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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바디프로필을 찍어?

누가 뭐라건 난 내가 예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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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허벅지. 봉긋 솟아오른 엉덩이와 가슴. 선명히 드러난 복근. 살짝 그을린 듯 섹시한 피부색.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타인의 사진이다. 이른바 바디프로필이라 불리는 이 사진은, 대부분 오랜 시간 운동을 해 온 소위 몸짱들이나, 현직 헬스분야 강사로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찍는 사진이다.


내가 그런 몸이 못돼서일까. 내 자의식은 항상 그런 사진을 버젓이 찍고 올리는 사람들을 늘 경외심 반 질투심 반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조금 노출이 심해진다 싶으면 "어휴, 못 보여줘서 안달이네 아주. 다 벗어재끼지 그래 왜?" 하며 혀를 차기도 했었다.


그러던 내가 우연히 바디프로필을 찍을 기회 아닌 기회가 생겼다.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들어온 제안이었는데, 프로필 사진을 제출하면 몸매관리샵에서 관리 10회를 받을 수 있는 협찬 느낌의 좋은 기회였다. 친구가 그 제안에 나를 떠올려주었다는 것에 고마웠다. 뜨뜻한 베드에 누워 누군가가 나를 정성스레 관리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으리라.


그런데 한편으론 그 제안의 조건부인 '프로필 사진'이 마음에 걸렸다. 친구는 몸매가 예쁜 필라테스 강사라지만, 난 그저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셀룰라이트의 화신일 뿐인데. 나 따위의 몸뚱이가 그런 사진을 찍어 제출한다고 하면 그쪽에서 탐탁해할까? 나를 날씬하게 본 건지 아니면 내게 그런 기회를 꼭 주고 싶었을지, 친구는 내 염려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받아보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10회 몸매 관리를 받는 대가로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타이트한 요가팬츠에 배가 드러나는 크롭티를 입고 사진관에 가자, 이번엔 사진작가가 날 어찌 볼 지가 마음에 걸렸다. 역시나 사진작가는 내게 "필라테스 강사세요?"하고 물었다. 여러 질문이 재차 오가는 게 귀찮아 평소 같으면 그냥 "네"라고 얼버무려 말할 텐데, 내 몸매가 절대 필라테스 강사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그건 아닌데, 찍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나는 사진작가의 궁금증을 풀어주느라 너무도 디테일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는 수고를 겪었다. 씨, 내가 복근만 있었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어쨌거나 나는 촬영비를 내고 촬영을 하러 온 손님이니, 복근은 커녕 몸 곳곳에 우글거리는 셀룰라이트가 있을지언정 당당히 '몸짱 포즈'를 지을 권리가 있었다. 나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자세들을 마구 따라 해 가며 최면을 걸었다. 난 예쁘다. 난 멋지다. 난 몸짱이다!


촬영이 끝나고, 나는 황황히 옷을 껴입고서 사진관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바로 수정된 사진이 메일로 도착했다. 너무 돼지처럼 나와서 관리샵에서 사진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왠 걸! 사진기사의 노련한 사진 기술과 현대문명의 위대하신 포토샵 기술이 시너지를 일으켜, 다행히도 나를 '몸짱'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날씬해 보이는 사람' 축에는 끼워줄 법한 사진이 탄생했다. 믿을 수 없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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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그런데 사실 더 만족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잊고 있었던, 외모에 대한 관심이 환기됐다는 점이다.


물론 내게도 외모가 제일 우선순위이던 때가 있었다. 20대 중반까지도 나는 늘 다리가 드러나는 치마차림에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길 좋아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꽤나 즐기던 여자였다. 종종 누군가가 예쁘다고 해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들뜨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대 후반 무렵부터 제대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내 관심사는 외모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철 지난 옷이 옷장에 가득해도, 군데군데 살이 붙어도, 전혀 까무러치지 않기 시작했지만 난 되려 긍정의 신호로 여겼었다. 아, 내가 성숙했구나. 그래서 더는 외모에 별 관심을 갖지 않게 됐구나. 난 이제 예쁨보다 더 멋진 걸 추구하게 된 거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했던가. 외모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이 그리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 상황들이 생겨났다. 그 모든 상황들 중 최악은 단연, 거울을 볼 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눈썹이랑 콧수염은 언제 이렇게 자라난 거지? 한 때는 매일같이 제모했는데. 머리에 이 돼지털은 또 뭐야? 아니 왜 바지는 다달이 이렇게 작아지는 거야? 이젠 고무줄 바지나 원피스만 입어야 되잖아? 외모를 너무나 놓아버린 결과, 외모에 초연한 단계가 아니라 내 외모를 혐오하는 단계로 진입 중이었다. 이게 무슨 긍정 신호란 말인가!


그러나 이미 몇 년간의 외모 방치로 인해 살은 불어날 대로 불어나고, 꾸미는 법도 까먹어가던 터라, 아, 난 이제 이쁘기는 글렀나 보다 하고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찰나, 바디프로필을 찍게 된 거였다.


물론 사진작가 아저씨가 내 배도 좀 집어넣어주고, 엉덩이도 좀 부풀려줬다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내 외모에 대한 관심, 내 외모에 대한 애정 말이다. 예쁘게 화장을 하는 재미, 예쁜 옷을 사서 하루 종일 전신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하는 재미,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흐뭇해하던 그런 재미 말이다.


예쁘게 기록된 사진 속의 나를 보니 정말이지 오랜만에 자신감도 생겼다. 와, 완전 못생긴 뚱돼지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나 아직 쓸만하네? 나 괜찮네? 앞으로 너무 나를 방치하지 말고 틈틈이 이렇게 사진도 찍고 예쁜 옷도 사 입고 해야겠다, 너무 기분 좋잖아? 하고 정말 오랜만에 생각했다. 이제는 되찾을 수 없는 거라 여겼던 감정을 되찾은 기분은 간질간질 묘했다.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다. 나, 다시 꾸미고 싶고 뽐내고 싶다!



내게도 바디프로필이 생기자, 인스타그램의 몸매를 뽐내는 여자들을 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아이구 이 자세 봐라, 아주 못 보여줘서 안달이네"했던 것이, "와, 이 여자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얼마나 사랑하면 이렇게 기록하고 싶었을까"로.


외모에 너무 집착해 예쁘다는 말을 못 들으면 잠이 안 오는 지경이 되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적당히 내 외모를 가꾸고 기록하고 뽐내는 시간들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긍지와 즐거움을 주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든, 외모 가꾸기든, 자기 관리에 열심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모름지기 건강한 사람일 테니까.



[정사각형] 01(10).jpg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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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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