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뛰느라 내가 흘리고 온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즐겨 읽던 잡지에서 우연히 오타를 발견했다.「톺아보다」라고 적혀있었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잡지에서도 가끔 이렇게 인간적인 실수가 나오는구나, 하며 미소를 짓던 중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놀랍게도「톺아보다」는 오타가 아니었다. 검색 결과,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명백히 등록된 말로, "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라는 뜻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대관절 '톺다'는 무슨 말일까.
톺다 (동사)
1. 가파른 곳을 오르려고 매우 힘들여 더듬다.
2.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
아마도「톺아보다」의 '톺다'는 2번 뜻,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라는 의미에 가까워 보였다. 세상에,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그리고 정말 오타처럼 생긴 특이한 낱말이다. 그런데 이 생소한 단어의 뜻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톺아보다」라는 말은 풀어 해석하자면 즉, '샅샅이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며 찾아나가면서 살피다'라는 뜻일 테다. 이런 길고 구체적이고도 섬세한 동작을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우리나라 말의 풍부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낯선 단어를 검색해보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문득 비약적인 성장만을 기대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내 모습이 수면 위의 기포처럼 떠오르는 것만 같다. 단어의 뜻과 아주 대비되는 내 모습. 나는 늘 '시간이 모자라'를 연신 외쳐대며,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나를 굴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를 톺아보기는커녕 늘 숨 가쁘게 채찍질했고,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나의 게으른 내면들은 못났다며 외면하기 바빴다. 그래서 항상 '열심히 살았다'는 긍지 뒤에 '뭔가가 빠진 것 같은데'라는 불길함이 따라붙었던 게 아닐까.
서른두 살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불안하고 눈물이 차오르고 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만 같은 이 기분을, 언제까지고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사실 난 알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지낸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그 마음의 병, 공황장애로 결국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최근 몇 개월 간 내 몸은, 미약하지만 공황장애로 가는 이상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천천히 제대로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면의 미세한 균열을 방치하면 언젠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게, 꼭 건축 구조물과 닮았다. 틈이 있는 곳, 깨진 곳마다 허술하고 조잡하게 본드질을 하며 메꿔온 내 부분들을 떠올려본다. 아니면 애초에 허술하게 지어졌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나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만 한다면 나도 결국에 펑, 하고 무너져버리고 말 거란 건 분명하겠지.
다가오는 한 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이 많았는데, 이 단어를 발견함으로써 조금은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작년엔 무조건 열심히 살자, 로 정했더니 이렇게 됐다. 삶의 균형 측면에서 뭔가가 많이 무너졌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래서 정확히 뭘 어찌해야 내가 불행하지 않고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걸까, 에 대한 해답을 머릿속으로 늘 구하던 중이었다. 고맙게도 바로 이 단어인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에 산타의 선물처럼 찾아온 이 단어. 이 단어 그대로 나를, '톺아'봐야겠음을 느낀다. 내 내면의 틈과 균열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자세하고 다정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가져봐야겠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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