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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an 21. 2017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드보통이 전하는, 실감나는 결혼생활의 리얼리티


알랭드 보통의 오랜만의 신작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다소 평범한 단어들로 조합되어 별달리 매력이 느껴지지않는 제목,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책의 내용보다는 제목의 강력한 이끌림으로 책을 집어든 적이 많았던 나로서는, 이 책이 평소 좋아하던 알랭드보통의 신작이라는 점 외에는 크게 끌리는 점이 없었다. 그래서 사놓고도 꽤 오랫동안 책

꽂이에서 잠들어있다가 최근에야 읽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이렇게 평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것이 바로,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애 후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 짧고도 낭만적인 연애를 한 후, 결혼을 한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가 들려주는 낭만적인 연애 그리고 그 결실인 결혼.

이 책은 아주 짧은 연애를 3, 그 후의 일상이 되는 결혼을 7 정도의 비율로 써놓은 책이다. 물론 비중의 7을 차지하는 것이 낭만적 연애가 아닌 그 후의 일상(결혼생활)인 만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후의 일상이다.


•연애는 짧고 결혼은 길다


아내 커스틴과 남편 라비는, 누구나가 그렇듯 짜릿하고 가슴뛰는 연애를 한 후 결혼생활에 돌입한다.

결혼이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끝없이반복되는 일상이다. 결혼 후의 로맨스는 짧고 결혼생활에는 집 대출금, 아이의 양육문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직장생활, 경제적 난관 등등의 많은 반복적인 일상들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연애를 할 때에는 결혼이라는 목표점이 있었지만 결혼 후에는 그것마저 없다. 이 사람과 한 평생을 함께하겠노라고 선언하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그야말로 끝없는 생활이 이어지는 것이다.


커스틴과 라비에게도 예외란 없었다. 둘은 같은 업계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남편 라비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아내 커스틴은 언제나 똑부러지고 강인하며 이성적인 성격을 지녔다. 이에 비해 라비는 감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소심한 성격이다.

둘의 상반되는 이 성격은 연애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부부가 된 이후 매순간 마주하는 일상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최고의 건축가가 되고싶었지만 현실에서는 고용불안을 겪으며 별볼일 없는 건축물을 짓는 신세인 라비는 아내에게 위로를 받고싶지만 자격지심 탓에 마음에도 없는 성질을 부리기 일쑤다.

어쩌다 아내 커스틴이 다른 친구부부의 경제적 여유를 부러워하면, 막말을 퍼부으며 아내를 상처입히기 일쑤다. 경제적 풍요로움을 주고싶은 가장이지만 따라주지 않는 현실이 짜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반면 아내 커스틴은, 어린시절부터 축적된 강인해야한다는 강박 탓에 늘 현실적이고 냉정한 태도만을 취한다. 이 모습이 남편에게 위로가 아닌 거리감을 주는데도 쉽게 고치지 못한다. 현실적인 걱정과 조언에 남편 라비는 냉정한 여자라며 비난을 한다.


남편은 아내를 무정하고 차가운 여자로,

아내는 남편을 신경질적인 남자로 느낀다.

연애관계에서 느낀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서로의 모습에 부부는 하루가 다르게 상처를 받는다.


급기야 부부의 감정적 골로 인한 상처를 끌어안은 라비는,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출장 중에 만난 한 매력적인 여성과 하룻밤 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곧 그 일은 충동적인 일이었으며 자신은 결혼생활을 깨고싶지 않다고 깨닫는 라비다. 낯선이와 관계를 나누고싶었던 육체적 욕망의 근원에, 위로받고 치유받고 싶었던 자아가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결혼의 맨얼굴을 받아들이기


라비는 부정의 사실을 커스틴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커스틴에게 상처를 주고싶지 않기 때문이며, 그렇게  힘들고 지친다고 생각했던 결혼의 울타리를 사실은 지키고싶기 때문이다. 두 아이와 결혼생활이 사실은 라비를 살게하는 원동력이며 그 지루하고 평범한 울타리가 라비가 가진 전부임을 알게된 것이다.


두 부부는 서로의 결혼생활을 개선해나가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게된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부부는, 서로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었던 자신의 비뚤어진 태도 속 진짜 속이야기를 제3자인 심리상담가에게는 속시원히 털어놓으면서, 몰랐던 서로의 내면을 마주하게된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소리를 지르고 성질을 부리기 일쑤였던 라비의 내면에는 유약하고 위로받고 싶은 자아가 있었으며, 강인하고 냉철한 아내의 내면에도 남편을 걱정하고 사랑받고 싶은 자아가 있다는 것을. 서로의 내면에 있는 약하고 어린 자아의 모습을 알게되자, 그 동안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배우자의 까칠한 태도를 이해하게된다.


그들은 어렸을 때 부당한 실망을 극복해야했고 그 결과 감정의 노출이 어색하기만 한 대단히 방어적인 성인이 되었다. 라비는 불안해하면서 공격하고, 커스틴은 회피하면서 퇴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몹시 필요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입 밖에 새어 나올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낭만적인 면에서 가장 필요한 선물, 즉 그들 자신의 취약점에 대한 안내서를 주고받지 못한다.

(259~260p)


제3자를 통한 일련의 치료를 통해 부부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지만, 그들은 서로의 태도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되고 삶의 동반자로서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그들이 영위해온 가정의 울타리에는 지치고 힘든 일상만큼이나 대단한 산물들, 지난한 시간이 빚어낸 추억들이 있었음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싸워온 배우자를, 낭만적 사랑의 감정에 기초한 감정을 초월해, 남은시간을 현명히 함께 살아낼 위대한 존재로서 바라보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결혼한 지는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좀 늦게 라비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277p)


이제 라비는 낭만주의 개념들이 재난을 낳는다는 것을 안다. 그의 준비된 마음은 완전히 다른 기준들에 기초한 결과다. 그가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무엇보다 완벽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278p)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283p)


그렇다.

결혼이라는 것은 연애에서 넘어가는 직전의 순간에는 달콤하고 벅찬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후에 벌어지는 길고 반복적인 일상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남녀의 만남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 결혼생활이 아닌 연애이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의 정점을 찍은 후의 진짜 이야기는 아무래도 큰 매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치만 인생의 7할을 차지하는 것이 결혼생활인 만큼 알랭드보통의 이런 솔직한 글이 인생에 있어서는 더욱 큰 참고서가 된다. 결코 달콤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리얼 러브스토리 말이다.


이런 울적하지만 동시에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알랭드보통에게 감사하다. 그는 결혼이 사랑에 취한 일상이 아니며, 그럼 어떻게 헤쳐나가야할 지 상세히 들려주는 친절한 인생선배같다.


그리고 비단 이 이야기는 결혼생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지루해진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해서 만만하고 막 대하게
되는 주변의 우리 가족들, 친구들 말이다.

인생은 결국 새롭고 설레는 관계보다는, 익숙해진 이들을 오래 끌고가는 것이 중점이 된다. 그 지루한 관계를 감사히 여기고 유지할 수 있게끔 해주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옮긴이가 쓴 말을 적어본다.

(관계의)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더 완전해진다.

진정한 짝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맞춰가는 것이라는 것. 이 책에서 얻은 한 줄 평이다.





2017 매우주관적인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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