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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Mar 04. 2017

영화 <문라이트>

달빛 아래에선 누구나 파랗다

백인잔치라고 소문난 아카데미에서 흑인 동성애라는 코드를 가지고 당당히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쥔 영화 <문라이트>. 시상식 도중 라라랜드와 호명이 겹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그리고 라라랜드 또한 너무도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우수작품상을 필히 받아야만했던 이 영화. 리뷰해보려 한다. (스포가 좀 가득합니다)


리틀. 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것

리틀. 샤이론. 블랙. 영화는 한 흑인 남성의 삶을 세 부분으로 쪼개어 보여준다. 모두 다 주인공 샤이론을 칭하는 말이다.

<리틀>에서의 어린 샤이론

리틀로 처음 등장한 샤이론은 몸집이 유난히 작은 아이다. 자존감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시기가 유년기라고 본다면, 샤이론의 유년기는 그늘 그 자체다.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에 의기소침하고 말 수도 적어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무겁다.


샤이론은 그 맘때 부터 '호모'라는 말을 들었다. 미국이라는 땅에서 흑인이면서 동성애자라는 게 어떤 위치일 지는 가늠해보지 않아도 충분하다. 미국에서 흑인은 랩퍼 아니면 운동선수 밖에 꿈꾸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물며 샤이론의 주변엔 위인으로 삼을 랩퍼나 운동선수도 없고 마약상인들만 가득하다.

어린 샤이론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엄마마저도 마약을 하고 샤이론을 잘 챙기지 않는다. 밖에서 당하는 괴롭힘이 그런 집에서 치유될 턱도 없어 보인다. 약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모습이 성인이 된 후의 샤이론의 뇌리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리틀 샤이론은 힘들다.


그런 샤이론의 암울한 유년기에는 천만다행으로 후안테레사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마약을 거래하며 먹고 살지만 가슴에 온정을 품은 자들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샤이론에게 정신적 부모가 되어준다.

자칫하면 비뚤어질세라, 어리고 여린 샤이론에게 스스로가 강인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고 느끼게한다. 그들은 샤이론이 척박한 어린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기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선택할 수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피부색, 나라, 부모가 그렇다. 태어나보니 흑인이었으며 하필이면 인종차별의 근거지인 미국땅이며, 그런 조건을 뛰어넘게 할 현명하고 어진 부모도 갖지 못했다면…. 마이애미의 마약쟁이 아들로 태어난 샤이론의 삶은 어쩌면 정해져있지 않을까. 그들과 똑같이 미래가 없는 마약쟁이가 되는 것.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스스로의 강한 의지 말곤 없을 것이다.



샤이론. 샤이론으로서의 샤이론

두 번째 챕터는 청소년기의 샤이론을 보여주는데, 여전히 주눅이 들어있지만 가장 샤이론다운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샤이론>의 청소년기 샤이론

그는 여전히 빼빼 마르고 왕따를 당하고 호모 소리를 듣지만, 휘둘리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후안과 테레사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 샤이론의 곁에는 케빈이라는 친구도 있다. 케빈은 중2병 스러운 욕과 허세를 줄줄이 달고다니면서도 샤이론에게 친절히 대하는 유일한 친구다.

샤이론과 케빈은 어느날 밤 바닷가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입을 맞추고 사랑을 나눈다. (호모포비아이신 분들은 보지 않으시길. 보시는 분의 마음도 불편하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만 보여져서는 안되는 아름다운 영화이기에.)

후안과 테레사가 리틀 샤이론에게 있었다면, 친구가 필요한 청소년기에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케빈이 있다.


블랙. 달빛에서는 누구나 파랗게 보여

줄곧 나쁜짓 한 번 한 적 없이 자란 샤이론은 우연한 사건으로 소년원에 가게 된다. 블랙이라는 새로운 챕터가 열리고, 그 안에는 그 전의 샤이론과는 단절된 새로운 샤이론이 있다.

<블랙>의 성인이 된 샤이론

질펀한 흑인 힙합, 번쩍거리는 금니와 금목걸이, 비싼 차가 말해주는 현재의 샤이론은 마약상이다. 과거 후안의 모습처럼, 그러나 후안의 바램과는 다르게 성장한 샤이론이다. 소년원을 나와 그가 터득한 삶의 방식은 먹고 살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정의를 포기하고 세속과 결탁한 국선변호사의 느낌이랄까.


