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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an 09. 2018

영화 <1987>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격동의 그 해. 1987.

영화 <1987>

1987년. 그 해에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가 태어난 1990년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직선제에 의해 뽑힌 대통령을 보고 자랐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까지. 내가 겪어온 세상은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기본으로 깔려있는 세상이었다. 불과 내가 태어나기 3년 전, 세상은 격동의 상태였다는데 말이다.


영화의 제목은 단순히 특정 연도를 가리키는 네 자리 숫자일 뿐이지만, 그 숫자가 주는 의미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그 해를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기억하기 때문일 거다. 그 묵직한 숫자. 최루탄 연기가 마를 날이 없고, 대학생들은 매일같이 시위를 하고, 전경들은 그것을 진압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 시간, 1987년도. 그 시대를 표현하기에 영화의 제목은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영화는 1987년도 한 해에 일어났던 일들을 다룬다. 1987년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시위를 하던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 군이 경찰 조사를 받던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경찰에 의한 고문치사라는 것이 밝혀지자 시민들의 반응은 격렬해졌고, 그런 시민의 반응을 잠재우기 위해 전두환 정부는 호헌조치를 선언한다.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논의를 아예 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학생들과 국민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지고, 그 과정에서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박종철 군에 이어 이한열 군이 사망하자 국민들의 민주화를 향한 외침은 최절정에 이르고, 결국 국민들의 반발을 제압할 수 없었던 전두환은 호헌조치를 철폐한다.


기승전결이 매우 뚜렷한 이 이야기가 픽션이 아니라 고작 30년 전의 우리나라 현대사라는 사실에 문득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이 굵은 줄거리 말고도 역사 속에 더 많은 사실과 인물들이 존재했음을 영화가 낱낱이 전달해준다. 그것이 이 영화에 가장 고마운 점이었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이 존재했는지, '역알못'인 내게는 역사책의 몇 줄 텍스트만으로는 부족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 해의 상황을 자세히는 몰랐으므로.



경찰조사를 받던 중 고문으로 사망한 '故박종철 열사'

영화는 1987년 그 해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군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를 다니던 대학생인 그는 그릇된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용감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는 정부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조사'라는 명목 아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이 비상식적인 사건은 영화 초반부에서 강력히 어필하듯 은폐의 위기에 있었다. 국민의 정당한 시위를 탄압하는 것도 모자라 데려다 고문을 하다가 죽이기까지 했는데, 국가가 나서서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대의 비상식적인 분위기로 미루어 이 사건은 충분히 은폐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화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에 의해 이 비통하고 억울한 사건은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다. 하정우가 연기한 최환 검사, 이희준이 연기한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 유해진이 연기한 한재동 교도관, 설경구가 연기한 재야인사 김정남 등이 모두 실존인물로 그 사건의 은폐를 막은 인물들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 ─정부를 향한 비판과 시위의 자유로움,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거와 같은 당연한 권리─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이희준 분), 최환 검사(하정우 분)

최환 검사는 남영동에서 대학생을 고문해 죽인 경찰들이 부검 없이 시체를 화장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막은 인물이다. 본능적으로 고문치사임을 확신했다는 그는 집요하게 경찰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윤상삼 기자는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박종철을 검안한 의사를 끈질기게 쫓아 증언을 받아냈다. 한재동 교도관은 교도소에 수감된 기자와 교도소 밖의 신부를 연결해, 그들의 서신을 통해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도왔다. 모두 몰랐던 인물들이다. 교과서 속 몇 줄의 텍스트로만 접했을 뿐인 역사 속에, 그 역사를 만든 여러 인물들이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정말 뭉클했다. 이렇게 많은 위인들이 민주화를 위해 힘썼다는 것이, 그리고 그들을 잘 모른 채 이 시대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져 왔다. 어쩌하여 그들은, 그 무서운 탄압의 세상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지키려는 행동을 한 걸까.


내가 그 시대를 살아왔더라면, 나는 무장한 경찰들과 최루탄이 날리는 곳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어차피 바뀌지 않을 세상이라며 이불속에서 떨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겁쟁이인 나는 후자를 택했을 것 같다. 영화 속 실존인물들에 대한 경외심에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것은, 아마도 그때 민주화를 위해 용기를 내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마음이, 나 같은 사람은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아주 무겁고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30대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손으로 원하는 대통령을 두 번이나 뽑았으며, 원하면 언제든 삿대질을 하며 대통령과 정치인의 과오를 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야당과 여당을 비판하는 뉴스가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경찰의 폭력 수사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2018년 이곳은 이미 국민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기 때문에.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영위하는 것들이지만 1987과 같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권리를, 30년 전에는 당연하게 누리지 못했는데. 그때 그 시절의 민주투사들이 싸우고 쟁취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나에게 이런 권리가 있을까.


그런 질문 속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영화는 마음이 불편한 영화다. 누군가의 희생과 그를 탄압하는 폭력으로 얼룩졌던 시대를 딱딱한 텍스트가 아닌 생생한 영상으로 접하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 가슴이 아파오는 일이었다. 이제 고작 스물한 살인 대학생이 물고문으로 죽어가고,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고, 국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정부의 하수꾼이 되어 죄 없는 국민을 잡아다 고문을 하는 것을 보는 데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을까. 하물며 그것이 내 나라 역사의 일부라는데.


연출이 어떠했든, 연기가 어떠했든, 역사와 진실을 담아낸 영화에는 무한대의 지지를 보내고 싶어 진다. 나를 비롯한 역알못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으므로. 때론 역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고증적 영화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가장 친근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알려주니까 말이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윤상삼 기자와 최환 검사를 알았을까.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故이한열 열사'

감독 역시도 87년도에 존재했던 모든 역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담아낸 것 같다. 그만큼 영화는 흡입력이 대단했다. 심지어 이한열을 연기한 배우 강동원의 모습에서는 '미남배우' 강동원이 느껴지지 않았다. 광주사태를 알리려 노력하고 호헌철폐를 외치던 유난히 키가 컸던 스물한 살의 용감한 대학생만이 보였을 뿐.


언제나 역사 속에서는 희생을 하는 쪽과, 그 희생을 통해 누리는 세대가 있는 것 같다. 문득 다시 한번 87년을 살아온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냈었던 나의 인생 선배들에게, 그리고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물려준 고 박종철, 이한열 열사에게 경외를 표한다.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그 거룩한 인생과 신념을. 1987년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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