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투고의 길을 걷는 중입니다
나는 거절에 유독 취약한 편이다.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끔찍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나는 상대의 거절이 두려워 뭔가를 요구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어쩌다 용기를 내 요구했을 때 거절당하면 그 느낌을 끌어안고 무척이나 우울해했다.
하지만 거절에 대한 좌절은 살면서 영원히 느껴야 하는 감정이다. 단순히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 외에도, 입사지원서를 냈는데 불합격 통보가 온다던지, 대출을 받으러 갔는데 신용등급이 구려서 대출이 안된다던지 하는 것도 다 거절의 일환이다. 내 기능을 거절당하는 것이다. 마음을 거절당하는 것도 기능을 거절당하는 것도 이래저래 기분은 나쁘다. 하지만 분명히 계속될 일임은 자명하다.
거절이 무서워 그렇게 거절의 순간을 피해 도망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거절의 순간이 내게 또 찾아왔다. 바로 원고 투고에서의 거절이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나는 일단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는 과정을 일차적으로 거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원고 투고 말고도 독립출판이라는 다른 창이 또 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출판 경험이 두터운 사람들에 의해 출간되는 게 더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름대로 원고 투고를 할 리스트를 꾸렸다. 주제넘게 대형 출판사도 끼워 넣어 보았고, 그렇지 않은 소규모 출판사도 끼워 넣어 보았다. 얼추 내가 아는 출판사들로 꾸리다 보니 20군데 정도가 추려졌다. 그리하여 당당하게 원고를 턱 투척하고 기다렸다. 아무 데나 낚싯대를 던져놓고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그러고 나서 속속들이 거절의 메일이 도착했다. "소중한 원고를 투고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좋은 원고라고 생각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말의 결론은 다 읽지 않아도 잘 안다. 어쨌든 모두 출간을 못해주겠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나는 출판사로부터 내 기능을 거절당했다. 나에게 너무나 예쁘고 소중한 내 원고는,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못 미더웠던 게다.
어린 시절부터 깨나 글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건만, 인스타그램에 내 글을 사랑해주는 감사한 이들도 꽤 많건만, 거절을 당하고 나니 왠지 내가 글을 못쓰는 사람인가 싶어 기분이 울적했다. 우울감에 글을 쓸 기운도 안 나서 멍하니 있다가 인터넷에 '투고 후기'를 검색해 찾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이 듣고 싶었다. 그런데 오 마이 갓.
여러 글 잘 쓰는 이들의 투고 경험을 샅샅이 읽어보니, 100군데 투고를 하면 긍정적 반응이 한두 군데에서 온다는 것이 투고 세계의 국룰인 듯했다. 게다가 나는 어마어마한 불손을 저질렀음을 알게 됐다. 원고를 투고할 때에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라는 게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턱 하니 원고만 투척했던 것이다. 여러 투고 선배님들의 조언을 들어보니, 원고를 투고할 때에는 이메일 템플릿도 갖춰야 하고, 원고의 내용을 짤막하게 간추린 기획안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난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하루에도 수십 통의 투고 메일을 받는다는 출판사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왜 그들을 원고를 읽는 기계로 생각했을까. 그들도 업무에 지친 보통의 사람들일 텐데.
메일을 열었을 때, 잘 정돈된 양식에 맞춰 한눈에 보기 쉽게 요약된 기획안이 첨부되어있다면 읽는 사람의 수고를 덜어줄 것이다. 게다가 귀하의 출판사에서 낸 이런이런 책을 읽었는데 너무 감명 깊었더라는 얘기까지 곁들인다면, 편집자 입장에서는 조금 더 눈길이 가고 기분이 좋을 테다. 그런 기본 소양도 익히지 못한 채, 기획안도 없이 무턱대고 200페이지 분량의 원고만 보낸 내가 갑자기 참 배려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100군데 투고해 한두 군데에서 긍정적 회신이 온다는데, 겨우 스무 군데에 투고해놓고 우울해하는 건 대체 무슨 오만이람.
며칠 뒤 나는 신랑과 함께 제일 크다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에세이 코너에 있는 거의 모든 에세이들의 서지정보를 찍어왔다. 책 뒷면의 서지정보에는 출판사의 메일 주소가 적혀있었고, 나는 그 메일 주소로 투고를 할 수 있었다. 막상 서점에 가보니 내가 아는 출판사는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전국에 4만여 개의 출판사가 있다는데, 나는 티끌만큼도 투고를 해보지 않고 징징거렸던 것이다.
집에 와서 정리를 하니 그 날 광화문 교보에서만 알아낸 출판사 메일 주소가 150건 정도 됐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겨우 한두 건의 피드백을 받을만한 개수의 출판사를 알아낸 셈이다. 그러니 투고의 길은 아직 갈길이 멀었으며, 겨우 이 정도 거절에 좌절하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어쩌면 내가 지금껏 겪은 모든 거절에 대한 좌절감들이 모두 터무니없는 내 과대망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편집자 입장에서 보다 더 편하게 읽고 판단해봄직한 기획안을 만드는 중이다. 내 책의 컨셉과 줄거리, 목차에 따른 소주제 등을 간단히 요약해보고 있다. 모름지기 거절을 당하지 않으려면 나도 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주어야 한다는 매우 간단한 깨달음을, 의외의 경험에서 배워간다. 1월에 투고를 하면 3월 즈음엔 뚜둥! 하고 책이 나올 거라는 헛된 기대도 이제 내려놓았다. 나는 세상의 많은 다른 작가들처럼, 보다 많은 거절과 실패를 경험해야 할 것이다. 단단하고 좋은 작가가 되고 싶으니까. <쇼미 더 머니>에서 송민호가 그랬던 것처럼, '한 두 번의 좌절. 이제 시시해'하는 단계가 되면, 그때는 내게도 더 긍정적인 회신들이 많아지지 않을는지.
고로, 내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인스타그램의 내 구독자분들께 곧 책이 나온다고 호언장담해놨는데 매우 머쓱한 대목이다. 하지만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분명히 세상에 나올 거라는 각오와 확신은 거두지 않고 싶다.
어제는 투고했던 한 출판사의 편집장님으로부터 요런 피드백도 받았다. 어쨌든 출간은 못해주겠다는 이야기였지만 그는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하며 내 인스타그램에 직접 들어와 내 글을 많이 읽으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금 급하고 엉성했던 내 책의 컨셉과 제목, 부제 등을 약간 코칭해주셨다. 이는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거절당하는 일만큼, 세상엔 분명 인정의 순간도 많다는 걸 꼭 기억해야지.
2021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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