 온도였다.

 미지근한 수프를 한 그릇 먹고 온기 없는 방으로 들어가 라디에이터를 가장 높은 온도로 틀었다. 다행히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몸을 눕혔다.

 다시 르퓌에서 보내는 밤. 어디서 자든, 무얼 먹든 아무래도 다 좋은 밤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날, 얇은 시트를 애벌레처럼 둘둘 감고 잔뜩 웅크린 채로 눈을 떴다. 다른 세 개의 침상은 모두 비어 있었다. 딱 세 사람만큼의 온기가 부족했던 걸까. 라디에이터를 가장 세게 틀어놓고도 종종 밀려오는 찬 기운에 뒤척이느라 잠을 설쳤다. 어깨를 비비며 일어나 몸에 묻어있는 한기를 털어내며 창문을 열었다. 풀잎을 지붕 삼아 사는 작은 생물처럼 올려다본 하늘은 오늘도 푸르렀다.

 조식 시간에 맞춰 별채에서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호텔 건물로 갔다. 외투 두 벌을 껴입고 습관처럼 몸을 움츠리고 몇 걸음 떨어진 호텔까지 가는데 공기가 어제와 사뭇 달랐다. 문 연 식당을 찾느라 칼날 같은 추위에 벌벌 떨던 게 바로 전날 저녁 일인데, 그날 밤 어둠과 함께 추위도 물러갔는지 포근한 기운이 눈꺼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상냥한 직원이 테이블마다 서빙해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몸과 마음이 점점 생생하게 맑아졌다. 식당에는 다른 객들도 도란도란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등산복 차림이었다. 르퓌에 유명한 등산 코스라도 있나 보지, 생각하며 셀프바에 가서 요구르트와 시리얼을 담아왔다.

 누군가를 중요한 길로 이끄는 표지는 이렇게 평범한 순간 가운데 태연하게 자리 잡아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순례자들에게 둘러싸여 무심히 시리얼을 먹는 순간처럼.






 


 하루 만에 계절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르퓌의 온 구석구석 포근한 공기가 꽉 차 있었다. 어제 내내 움츠리고 걷느라 등이 다 뻐근했는데 오늘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도 구름 위를 걷듯 가뿐하기만 했다.

 오른쪽으로 르퓌의 붉은 지붕들이 저 아래 꽃밭처럼 펼쳐져 보이는 길. 드디어 기차 창문 너머 가장 먼저 눈을 맞춰 준 붉은 성모자상인 코르네유 바위 위 Statue de Notre-Dame de France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고 멀지만, 숨이 가빠오는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황홀하게 했다.

 크림 전쟁에 쓰인 러시아 군대의 대포 213개를 녹여 만들었다는 성모자상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무기로 쓰인 미움과 증오의 크기도 이토록 커다랬을까. 이젠 그 미움의 무게가 평화의 상징으로 빚어져 르퓌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이와 눈을 맞추고 있다. 처음 이 커다란 철제 성상을 보고 등대를 떠올린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막막한 바다 한가운데 같던 깜깜한 밤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 헤매는 이방인과 빨래를 돌리고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여행자에게도, 르퓌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존재. 어디서나 눈에 띄어 어둠 속에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혼자가 아니라고 믿게 해주는 이.

 성모상 가장 낮은 곳의 문으로 들어가 발아래 아찔한 높이에 진땀을 흘리며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올라 꼭대기 조그만 창으로 먼 전경을 들여다보았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빼면 르퓌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는 시선이리라.

 잔잔하게 물결치는 붉은 지붕의 파도 너머 르퓌를 둘러싼 산자락이 겹쳐 보였다. 그 너머에서부터 불어온 듯한 햇볕 머금은 기분 좋은 바람이 땀을 식혔다. 이 바람이 불어오는 저 너머 어딘가, 그곳으로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마음을 조금씩 흔들었다.






 

 

 부활 대축일 다음날이라 여전히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빵집과 작은 마트와 샌드위치 체인점 등 몇몇 가게는 열려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서브웨이 샌드위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데다가 주문 방법이 어려워 쭈뼛거리고 있었더니, abc 가르치듯 친절하게 알려준 주인아저씨 덕분에 크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

 배를 채우고 예쁜 카페에서 케이크와 라테 한 잔으로 달콤한 쉼을 가졌다. 지난번 일찍 문을 닫았던 빵집이 열려있는 걸 보고 커다란 머랭 쿠키도 샀다. 얼마나 큰지, 르퓌를 떠나 파리에서 열흘을 보내는 동안에도 다 먹지 못했다. 작은 마트도 문을 언제 닫을지 몰라 저녁에 숙소에서 먹을 맥주 한 캔과 올리브도 미리 챙겼다. 어느덧 손에는 먹을거리가 주렁주렁 들렸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다녔더니 아직도 한낮이었다. 발걸음이 가는 대로 아직 가보지 않은 신시가지로 향했다. 여행자의 구미를 당길 만한 색감이나, 오래된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공동주택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그래도 그 집 사이로 줄을 그으며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이건 두 번째 만남이니까, 어쩌면 르퓌의 더 깊은 속내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으로.