그가 타성에 젖어 성인의 삶을 보내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10년 전, 유일하게 샤이론을 친구로 대해 준 케빈이다. 과거, 그를 '호모'가 아닌 '블랙'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던 친구.


케빈 역시 교도소를 다녀왔지만 그 이후 요리라는 재능을 찾아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었다. 케빈을 찾아간 샤이론에게 건넨 케빈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아니야…이게 샤이론일 순 없어"

나의 마음과 같은 소리였다. 그 시절 케빈이 알던 순수하고 올곧던 샤이론이 예상을 깨고, 흔한 흑인 마약상이 되어 나타나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에 기쁨도 잠시, 그들은 그렇게 상반된 삶을 살고있는 서로를 직시하고 긴 침묵을 이어나간다. 1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같은 선상에 있었던 두 소년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에 놓여있었다. 한 소년은 양지의 삶을 택했지만 한 소년은 그러지 못했다.


둘은 케빈이 일하는 식당을 나와 허름한 케빈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신세가 같지 않은 옛 동창을 만나면 쉽게 운을 떼지 못하듯,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샤이론은 실망하는 케빈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듯 무기력하지만, 케빈은 자신이 교도소를 나온 후 정직하게 돈을 벌면서 얼마나 전과 다른 성취를 느끼며 사는 지 자신있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삶에 대한 자랑만은 아니었다. 10년의 기억 속, 소식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알고 지냈던 샤이론으로 성장해주리라 믿었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런 케빈의 마음을 샤이론도 안다. 말 수가 적은 샤이론의 눈빛은 열마디 말보다 더 깊게 카메라를 가득 적신다. 순간 영화 초반부, 후안이 어린 샤이론과 대화하던 장면이 오버랩됐다. 후안이 어렸을 때, 후안의 할머니가 달빛 아래의 자신을 보고 했다던 이야기다. 달빛 아래에서 흑인은 파랗게 보인다고.


그렇다. 달빛에선 피부색에 관계 없이 누구든 파랗게 보인다.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듯 한 허름한 인생도, 달빛을 받으면 남들과 같은 색이 될 수 있다는 할머니의 마음이었으리라.

그런데 그 말을 후안에게  들었던 샤이론은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무엇이 샤이론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걸까…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이들의 바람과 달리 성장한 자신을 새삼 깨달은 듯한 샤이론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다시 달빛에서 10년 전 그 날 처럼, 샤이론은 케빈의 어깨에 기대고 케빈은 그의 머리를 매만진다. 좀처럼 대사가 없고 배우들의 눈빛에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지만 왠지 무슨 마음의 대화들이 오갔을 지 알 것만 같았다. 애정…연민…위로… 그런 감정들이 대사 대신 표정으로 보여졌다. 슬프지만 또 따뜻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건, 나를 위로할 사람이 있다는 건, 따뜻한 일이니까.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마약상이 되어버린 샤이론이지만, 케빈과의 바닷가 그 시간 이후로 아무하고도 관계를 맺지 않은 것도 샤이론이었다. 그는 지금의 샤이론이 되면서도, 그 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왜 전화한거야…?"

라고 케빈에게 묻던 샤이론. 후안이 리틀 샤이론에게 왔고, 10대의 케빈이 샤이론 곁에 있었듯, 다시 블랙 샤이론에게 케빈은 전활 걸어왔다.

각각의 시기에, 사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샤이론의 곁에는 자신의 삶을 응원하는 이가 있었다.


샤이론은 케빈이 기억하던, 진짜 샤이론으로서의 자신을 되찾을까. 답은 관객의 상상에 던져지지만 영화가 끝나고 전해진 느낌은 따뜻했다. 샤이론의 삶에 다시금 손을 내밀어 준 케빈이 고마웠다.


달빛에 비추면 우린 모두 파랗다. 샤이론이 다시금 그 사실에 새로운 용기를 얻기를 응원하게됐다.


이 영화의 제목을 달리 지을 수 있을까…

평등을 비추는 달빛. 문라이트였다.






2017 매우주관적인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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