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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때 한 번 친구 정리가 될 거야

인생선배들이 해주던 그 띵언이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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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한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예식 장소는 경북 안동. 경기도 분당에 사는 나에게는 적잖이 먼 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되는 게, 2019년 가을 내 결혼식은 강원도 동해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나는 전세버스 두 대를 각각 서울과 고향인 대전에서 대절했고, 나의 지인들은 모두 전세버스에 3시간 이상 몸을 싣고서야 내 결혼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의 안동 결혼식 전세버스는 종합운동장역 1번 출구에 대기 중이었다. 나는 늘 약속시간에 촉박하게 준비하는 못난 게으름 탓에 일을 그르치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집에서 늦게 나오는 바람에 분당에서 종합운동장역까지 택시를 타야 했다. 서울 택시를 잡은 덕에 시외 할증이 안 붙긴 했지만 택시비는 17,200원. 교통비로는 큰 지출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친구가 대절해준 전세버스는 놓치지 않고 제 시간 안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이 버스를 놓쳤더라면 난 대체 어찌 안동까지 가야 했을지. (이 지긋지긋한 게으름...)


버스는 9시에 출발해 예식보다 한 시간 이른, 12시 정오에 도착했다. 중간에 한 번 휴게소를 정차했고, 넷플릭스로 영화 한 편을 보고도 남아도는 시간을 예식장 가는 길에 쓴 것이다. 문득, 강원도였던 내 결혼식에 이런 피곤함을 무릅쓰고 와주었을 친구들이 떠올랐다. 예식 당일. 나는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받고, 공주대접을 만끽하느라 마냥 즐거웠지만, 친구들은 아침 일찍 전세버스를 타기 위해 (누군가는 나처럼 택시비를 지불해가며) 주말 아침 몸을 일으켰을 게 아닌가. 어떤 친구들은 직접 그 먼길을 운전을 해서 와주기도 했다. 그 길에 수반되었을 기름값이 얼마였을 지는, 굳이 헤아려보기 무섭지만 제법 큰돈이었을 터.


어떤 이의 마음은, 내가 그와 똑같은 상황을 겪어봐야만 제대로 헤아릴 수 있게 되나보다. 나는 1년 전 내 결혼식에 오는 지루한 과정을 버텨준 친구들의 마음을, 오늘날에서야 정확히 알게 됐다. 그 전에는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거야'로 짐작했던 것이, 베베 꼬이는 몸을 세 시간 동안 버스에 결박한 채로 내가 몸소 겪어 보고 나서야 '아니 세상에, 내 친구들 정말 무지하게 고생했구나'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나는 '이런 피곤함을 무릅쓰고라도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안동에서 오늘 결혼한 친구도, 1년 전 나의 결혼식에 왔었다. 경기도 하남에서 강원도까지 남자 친구와 차를 끌고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예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운전해서 왔다며 숨을 고르던 그 친구의 얼굴이. 훗날 나는 이 친구 결혼식만큼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벌써 1년이 지나 오늘이 되었다.




나의 기쁨을 축하해주는 자, 좋은 벗.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가는 진리 중 하나. 슬픔을 함께 나눠주는 자보다 기쁨을 축하해주는 자의 마음이 더 투명할 때가 많더라는 것. 희한한 일이다. 내가 배우기로는 슬픈 일을 나누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타인을 시기 질투하는 세태가 나날이 팽창하는 시대라서 그럴까, 아무튼 요새는 나의 경사를 비웃거나 깎아내리지 않고 온전히 축하해줄 줄 아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가 되었다. 나의 결혼을, 나의 출산을, 나의 명품백을, 나의 팔로워를, 나의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비꼬지 않고 그대로 축하해줄 수 있는 친구. 마음을 직접 전해주기 위해, 전세버스를 타든 직접 운전을 해서든 먼 길을 와서 40분 남짓한 예식을 지켜봐 주고 돌아가는 친구. 그런 친구들이야말로 정말 선한 친구들, 타인의 경사를 축하해줄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임을, 갑자기 안동을 다녀오는 길에 절실히 깨닫게 됐지 뭔가.


좋아하는 친구의 결혼식이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안동으로 가는 길은 멀고 지루했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고, 그 친구의 밝고 선한 기운을 좋아해서인지, 그 멀고 지루함이 '억울'하지는 않았다. 전세버스에 내가 무사히 잘 탔는지, 예식 준비로 바쁠 텐데 확인 전화까지 해 준 그 친구에게 되려 너무 고맙고 미안했을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가는 진리 둘. 사람의 마음은 때때로 백 마디 말보다 한 두 가지 묵직한 행동으로 그 깊이가 전해진다. 어떤 축하는 속이 뒤틀리지만 축하하는 척하는 가짜이고, 어떤 축하는 요란 법석하진 않아도 묵직한 진심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대에, 나와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달려와 예식장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좋은 사람들이었겠지. 3시간의 이동시간도, 전염병의 위험성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나는 1년 전, 영혼을 나눈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별 시답잖은 핑계를 대며 내 결혼식에 오지 않은 친구들을 잊지 못한다. 더불어 내가 별 마음을 주지 않았는데도, 심지어 청첩장을 주지 못했는데도, 내 결혼식에 축하의 뜻을 아끼지 않은 친구들 또한 잊지 못한다. "결혼할 때 한 번 친구 정리가 될 거야"라고 말하던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맞았음을 확인하게 된, 뼈 아프지만 좋은 계기였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나의 한정된 마음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지, 이제는 잘 안다. 자신이 불행과 행복 중 어느 경계에 있건 간에, 상대의 행복을 색안경 끼지 않고 축하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일단 OK, 좋은 사람으로 분류해도 된다.


다음 달에는, 지난 내 결혼식에 축하의 뜻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도통 움직이길 귀찮아하는 마음을 무릅쓰고 고향에 가려는 건, 그들에게 고맙기 때문에 피어난 나의 진심이다. 아마도 그들이 내 마음의 순도를 높여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오는 한 해에는 부디, 보다 좋은 사람들에게 나의 에너지를 쏟고 싶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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