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터넷쇼핑을 잘했지?
"듬지야 쿠팡으로 물건 어떻게 주문하는 거야? 엄마도 좀 알려줘 봐"
엄마가 오래전에 물어왔을 때, 나는 솔직히 알려주기가 귀찮았었다. 이제 노년이라면 노년일 엄마가,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일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아주 오랜 시간 엄마는 어딘가에서 직접 실물을 보고 물건을 구매해왔을 텐데, 이제 와서 인터넷 장터에 입문을 한들 젊은이들처럼 물건을 잘 고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때 나는 내 오만으로 엄마를 그리 얕봤던 것 같다.
어쨌건 우리 엄마, 인터넷 쇼핑을 배웠다. 여러 허위정보 허위사진에 속지 않고 알짜배기 상품을 주문하게 되기까지 엄마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얼마 전에 이사한 엄마 집에 놓인 신박한 아이템들을 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걸, 다, 인터넷으로 샀다고? 엄마가?
몇 년 만에 신세는 완전히 바뀌었다. 엄마의 깔끔한 집에 놓인 아이템들은 젊은이인 내게도 모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고, 나는 되려 엄마에게 이것들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봐야 했으니까.
"아, 그거? 쿠팡에 검색해봐, 얼마 안 해. 요즘 별 게 다 있어."
이것은 분명 환갑을 넘긴 엄마가 30대의 시퍼런 자식에게 하는 말이다. 대체 언제 우리 엄마는 인터넷 쇼핑 강자가 된 것일까. 엄마 집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 소파와 거실장까지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별안간 엄마가 달리 보였다. 엄마는 더 이상 인터넷 앞에 쩔쩔매는 우둔한 아줌마가 아니었다.
그래, 어쩌면 인터넷 쇼핑에 있어 중요한 건 얼마나 디지털 매체 사용법에 능하냐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분명 실물을 보고 물건을 살 때처럼, 인터넷에 올라온 상품들의 규격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엄마의 공간에 놓일 수 있는지 없는지 면밀히 판단한 후에 상품을 구입해왔을 것이다. 평소의 꼼꼼한 성격처럼 말이다. 그러니 엄마 집을 수려하게 장식한 눈 돌아가는 아이템들이 어디 하나 겉돌지 않고 착착 그 자리를 빛내고 있는 거겠지. 나? 말해 무엇하랴. 규격 따위 보지도 않고 디자인에 홀려 주문했다가 너무 크거나 작아서 반품 보내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이제 와서 냉철히 따져보면, 어린 딸이 나이 든 엄마보다 인터넷 쇼핑에 유리하다고는 넘겨짚을 수 없는 노릇일 테다.
그런데 도대체 엄마 집의 무어가 그리 신박한 아이템이었냐구? 자자, 하나하나 나열해보겠다.
우선, 밑으로 물 빠지는 관이 붙어있는 식기 건조대! 엄마 집에 갔을 때 제일 처음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생긴 것도 동글동글 예쁘지만 밑으로 물 빠지는 자그마한 관 같은 게 붙어있고, 생각보다 접시도 많이 들어가는 탐나는 아이템이었다. 그동안 싱크대에 원래 딸려있던 작은 식기 건조대가 접시들의 무게를 간신히 견디고 있는 꼴을 보며 참 답답했었지만, 그게 원래 주방의 기본값이라 여겼었거늘. 그렇다고 2단 3단짜리 식기 건조대를 들여놓기엔 우리 집 주방은 너무도 좁았다. 그런데 세상엔 참 다양한 식기 건조대가 존재하고 있었던 거다. 덩치는 별로 크지 않아도 접시를 많이 쌓을 수 있으면서 디자인도 이쁘면서 아래로 물도 빠지는....!
둘째, 엄마 집 주방의 상부장을 열었더니, 공간 활용이 용이하게끔 칸을 분리하는 지지대 같은 것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덕분에 엄마는 세 칸 밖에 되지 않는 상부장의 공간을 여섯 칸으로 나눠 쓸 수 있는 혁명을 경험 중이었다. 이 용이한 물건의 이름은, 생각보다 단순한 '접시 정리대'였으나, 이 역시 나는 난생처음 알았다. 엄마의 상부장은, 아래에 있는 접시를 빼기 위해 윗접시를 다 드러내야 하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는 지혜로운 구조였다.
셋째, 음식물 쓰레기통. 내가 아는 음식물 쓰레기통이라고는 그 시뻘겋고 촌스런 네모난 통밖에는 없었다. 그런 통을 쓰기는 싫어서 여태껏 음식물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꽉 차면 버리는 식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주방에 놓인 하얗고 디자인도 세련된 통이 다름 아닌 음식물 쓰레기통이라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엄만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산 걸까. 그 하얀 통은 예쁘기도 예쁘지만 뚜껑을 닫으면 절대로 음식물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도 않는 기특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나열해보니 몇 가지 되지 않는 것 같다만, 내가 받은 신선한 충격은 생각보다 컸음을 누누이 밝히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엄마 집을 장식한 이 탐나는 모든 물건을 곧장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엄마가 산 모델과 똑같은 것들로.
어제는 신랑과 함께 배송받은 접시 정리대로 상부장을 싹 정리했다.
"내가 이거 예전에 사자고 했었는데. 그때는 안 사더니..."
신랑이 툴툴댄다. 신랑이 이걸 사자고 했었다니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신랑의 말보단 엄마 집에 놓인 걸 실제로 보고 나니 그 유용함이 와 닿는 걸 어쩌겠는가. 아무튼 세상 깔끔하고 보기 좋아진 상부장을 보고 나니 몹시도 만족스러웠다. 연이어 배송받은 식기 건조대도, 음식물 쓰레기통도 역시나 맘에 쏙 든다. 살림도 템빨이로구나!
앞으로는 엄마가 인터넷으로 해야 하는 뭔가를 알려달라고 해도 절대로 엄마의 능력을 얕봐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곧 엄마가 마켓컬리에 눈을 떠, 세상 가성비 좋고 몸에 좋은 식재료들로 냉창고를 채우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고로, 똑똑히 인정하는 바다. 엄마의 물건 고르는 60여 년의 짬바는 과연 위대한 것이라고. 제 아무리 기고 날뛰어도 살림 템을 고르는 데에는 엄마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고.
이로써 살림 팁 하나가 늘었다. 다음에도 엄마가 사는 물건들을 따라 사면, 반품 확률을 확실히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2021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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