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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면, 마음병원에 가요

남들 눈은 신경 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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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평소와 같이 일을 하던 중 심장이 너무 빨리 그리고 크게 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 밖으로까지 느껴지는 둥둥거림이었다. 심장박동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불안과 초조. 한두 번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 날은 유독,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쉬는 시간이 되어, 물을 마시고 억지로 책을 읽는 등 몸에게 휴식의 사인을 주어도 심장의 요동은 그칠 줄을 몰랐다.


분명 최근 며칠간 내 신상에는 그렇다 할만한 부정적인 사건이 없었다. 그냥 갑자기 발현된 증상이었다. 이러다 손님을 받다가 꽥, 소리라도 지르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건 아닌지 무서워져, 곧바로 근처의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세상은 예약제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다급하게 전화를 건 내게, 차분한 간호사는 예약 없이는 당일 진료가 어렵다며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회사 근처의 정신과 세 군데 모두가 그랬다. 그럼 지금 미칠 것 같은 응급 환자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가는 사지에 피를 뚝뚝 흘리는 더 큰 응급환자들 사이에서 소외될 것이 뻔하고, 그냥 두자니 내 통제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서워 죽겠는데. 정녕, 떨리는 손발을 묶고 이 사회의 성숙한 성인답게 다음 예약을 도모해야 하는 걸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심장의 요동을 그대로 느끼며 앉아있는데, 전화를 걸어본 병원 중 한 곳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얼마나 기다리셔야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와보시겠어요?"


정말 다행히도 쉬는 시간이 끝나가기 전, 어떤 환자와 환자 사이의 시간에 짧게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몇 개월 전 같은 증상으로 이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심하지 않았고, 약을 며칠 먹으니 호전되는 것 같아 내 자의로 그냥 치료를 관두었었다. 선생님은 분명 몇 개월은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스스로를 그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다며 호기롭게 과대평가했었다. 머지않아 아기를 가져야 할 몸인데 그런 약을 복용해서 쓰겠냐며 쓴 표정을 짓던 동료 언니의 영향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장기간의 치료를 권했던 환자가 멋대로 치료를 끊었다가, 별안간 사색이 되어 다시 나타난 걸 본 선생님은 어땠을까. '그럼 그렇지, 내 말 들으랬잖아' 싶었을까. 심장이 튀어나올까 봐 조급해 죽겠는 와중에도 민망함에 얼굴이 홧홧했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이 불안과 초조의 증상을 끊어내고 싶다는 내 결의를 보여드리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처방된 약을 꺼내 확인해보니, 약의 이름은 저번과 같은 렉사프로정 10mg. 주로 불안장애에 쓰이는 항우울제다. 선생님이 내게 내 질병의 이름에 대해 말해준 적은 없었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인터넷 검색창에 약을 검색해본 바에 따르면, 아마도 나의 병명은 '사회불안장애'인 듯했다.


사회 불안 장애 : 불안 장애 중 하나로, 사회 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인 상황을 두려워하고 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부딪치며 전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어야 했던 백화점에서의 1년 여 시간이, 외향적이기는 커녕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내 성향에 지극히도 반대되었던 데다, 심지어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관계조차도 늘 버거웠던 게 화근이었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누적되고 있었고, 이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몸이 이런저런 사인을 보내오고 있는 거였다.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 가벼운 것으로 치부한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공황발작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손이 말린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한다. 다행인지 나는 아직 그 지경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냥 방치한다면 내게도 머지않아 벌어질지 모를 일. 손발이 오징어처럼 말려들고 숨이 안 쉬어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이, 마치 예지몽처럼 눈 앞에 그려진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냉정하게 판단키로 한다. 정신과에 들락날락하는 나를 보는 주변인들의 곱지 않을 시선, 나아가 정신력이 나약해서 그런 거라고 쉽게 치부하는 사회적 편견을,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게다가 동료 언니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이를 가질 몸이 그런 약을 쓰는 게 옳느냐에 대한 어설픈 윤리관까지도 나를 조금 괴롭히기는 한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육체와 정신의 합으로 이루어진 개체가 아닌가.


내 정신이 건강해야 내 몸도 지킬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곧 아이를 잉태할 유부녀의 몸이라고 해서 내 몸을 청정지역으로 만드느라 고갈된 내 정신을 방치하는 것이야 말로,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윤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에는, 아니 이번에야말로, 세간의 이상한 눈빛 따위는 무시하고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기로 결심하는 바다.


그러니까, 나는 보다 건강히, 잘, 오래 살고 싶어서 정신과에 간다. 그걸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편협한 사람으로 간주할 수밖에.




여담이지만, 아직까지 TV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환자가 의사와 긴긴 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어 그 점이 조금 수상쩍었었는데, 그런 내 의중을 읽었는지, 선생님은 '일단은' 약을 먹으라고 했다. 증상이 심하니까 우선 그걸 가라앉혀야 한다고. 그 증상을 어느 정도 누르고 나서, 그 뒤에 나를 그리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자고. 선생님의 아빠 같은 말씀에 나는 또 아이처럼 안심이 된다.


선생님 왈, 저번에도 약을 처방해주고 어느 정도 호전되고 나면 면담을 하려 했는데, 내가 거기서 발길을 뚝 끊었다는 것이다. 그래, 언제나 불성실한 건 나였다.


선생님 말씀대로 일단, 약을 먹자. 불에 타고 있는 집에는 물부터 뿌려야지, 프로파일러를 모셔다가 방화범의 뒤틀린 유년시절부터 끄집어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요동치는 내 심장을 일단 잠재우고 성실히 치료에 임하도록 해야겠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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