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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25. 2020

도서 <방구석 미술관> 리뷰

딱딱한 미술사를 친근하게 풀어주는 마술 같은 책

책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지음.


미술사. 사(史)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모든 개념은 어려워지죠. 저는 모든 영역에서 이론적인 접근을 참 어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영 흡수를 못하죠. 세계사도, 국사도, 미술사도 그런 식으로 접근하려면 늘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늘 그런 딱딱한 역사들을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어 풀어내는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처형을 당했다'는 딱딱한 말보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생 자체를 들여다보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달까요. 흐름의 관점에서가 아닌, 개인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와 닿는 느낌이었죠.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표현주의. 흔히 미술사에서 미술 양식을 구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사조에 맞추어 그림을 쪼개고 화가를 쪼개는 식으로 접근하면, 미술사가 그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쌓아야 하는 교양의 일부로 느껴지죠. 그래서 고갱이나 고흐의 인생은 몰라도, 그들이 후기 인상주의란 것만 알면 그만인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쌓은 얕은 지식은 전 왠지 자신감이 없더라구요. 아마 모두 그러실 거예요.


최근에 읽은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은, 쌓아야 하는 교양의 한 부분으로 막막하게 여겨졌던 미술사를 아주 쉽게 풀이해 준 책이었어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어 챕터가 구분되어 있거든요. '인상주의에 누가 누가 있고, 입체주의에 누가누가 있더라' 식의 접근이 아닌, '고흐의 삶, 피카소의 삶' 이렇게 말이죠. 그들의 인생의 궤적을 하나씩 쫒다 보면, 미술은 딱딱한 교양이 아닌, 개개인의 삶이 만들어낸 친근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됩니다. 


책은 총 14명의 화가의 삶을 다루고 있어요.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화가들로만 총망라되어있죠. 아마도 저자는 우리가 대-충 알고 있는 화가들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길 바랬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이름은 너무도 많이 들어온 화가지만, 전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현시대에는 그토록 추앙받는 화가들이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불운한 이야기와, 의외로 그들의 시작점이 처음부터 '화가'는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그림에 반영된 그들의 어린 시절과 심리상태까지, 모두 세세하게 알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그 개인사가 모여 미술사가 된다는 것도요. 역사는 결국 인물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미술사도 예외가 아닌 거죠. 


제가 가장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반 고흐와 피카소의 이야기였습니다. 너무 유명한 화가라서 더 뜻깊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두 화가는 우리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는' 화가들이죠. 하지만 우리가 아는 상식은 어디까지이던가요. '반 고흐는 귀를 잘랐다', '반 고흐의 그림은 극명한 채색으로 유명하다', '피카소는 입체주의 대표 화가다', '그는 유일무이한 천재다' 뭐 이쯤이 아닐까요. 


하지만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화가들의 인생을 자세히 들려주면서, 우리의 교양을 한 번 더 확장시켜줍니다. 이를테면,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 그 시대를 풍미하던 '압생트'라는 독주가 있었는데요. 그 독주에 중독되면 황시증(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병)에 걸려, 그즈음 그가 그린 그림들이 그렇게나 샛노랗다는 이야기, 모두 알고 계셨나요? 저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어요. 그저 '와, 색깔 정말 진하다, 아름답다' 하던 그림들의 배경에 그런 슬픈 사연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거죠. 귀를 자른 이유도 압생트 중독으로 인한 환청 때문이었다고 해요. (전, 사랑하는 여자에게 주기 위해 귀를 잘랐다고 잘못 알고 있었더랬죠)


샛노란 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반 고흐'의 그림들. 황시증으로 인해 탄생한 슬픈 결과물. (좌) <밤의 카페 테라스> (우) <해바라기>


피카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물을 마구 쪼개서 그렸던 피카소의 매우 난해하고도 독창적인 작품들이, 사실은 자신의 선배인 '앙리 마티스'의 그림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 까지는 몰랐었죠. 인물을 '다(多)시점'으로 그리기 시작한 건 마티스가 먼져였는데, 피카소가 재빠르게 그 기법을 흡수해 더 유명해졌다는 거예요. 그런 이유에서 선구자였음에도 피카소에 밀렸던 마티스는 한동안 불행해했고, 두 사람은 철천지 원수처럼 지냈다고 하네요. 노년이 되어서야 서로의 미술성을 인정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까지, 모두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죠.


피카소에 가려진 불운한 천재 '앙리 마티스'의 그림들. 그의 그림은 오늘날 우리들에겐 인테리어 그림의 결정판이 되었죠.
'앙리 마티스'에게 가장 많이 영감을 받은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


이 외에도 책에는 우리가 이름만은 정확히 알고 있는 화가들의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역사를 이런 식으로 배울 수 있었더라면, 더 친근하고 쉽게 느껴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딱딱한 인문학 도서 사이에서, 미술사를 이렇게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낸 책이 있어 참 반가웠어요. 이 책을 통해서야 익히 들어왔던 화가들을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 듭니다. 


미술사, 아니, 화가들의 생애와 그 생애가 만들어낸 미술사를 알고 싶은 분들에겐, 이 책 정말 추천입니다. 여러분의 교양의 영역을 재밌게 넓혀보세요.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02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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