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날들은 안온한가요 ?
한 2년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에세이를 읽는 제게 에세이를 읽는 건 시간낭비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지식을 얻는 인문학도 아니고, 완벽한 서사가 있는 소설도 아니고, 대체 왜 에세이를 읽느냐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제대로 항변을 하지 못했어요. 저도 왜 읽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에세이를 즐겨 읽으며, 심지어 스스로도 에세이 작가가 된 저는,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름 아닌, 위로를 받기 위해 읽는 거라고. 짧은 호흡들로 이루어진 매우 단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그래서 누군가 보기엔 인문학이나 소설에 비해 비루해 보일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 에세이만큼 즉각적인 위로를 주는 장르의 책은 없는 것 같거든요.
에세이는 사실에 근거해 쓰인 이야기이니만큼, 슈퍼히어로도 기가 막힌 서사도 없지만, 분명히 평범함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게 손을 내민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에세이 '제법 안온한 날들'도 그런 매력을 품은 책이었어요.
이 에세이를 쓴 저자는 응급의학과 의사예요. 분명 사회적 위치가 '평범'하다고 보기엔 조금 잘난 듯한 분이죠. 하지만 이 분이 써 내려간 글들은, 우리의 일상들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수시로 사랑에 상처 받고, 그리워하고, 직장생활에 지치고, 자주 무기력해지고, 하지만 다시 정신을 붙들며 살아가고. 어쩌면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류의 글들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라! 그럼 성공한다! 상처 안 받는다!'이런 식의 해법은 나오지 않아요. 그저 자신이 겪은 일상의 일들을 담담히 써 내려가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간접 경험하면서 심심한 위로를 얻는 게 전부죠. 하지만 그 위로가 사실은 (내 마음을 달래는) 해법인 동시에, 에세이의 존재 이유라고 저는 생각해요.
요즘은 에세이의 풍년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위로가 많이 필요한 세상이고, 대단한 이야기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온도의 이야기를 접하고 싶어 한다는 거겠죠. 전 사실 에세이를 정말 많이 읽어요. 책으로 출판된 이야기뿐 아니라 여러 플랫폼에서 쓰이는 에세이들을 읽죠. 그래서 나름 '괜찮은' 에세이들을 알아보는 저만의 관록도 있다고 자부합니다.
'제법 안온한 날들'은 아마 그런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책을 산 지 3일 만에, 그것도 직장에서 쉬는 시간에 호로록 완독 해버린 에세이. 결코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이야기. 성공한 의사이지만, 분명 직장생활과 사랑에 울고 웃는 건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래서 심심한 위로가 되는 이야기. 남궁인 작가의 '제법 안온한 날들' 추천합니다.
참, 저는 그중에서 '무릎'이란 에피소드를 참 재밌게 읽었어요.
■ ABOUT WRITER
남궁인. 글 쓰는 의사. 현재 이화여대 부속 목동병원의 임상조교수로 있습니다. 「만약은 없다」 , 「지독한 하루」 등 총 네 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 FAVORITE SENTENCE
혼자 있는 시간만이 나를 발전시킬 수 있다. 또, 혼자 시간을 보낼 수있는 것은 행운이다. 홀로 남으면 이에 감사하고, 귀한 시간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최대한 알차게 보낸다. _92p
행복하지 않은 일은, 적어도 불행한 일은 아니었다. _1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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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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