 목적 없이 여기저기 햇빛과 그림자를 번갈아 밟으며 산책을 하다가 커다란 호수가 있는 앙리 비네 정원(Jardin Henri Vinay)으로 들어갔다. 이 날 르퓌 사람들은 다 여기 모여있기라도 했는지, 한산한 구시가지와 달리 정원의 햇빛이 닿는 모든 자리에 사람들이 햇빛 샤워를 하고 있었다. 나도 볕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 몸을 기대고 재잘재잘 오가는 얘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잔잔하고 한가롭게 흘러가는 소리가 르퓌가 곁에 앉아 편하게 늘어놓는 수다 같아서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와 한결 깊어진 오후의 거리를 걸었다. 이미 몇 번씩 눈과 마음이 닿았던 길, 담장, 나무, 성당과 집, 창문... 그리고 내게 가장 큰 평화를 안겨 준 강 건너 가장 낮은 자리. 처음과 같은 자리에 앉아 푸른 하늘을 느리게 유영하는 구름을 하염없이 보다가 더 하염없이 눈물이 솟았다.

 2년 전, 내내 흐리고 비가 내리던 르퓌는 내가 떠나는 순간에야 맑은 하늘을 보여주었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호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향해 꼭 다시 오리라 약속하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었다. 그리고 다시 오는 날의 하늘은 꼭 이렇기를 소망했다.

 그때 그 바람처럼 나는 이렇게 푸른 하늘 아래 온통 꽃천지인 르퓌에 있다. 늘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했던 나의 삶도 조용히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나의 친애하는 르퓌가 이 재회를 통해 말하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다 깨달은 천금보다 귀한 위로의 언어에 그만 눈물이 흘렀다.

 









 나를 르퓌길로 이끄는 표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침에 순례자들에게 둘러싸여 아침을 먹었던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2년 전 깜깜한 르퓌를 헤맬 때 문을 열어 안식처가 되어준 호텔 이름이 생쟉이었음이 그 암시의 시작이었을까...? (생쟉은 산티아고를 뜻하는 성 야고보의 프랑스어 표기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 모니터 너머로 르퓌를 처음 알게 된 그 순간이 시작일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어 산티아고에 닿은 첫 순례자 고데스칼크가 지어 올린 바위 꼭대기의 생 미셸 데귈레 성당에 매혹된 그때.

  오래된 다리를 다시 건너 구시가지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대성당에 한 번 더 들렀다. 먼 길 떠나기 전 바치는 순례자들의 기도가 성 야고보 성상 앞의 많은 촛불로 타고 있었다. 애타게 몸을 태우는 초를 보며 언젠가 한 번은 떠나볼 수도 있겠다고 여기던,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에 대한 기약 없는 열망이 조금씩 커져감을 느꼈다. 그만큼 미리 할 필요 없는 걱정도 너무 또렷하게 떠올랐다. 무거운 배낭, 지독한 길치인 나, 불편한 잠자리, 부족한 언어, 낯가림, 아무 진리도 깨닫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문 앞까지 와서 노크를 하던 순례길은 다시 막연한 곳으로 뒷걸음쳤다.

 '그래, 언제가 한 번은, 내가 좀 더 크고 넓고 용감해지는 그 언젠가."

 순례자들이 첫걸음을 뗀다는 성당 계단을 내려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지나쳤던 길인데, 꼭 소리 내어 나를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길바닥에 동그란 금속 표식이 처음으로 눈에 띄었다.

 조가비 문양 아래 적힌 글씨, ' Saint Jacques de Compostelle'.

 1,500여 km 너머 있는 산티아고를 가리키는 표지였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안갯속으로 멀어진 줄 알았던 순례길은 여전히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도 운명이고 표지였을까. 길 위에 띄엄띄엄 놓인 금속 표식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머무는 숙소가 나왔다. 숙소 옆 육교를 지나면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거기가 바로 르퓌길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목이었다. 그제야 호텔 식당에서 등산복 차림으로 아침을 먹던 사람들이 순례자였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손에 든 짐을 방에 내려놓고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순례길로 나섰다.

 세찬 바람이 길을 따라 펼쳐진 초원 위에 파도 같은 결을 그렸다.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처럼. 마지막 빛을 쏟아내는 저녁해가 그 어떤 조명보다 찬란하게 나를 비추었다.

 등 뒤로 르퓌가 까마득히 멀어졌을 때, 초원 너머로 산자락에 폭 안겨있는 옆 마을 Espaly-Saint-Marcel이 드러났다. 내가 세 번째로 르퓌에 오게 되면 가기로 한 성 요셉 상이 작은 마을 꼭대기에 또 다른 등대처럼 서 있었다. 당장 초원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건 르퓌에 다시 올 나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고 산등성이 평원이 펼쳐졌다. 내가 르퓌에 그토록 이끌렸던 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주 짧게나마 순례길 위에 있는 동안 공허했던 마음은 차오르고, 복잡하게 어질러있던 자리는 다른 사유들을 맞이하기 위해 비워진 기분이었다. 벅차도록 감격스러우면서도 더없이 가벼웠다. 이 길을 더 소중하게 맞이하도록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멀리 르퓌를 향해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이 사랑 깊은 풍경에 또다시 약속을 건넸다.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정성스레 삶을 살며 사랑하기를 소망하며.







 


 언젠가 저 평원을 넘어 수많은 밤을 지나, 한없이 비우고 또 채우며 별이 흐르는 들판으로 가야지.

 언젠가, 더는 막연하지 않게 또렷이 떠오르는 언젠가,

 순례자가 되기 위해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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