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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여파

잠을 들 수가 없게 했던, 그 말.


지난밤, 나는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가 이런 댓글을 보게 됐다. 무의식 중에 남들보다 내 취향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정신과에 가보라는 말이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을 읽었다. 하지만 잘못 읽은 게 아니었다. 당신은 오만하니 고칠 필요가 있다는 요지의 말이 맞았다. 하필이면 그 댓글을 새벽 한 시에 발견한 게 문제였을까. 나는 세시 반이 다 되도록 잠에 들 수 없었다. 단어 하나가 계속 내 머리를 비집고 들어와 괴롭혔다. 정신과, 정신과, 정신과...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그것도 굳이 댓글로 쓰면서까지 표현할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글의 어떤 부분이 그 사람에게 그렇게 전해진 걸까. 분명히 그 사람은 내 글에서 내가 오만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일 텐데. 반박하여 따지거나 핑계를 대면 더 속상해질 것 같아, 나는 그 댓글에 그저 조용히 하트만 누르고 인스타그램을 껐다. 하지만 그 생각도 함께 꺼지는 것은 아니었다.


불쾌한 댓글로 마음고생을 할 때마다 남편은 늘 내게 말한다. "자기야, 자기 베스트셀러 되고 싶다며. 그러면 더 심한 댓글들도 많이 달릴 텐데? 이런 건 그냥 무시해야 돼" 나는 감정 기복이 엄청나게 심한 데다 예민하고 멘탈도 유리 같아서, 누가 나를 지적하거나 공격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되어있는 사람이라는 걸, 남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옆에서 그렇게라도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도 그 말을 곱씹고 곱씹어 결국 자기혐오로 승화시킬 게 뻔했다. 남편 말처럼, 무시하는 편이 내 정신건강에 좋으리란 걸 이제는 나도 머리로는 안다. 다만 마음까지는 아직 단련되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지난밤에 우연히 본 그 댓글은 악플에 속하지도 않았다. 어떤 비속어도 사용하지 않은, 그저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를 적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실제 나의 오만함이 정곡에 찔려 이리 괴로운 것일까. 남들보다 내 취향이 우위에 있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할 때도 분명 있겠지, 나도 사람이니까, 내가 취향이 좀 확실한 편이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남들의 취향을 무시한다거나 우월감을 느끼지는 않았었는데. 이를테면 난 이런이런 영화를 좋아하지만, 어떤 친구는 공포영화 쪽을 빠삭히 알아서 내가 모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는 거고, 난 되려 서로 다른 관심사를 흡수하는 그런 상호작용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머릿속으로 그 댓글에 대한 핑계들을 생산해내며 잠에 들었더니, 꿈자리가 좋질 않았다. 개운하지 않은 잠이었다. 다음날 일어나서도 그 생각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대체 자기애와 자만을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은 무엇일까. 겸손함과 자신감 결여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명확한 경계가 있기는 할까. 나는 내가 자기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의 눈에는 자만인 걸까, 아니면 나의 자기애가 사실은 그냥 자만이었던 걸까.


의도는 어쨌건, 지적은 사람을 굉장히 불쾌하게 한다.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유익하다는 단면도 있는 것 같다. 정말 어려운 감정이다. 내가 쓰는 모든 글들에는 자연스럽게 내 생각들이 묻어나고, 같은 의미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자연히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느낄 수밖에 없을 터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스스로에 대한 생각은, 가치관은, 그래서 중요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



적당한 자기애(Ego)는 건강한 게 아니던가요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덕분에, 그동안 자신만만하게 써오던 글들의 문체와 온도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해보게 됐다. 물론 내가 맞고, 댓글을 쓴 사람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서는 조금 고마워해야 할까. 나의 글들이 모든 이들을 납득시키고 공감시킬 수는 없겠지만, 읽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반감의 여지가 있을지 없을지, 앞으로 한 번씩 더 생각해보고 글을 쓰게 될 것 같으니 말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관대하고,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글을, 나는 쓰고 싶다.


뒷북이지만 굳이 조금의 변명을 해보자면, 누군가는 오만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취향을 매우 사랑하는 편이고 자신도 있는 편이다. 스스로 오랜 시간 축적한 자신의 취향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도 참 애달프지 않을까.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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